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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가다 뛰는 도련님 Oct 01. 2022

#5 집에 뜨거운 물 나와요?

세상 구하겠다는 내 꿈은 몇 점인가

"어? 오셨네요. 안 오실 줄 알았는데..."


다음날 출근 아침에 다시 만난 8개월차 직원의 인사말이다.  나를 다시 보게 되어 좋다는 건지 싫다는 건지 알 수 없는 이 인사말은 많은 뜻을 함축한다. 이 일은 그만두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고 한다. 회사 과장의 말을 빌리자면 4년 차인 그가 퇴사자를 위아래로 40여 명을 봤다고 했으니 한 달에 한 명꼴로 그만둔 셈이다. 그런 곳에 나 같은 센님이 오셨으니 기대 따위는 없었던 것이다. 나의 출근은 그들 입장에서 예상치 못한 전개였던 것이다.



왜 이렇게 사람들이 그만두는지는 근로시간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불우의 명곡'은 새벽 6시까지 출근, '배틀 트립'은 새벽 5시, 유명 가수가 진행하는 '노래가 좋다'라는 프로그램은 새벽 4시까지 출근해야 한다. 그렇다고 퇴근이 빠른 게 아니다. '일대백'은 새벽 2시 퇴근, '명견만리'는 새벽 3시가 퇴근이다. 여기까진 매주 있는 정규 프로그램이고 자잘한 프로그램, 비정규 프로그램, 특별 프로그램도 있기에 새벽 출근, 새벽 퇴근은 일상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태풍이 부나 주 6일 근무고 바쁠 땐 주 7일 근무이다.



이 일은 주 100시간 노가다이다.



친구한테 주 100시간이라 말을 하니 내가 과장한다고 말하지만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일이 틀어졌을 때에는 하루에 40시간(?)을 일 하기도 한다. 아침부터 하루 종일 일하고 밤샘 작업 후 하루 더 하면 40시간이다. 사무직도 아닌 육체 노동을 이정도로 일을 시킨다는 게 말이 되나 싶다. 괜히 사고나고 과로사가 일어나는게 아니다.



그렇다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것도 아니다.



보통 노가다라하면 돈을 많이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이 일은 월급제이기 때문에 돈도 많이 벌지 못한다. 게다가 추가 수당이나 야간 수당도 일절 없다. 일당으로 받는다면 월 800 이상은 받아야 하는데 그냥 최저시급인 월급 200만 원이 전부이다. 그나마 억지로 좋은 점을 찾아본다면  하루 종일, 휴일도 없이 일만 하니 월급이 고스란히 저축된다. 매달 고정적으로 나가는 지출은 주거비용, 핸드폰 요금, 한 달 만원이 채 안 되는 지하철 요금 정도뿐이다.



도대체 여기 직원들은 왜 이 일을 계속하는 거지?



이 일을 하면서 가장 큰 의문이 사람들이 왜 이 일을 계속하는가였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미래가 보장된 일도 아니다. 그렇다고 사회적 평판이 좋은 일도 아니다. 비가 오면 비 맞아가며 일을 해야 하고 정수기가 얼어붙는 한파에도 일을 해야 하기에 손에 상처가 가득하다. 방송국에 가득한 먼지까지 마시며 일을 하기에 건강에도 좋지 않다.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이곳에는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다. 평범하게 살아온 내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이 물음의 답은 일을 시작한 지 보름이 되었을 때 알게 되었다.



그 날은 평창 동계 올림픽 무대를 만드는 도중 손가락을 다친 날이었다. 철근에 살짝 부딪혔을 뿐인데 한파에 얼어붙은 손가락이 터져버린 것이다. 그런 내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퇴근길에 8개월 차 직원이 조용히 나를 편의점으로 불러냈다. 그리곤 자신이 사 줄 테니 먹고 싶은 거 다 고르라며 직장 선배의 패기를 보여줬다. 그때 나는 컵라면 4개를 골라 계산대 위에 올렸다. 그런데 그때 전혀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 내게 날아왔다.



"집에 뜨거운 물 나와요?"



순간 놀라 멈춰 섰다. 집에 뜨거운 물 나오냐니... 이런 질문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가능한가? 나는 단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다. 왜냐하면 내게 뜨거운 물 당연히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뜨거운 물이 없으면 물을 끊이면 되는거다. 그때 눈치챘다. 이 사람은 뜨거운물이 없어서 컵라면을 먹지 못해본 경험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의 집은 가난하다고 한다.



너무 가난해서 군대도 면제될 정도라고 했다. 그제야 그곳에서 사람들이 일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어째서 이 일을 계속하는가? 가난하기 때문이다. 가난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가난한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8개월차 직원은 회사 과장에게 매일같이 그만두고 싶다고 말을 했다. 그럴 때마다 과장은 여기 그만두면 갈 데 있냐고 물었다. 



그때마다 그는 아무 답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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