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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가다 뛰는 도련님 Oct 09. 2022

#9 누군가는 죽어 돌아간다

세상 구하겠다는 내 꿈은 몇 점인가

퇴근하여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에는 수상한 사람을 조심하라는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수상한 사람? 먼지 묻은 후드티를 깊게 눌러쓴 거울 속 내 모습이 누가 봐도 수상하다. 깔끔 떤다며 외출하러 나갈 때나 들어올 때마다 샤워하던 내가 이도 안 닦고 자는 날이 많아졌다. 트럭 바닥에는 내가 먹고 버린 음료수 통이 잔뜩 널브러져 있다. 치우기 귀찮으니 트럭에서 내릴 때 바닥에 한 두개씩 흘려 버린다. 

 


나는 완벽하게 이 일에 적응하였다.



일 시작한 지 2달이 지나자 몽골 외국인 노동자들도 내게 장난을 치기 시작한다. 대기 시간에는 연예인 대기실에서 같이 휴식을 취한다. 그때 대기실 벽면에 걸려있던 TV에서는 어느 몽골 초등학생의 일과가 방영되고 있었다. 눈이 허리까지 쌓이는 길을 헤쳐 수 km 떨어진 학교까지 가는 다큐멘터리였다. 고향 소식에 몽골 외국인 노동자들이 서툰 한국말을 시작한다. 자기들 고향은 영하 50'이라며 한국 겨울은 하나도 춥지 않다고 한다. 6살 때부터 말을 타기 시작해서 체력이 좋다고 한다.  



그들이 방송국에서 버틸 수 있는 까닭이다.



누군가는 자기 딸의 사진을 보여준다. K-POP을 좋아한다는 딸이었다. 고국에선 트레일러를 운전을 하며 적지 않은 돈을 벌었다는 그는 더 큰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왔다고 했다. 몇 년 더 고생하면 고향에 가게를 차리겠다는 그의 꿈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얼마큼 벌었는지, 얼마큼 일했는지는 묻지 않았지만 상당히 번 건 틀림없다.



몇 년만 있으면 그는 집에 간다.



그 꿈을 위해 그는 언제나 묵묵히 버틴다. 노가다라는 게 언제나 고난의 연속이다. 예정에 없던 일도 즉석에서 생긴다. 무대감독이 현장을 돌아보고 맘에 안 들면 일이 추가되거나 수정되기 일쑤이다. 말은 쉽지만 정작 일하는 입장에서는 해체하고 다시 지어야 하기에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더욱이 우리가 잘못한 게 아니라 언제나 설계나 디자인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누구의 실수이건 정작 고생을 하는 건 현장에 있는 우리다. 그리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언제나 소모되는 건 우리다.



새벽 시간 버스가 끊기면 용인에 살고 있는 몽골 친구는 집에 갈 수가 없다. 회사에서 택시비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찜질방에서 자라고 돈 몇 푼 쥐어준다. 그리면 다음날 어김없이 같은 옷을 입고 다시 현장에 나타난다.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출퇴근을 반복하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미안함을 느껴야하지만 오히려 나는 고마운 마음이 든다. 나를 대신하여 위험한 일을 해주기 때문이다. 이 땅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다 그러하다.



누군가는 목표한 돈을 벌어 돌아갈 테고 누군가는 죽어 돌아간다.



유명 가수 P의 콘서트장 철거 작업 도중 몽골 외국인 노동자가 추락하여 사망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 기사를 보자마자 기사에는 나와 있지 않을 현장의 일들이 또렷하게 그려졌다.


가수의 앙코르 공연 때문에 무대가 끝나는 시간은 언제나 자정에 가깝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대기하던 스태프들이 일제히 무대 위로 올라 자기들 물건을 챙겨 퇴근한다. 이 중에는 조명팀도 있기에 조명 불빛이 하나 둘 꺼지면서 현장은 어둠이 깔린다. 길가에 놓인 가로수 등 불빛만으로 사물을 식별해야 한다. 하늘에는 비가 보슬보슬 내려 발을 딛고 있는 발판이 미끄럽다. 한 손에는 철근 구조물을 해체하기 위한 망치가 들려있다. 현장에는 망치로 내려치는 소리와 비가 발판에 떨어지며 나는 차가운 금속음만이 들린다. 그리고 누군가의 외마디 비명이 들린다.



물론, 나의 소설이다.



