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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가다 뛰는 도련님 Oct 22. 2022

#14  최고의 기회와 경험, 강남본점 바리스타 모집

세상 구하겠다는 내 꿈은 몇 점인가

처음 점장님이 근무 조건을 설명하시면서 오픈조와 마감조가 보름마다 교대가 된다고 했지만 실상은 한 달이 지나도록 이뤄지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 할 직원이 없기 때문이다. 워낙 근무조건이 좋지 않은 카페이다 보니 사람 구하기가 힘들었다. 그것이 내가 채용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상황에서 간신히 신입 직원이 들어오게 되었다. 다른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의 친구라고 한다. 



그 친구의 꿈은 배우였다. 



배우 지망생의 출근 첫날, 자기 친구들이라며 4명을 카페에 데려왔다. 그 4명 모두가 같은 꿈을 가진 배우 지망생들이었다. 보란듯이 카운터 바로 앞에 위치한 가장 큰 테이블에 앉은 그들은 준비한 대본리딩을 시작했다. 이윽고 신입직원도 휴계시간이 되자 그들 사이에서 함께 대본리딩을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데 너무 부러웠다. 그때 처음 알았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나도 같은 꿈을 꾸는 친구가 갖고 싶다.



평생을 살아왔지만 나 자신이 무얼 원하는지 알지 못했다. 나는 결핍을 모르고 자랐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건 언제나 말만 하면 부모가 사주었다. 무언가를 추구하고 얻는 과정이 그냥 말 한마디면 해결되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자신이 무얼 원하는지, 무얼 갖고 싶은지 모르는 채, 성인이 되어버렸다. 아무 의욕도, 욕망도 없이 그저 주변에서 시키는 데로만 살다 보니 모든 게 재미가 없었다. 그때, 깨달았다. 어쩌면 내가 세상 구하겠다며 시작한 이 이야기도 나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기 위한 단계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배우 지망생 놈이 일을 안 한다는 것이다.



일을 못하는 게 아니라 일을 안 한다. 날 형이라 부르며 사이좋게 농땡이 피울 요량뿐이었다. 나 일하는거 보면 그런 생각 못할텐데 이놈도 참 다른 방면으로 대단하다. 여기서 또 재미난게 내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대 놓고 놀기 시작했다는거다. 시간대별로 담배 피운다고 나갔다 들어오면서 티백 하나씩 들고 주방 안으로 들어가 드라마를 보는 황당무계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다. 연기 공부해야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처음에는 1분 정도 잠깐씩 보던 놈이 점차 그 시간이 늘어나더니 정주행을 하기 시작했다.



점장님이 내게 교육을 하라 야단을 치셨다.



과연 이놈이 교육한다고 될까? 처음 점장님의 말씀이 다시 생각난다. 자유로운놈이니 잘 봐주라는 거였다. 자유로운 놈... 자유... 자유? 이 사회는 무개념을 자유롭다고 포장하여 표현해 주는 뿌리 깊은 관용이 너무 깊다. 그가 어딜 봐서 자유롭다는 것인가? 자유에는 희생이 따른다. 그는 무엇을 희생한단 말인가? '자유롭다'라는 표현은 나 같은 놈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나는 자유롭고 싶다. 육체를 넘어 정신적으로도 자유롭고 싶다. 그러니 열심히 일한다. 자유를 얻기 위해서 말이다. 결과적으로 신입직원 주제인 내가 그 누구의 눈치 보지 않고 일을 하고 있다. 



나는 배우 지맹생 놈에게 딱 한마디 해주었다. 미담을 쌓아가라고 말이다.



훗날 나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면 내 글을 본 감독들이 영화나 드라마, 혹은 다큐맨터리를 만들지도 모른다. 누가 뭐래도 내 이야기는 세상을 구하겠다는 청년의 실화이다. 나는 그 원작가로서 감독에게 조연 배우로 누구를 써달라고 말은 할 수 있다. 다른 조연배우와 달리 나와 함께 일한 경험을 가진 지망생놈은 작품 전개상 더 사실적으로 관객에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너는 결국 악담을 쌓았다. 



결국 배우 지망생 놈은 해고됐다. 아마 나 같은 놈은 처음이었을 거다. 보통 자기처럼 막 나가면 참다못한 상대방이 화를 내면 이를 기반으로 갈등구조를 만들어 변명거리를 찾아야 하는데 무대응으로 일관해버리니 변명조차 할 수 없었을 거다. 압도적인 패배 속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아프다며 빠지는 것뿐이다. 세상에는 나같은 놈도 있단다. 



굳이 싸우지 않고 이기는 놈 말이다.



