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말마따나 'IIIII 성향'인 극 내향형 사람이다.
젊었던 시절에도 소란스럽고 사람 많은 곳은 되도록 피했고 정적인 장소를 굳이 찾아 헤매었다.
대학 시절부터 삶에 지칠 때마다 안국동의 작은 미술관들을 혼자 전전하고 다녔다. 늘 등하교 길에는 클래식 음악을 들었다. 더 어렸던 시절에도 하교 길에 자주 서점을 들렀다. 긴 방학 때면 자전거를 타고 먼 거리의 도서관에 종종 가곤 했다. 지금 이사 온 이 집을 고를 때에도 도서관과 집이 얼마나 가까운 지, 미술관과의 접근성은 어떤지가 나에게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다.
본능적으로 정신적 도피처를 근처에 두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피에르 보나르의 '하얀 수납장'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 라디오에서 조용히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이 있는 풍경처럼 보였다. 따뜻해 보이는 노란 스웨터, 핑크빛 치마와 붉은색 스타킹. 이제 막 겨울로 접어드는 시기인 것 같다. 식탁에는 뜨개질 꾸러미가 담긴 것 같은 꾸러미도 보인다. 그림 속 여인은 하얀색 문이 달린 수납장을 위아래로 열어두고 무언가를 꺼내려는 듯보인다. 선반은 아직 텅 비어있다. 이제 막 이사 온 걸까. 다른 식구들은 모두 나가고 홀로 조용한 낮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이 작품을 보고 있자니 한없이 마음이 차분해지고 그림 속 풍경에 나도 흘러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에겐 더없이 이상적인 풍경으로 보인다.
누구나 그렇듯 나의 삶도 늘 해피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나처럼 멘털 에너지랄까, 버텨내는 정신적인 힘이 약한 사람은 작은 삶의 무게에도 압도당하고 탈탈 털리기도 한다. 20살이 되어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되자, 편의점에서 'KGB' 맥주를 자주 샀다. 한 캔 사서 몰래 가방에 넣고 집에 돌아와 오밤중에 유희열의 '음악도시'를 들으며 홀짝 거리기도 자주 했다. 깜깜한 밤 지하철 역에서 집까지 걸어가는 길에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나는 이 커다란 지구에 있는 작은 존재, 잠깐 스쳐 지나가는 인생이지. 너무 이 문제에 매몰되지 말자'라고 스스로 되뇌기도 참 자주 했다. 대학 시절 내내 열심히 읽었던 책은 버트런드 러셀의 'The Conquest of Happiness, 행복의 정복'이었다. 원서로 된 얇은 버전이었는데 어쩌다 한 번 분실하고 낙심하여, 또 구입해서 읽었을 정도로 빠져있었다. 가끔은 만약 결혼을 한다면 프랑스나 영국 같은 유럽의 아주 시골 마을에 살면 어떨까 같은 생각도 진지하게 했던 적도 많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 하나하나가 모두 현실도피가 아니었을까 싶다. 문제를 손에 들고 끙끙대기가 너무 벅차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냥 두고 멀리 도망치고 싶었나 보다. 꼬인 실타래를 찬찬히 풀어나가기엔 나의 정신적 에너지는 너무 금세 소진이 되니 무서웠다. 마냥 차분하고 고요하고 정돈된 곳에서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쉽게 긴장하고 정신 에너지가 소진되는 성향이다 보니 자꾸 안으로 숨고 쓸데없는 공상에 빠지는 것이다.
반전. 삶은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를 일이다.
남편과 결혼해서 유럽 시골 마을이 아닌 경기도 한 복판에서 남자아이만 셋을 키우는 엄마가 되었다.
그래서 더 자주 도서관에 가고 미술관에 나간다. 가서 충전하고 오랫동안 고민하고 고른 나만의 아름다운 책상에 앉아 종종 글을 쓴다. 학교가 끝난 아이에게 전화가 온다. 이제 고요한 공상의 시간도 끝이다.
시끌시끌 나의 일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