현장에서는 별의별 일로 사람이 다친다. 뛰어내렸더니 하필 발을 디딘 곳에 못이 수직으로 서 있어 발이 뚫리는 경우도 있었다. 구조물에 묶어둔 세트가 철거 작업 중 넘어가 사람이 깔리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기계조작을 잘 못하여 사고가 날 뻔한 적도 있었다. 작동 중지 버튼을 눌러야 하는데 조작 버튼 전등불이 고장 나 작동 여부를 파악하지 못했었다. 그 원인이 뭐든 심각하게 다칠수록 현장에서의 언성은 높아지며 책임소재를 두고 싸운다. 



나 역시 크게 다친 적이 있었다.



관리자 외 출입 금지라 적혀있는 철문을 열고 원형 계단을 통해 30m 정도 올라가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처음 보면 조명이 없어 굉장히 어두워 삭막하다. 발을 딛는 바닥은 지하철 환풍구와 비슷한 격자무늬 철제 바닥이기에 발 밑으로 무대가 훤히 보인다. 발목 높이에는 와이어 줄이 수 없이 감겨 있어 자칫 잘못하면 걸려 넘어진다. 천정 높이는 불과 160로 굉장히 낮다. 키가 큰 사람은 몸을 푹 숙이고 다녀야할 정도이지만 상부에는 파이프까지 달려있어 몸을 접고 다녀야한다.



하필 나는 국방부 기준 184cm이다.



그곳에서의 업무는 간단하다. 밧줄을 내려 무대 위 모터를 끌어당기는 거다. 모터의 무게는 대략 40kg, 끌어 당길 수록 모터에 달린 쇠사슬 무게가 더해져 80kg에 육박한다. 쭈그린 채로 좁고 어두운 공간에서 무거운 물건을 30m 정도 끌어당겨야 하기에 무릎과 허리에 상당한 통증이 온다. 먼지는 어찌나 많은지 당길 수록 먼지가 일어난다. 방송국에 존재했던 먼지의 출처가 바로 이곳이다. 지금이야 코로나 때문에 모두가 마스크를 쓰지만 그때만 해도 마스크가 없어 이 먼지를 그대로 다 마셔야 다. KBS가 개국하고 단 한번도 청소하지 않았을 거라는데 내 머리털을 건다. 



짧게는 40분 길게는 2시간 동안 이 작업이 진행된다.  



문제는 이 일을 시작하기 위해 바닥인 격자무늬를 절단기로 절단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밧줄을 내리고 쇠사슬을 끌어당기기 위한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나, 둘 몇 십년을 자르다 보니 현장에는 구멍 뚫린 곳이 수 백개가 넘는다. 대부분의 구멍은 발정도만 빠질 크기이지만 어떤 곳은 구멍과 구멍이 합쳐지다 보니 사람이 빠지기 충분한 공간이 나오기도 한다. 이 구멍들은 방청석에서도 보인다.



81일째 되는 날, 내가 이 구멍에 빠졌다.



파이프를 피하기 위해 허리를 숙인 채 와이어 줄을 넘어가려다 구멍에 빠져버렸다. 바닥이 어두워 미쳐 보지 못다. 순식간에 몸이 땅속으로 꺼져내려갔다. 어찌나 놀랬던지 앞서 가던 8개월에게 살려달라 소리쳤다. 다행히 구멍이 크지는 않아 허벅지에 걸려 멈춰선 상태였다. 안간힘을 다해 구멍에서 빠져나오려 했지만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근육이 마비를 일으킨 것이다. 절단기로 절단된 예리한 단면이 내 허벅지를 뚫고 들어가 버렸다. 8개월의 도움으로 무대 아래로 내려와 과장에게 알렸다. 내 상태를 확인한 과장이 내게 물었다.



"카드 쓸 수 있지?"



법인카드로 치료하면 나중에 문제 될지 모르니 일단 개인 돈으로 치료하라는 뜻이다. 당장 치료가 급하니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 피를 질질 흘리며 홀로 말이다. 사실 이 정도면 누군가 부축이라도 해줄 줄 알았는데 혼자 갔다. 의사는 내 차림을 보고는 왜 다쳤는지는 궁금하지도 않은지 묵묵히 치료만했다. 그리고 현장으로 복귀했다. 소식을 들은 부장이 나를 보자마자 자기가 그렇게 조심하라 말했는데 내가 조심하지 못했다며 그의 말버릇인 '정신 나간 놈'을 연발한다.



나는 정신 나간 놈이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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