두 번째 신입은 등장부터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이미 다른 두 매장에서 두 차폐 쫓겨난 이력이 있는 '문제 사원'이었기 때문이다. 그와의 첫 만남부터 애사로움을 느꼈다. 첫 소개부터 영어식 이름으로 자기를 불러달라는 등 특이했다. 점장님은 이번에도 나를 교육 담당자로 지목하셨다. 근데 돌이켜 생각하면 이게 참 웃긴 게 그때 나는 일 시작한 지 고작 2달인 신입직원이고 교육받는 그는 나보다 경력이 더 많은 선배라는 거다.



하지만 나는 상대가 누구든 별 상관 안 한다. 그저 내 할 일을 할 뿐이다.



처음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자꾸만 내가 하는 일에 딴죽을 걸기 시작했다. 특히 그 문제사원은 내가 하는 라때 아트를 못 마땅했다. 라때 아트 하는 거 카페에서 금지라며, 몰랐냐며 이르 바탕으로 나와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아마, 라때 아트라는 확실한 금기로 공격하면 나를 무너뜨릴 줄 알았겠지만 이걸 어쩌나?



난 이미 허락을 구한 상태인 걸? 이건 몰랐나 보다.



첫 번째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다른 곳에서 공격이 들어왔다. 이전 배우 지망생과는 다르게 사회생활 좀 한 사람이다 보니 일적인 부부에서 집중 공격이 들어왔다. 이번 갈등 상황은 '포장'에 관한 것이었다. 카페에서 일을 하다 보면 손님들이 먹다 남긴 음식을 포장해 달라는 상당히 귀찮은 일이 자주 발생하는데 이를 전부 들어주면 상당히 피곤해진다.



근데 이걸 어쩌나? 난 하나도 안 피곤한데?



후에도 잔기술이 여러 개가 들어왔지만 내게는 대미지 1도 박히지 않는 가소로운 공격들이었다. 가장 위협적인 공격을 꼽아보자면 자기가 선배이자 직장 상사라는 '유교식 공격'이었다. 나는 이제 막 두 달이 된 신입 직원이고 그는 매장 두 개를 쫓겨나며 쌓은 연차가 있는 경력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엄연히 나의 상급자였고 나는 하급자였다.



그래서 뭐? 맞짱 함 뜰까?



후에는 내게 대화를 하자며 자꾸만 카페 밖으로 나가자며 재촉했다. '대화'라... 세상 살며 느끼는 건데 '대화' 혹은 '소통' 등의 단어를 쓰는 사람들은 오히려 대화나 소통을 못한다. 단지 대외적으로 보이는 이미지를 중요시하기에 대화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싶을 뿐이다. 이런 사람들에 대한 상대법은 듣기만 하는 거다. 괜히 말 한마디 하면 꼬투리 잡으며 시끄러워진다.



나라 정치인들이 시끄러운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그는 포기했다. 카페에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그저 조용히 주방 안 구석 탱이에 우유상자 깔고 앉아 놀고먹기 시작한다. 함께 일을 하며 나에 대해 제법 파악을 한 듯 싶다. 나는 타인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가 뭘 하던 나는 언제나 내 할 일만 한다. 근데 이걸 어쩌나? 여긴 본사점이라 사무실 직원이 수시로 주방을 드나든다. 퇴근길에 주방에 들려 우유 챙겨가는 과장도 있고 메뉴 개발팀 직원이 수시로 주방에 드나든다. 



근무태만, 결국 그는 권고사직당하였다.



또 다시 카페는 처음으로 돌아왔다. 다만, 이번에는 나도 화가 났다. 점장님에게 왜 이런 사람뿐이 뽑지 못하는 거냐 따지듯 물었다. 세상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왜 이런 사람들을 뽑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점장님도 억울한 듯이 자기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며 아무리 일 할 사람을 구하기 위해 글을 올려도 지원자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나서야 할 순간이다.



우선, 채용사이트에 올린 모집공고문부터 수정한다. 기존 채용 사이트에 올린 공고문의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가족 같은 분위기에 바리스타 모집', 이런 쌍팔년도 문구를 쓰니 사람이 안모이지! 당장 이 쓰레기 같은 문구부터 손본다. '최고의 기회와 경험, 강남본점 바리스타 모집', 제목만 바꿨을 뿐인데 지원자가 쏟아졌다.



두 번째는 마음가짐이다. 



아무리 내가 열심히 한다고 해도 주변 동료 직원이 일을 안 하게 되면 아무 소용없다. 이곳 모두가 열심히 하고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내가 택한 방법은 출퇴근 시 행주를 빨아 가지런히 쌓아두는 것이다. 일을 시작하면 한 번, 일과 중에 한 번, 끝나고 한 번씩 행주를 모아 일괄적으로 세척 후 보란 듯이 탑처럼 쌓아놨다.



이 작업은 내가 카페를 그만두는 그날까지 매일 했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 무언가 거창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메시지 전달이다. 이곳에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있으니 당신도 열심히 해야한다는 매시지만 보여주면 된다. 이것만으로도 사람은 변한다. 모든 문제는 사람으로 시작하여 사람으로 끝나는 법이다.



이게 바로 넛지라는 이름의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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