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1학년부터 취업 준비실에 들락거렸고 이력서를 꾸밀 학점과 인턴 경력, 학회 이력, 공모전에 열을 올리며 대학 시절을 보냈다. 원하던 커리어 영역은 아니었으나 대기업에 입사했다. 입사 후에도 왜 나에게는 굵직한 일을 맡기지 않는냐며 선배들과 상사들에게 대들기도 했다. 심지어 연말에 받은 고과 피드백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항의했다가 직속 상무님이 따로 불러 해명을 해주시는 사태까지 있었을 정도로 나는 늘 성과에 목말랐고 달리고 달리는 성향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회사를 그만두었다. 모두들 이해하지 못했다. 심지어 집에 오시던 시터 이모님과 청소 이모님 조차도 나를 뜯어 말렸다. 늘 커리어의 성공에 목말라하던 나였지만 두 번 생각 없이 퇴사를 결정했다. 남편과 헤어져 아이와 단 둘이 남아 지내는 생활이라니 상상이 가질 않았다.
타국에서 둘째를 낳았다. 다른 도움 없이 남편과 둘이 온전히 아이들을 돌보며 살면서 깨달았다.
가치 있는 일들은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희생'을 요구하고 그리고 그것은 결단하고 내려놓아야 하는 일임을. 첫째 아이는 심성이 여리고 타인에 대한 경계가 심해서 데이케어에 적응하지 못했고 갓난 둘째 아이는 아토피 피부염으로 고생을 하던 터라 하룻밤도 혼자 재울 수가 없었다. 그 시절 돌아보면 어찌 지냈나 싶었는데 결국에는 곁에 있던 남편과 서로를 의지하고 위로하며 힘을 냈던 것 같다. 매주 남편과 가정예배와 기도의 시간을 갖으며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돌보았던 시간들이 우리를 더 건강해지고 단단하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브리튼 리비에의 작품을 보며 첫째 아이가 생각이 났다.
첫째 아이는 외부 자극에 에너지 소모가 많은 아이다. 특히 인간관계에 있어서 크고 작은 불편한 상황이 아이를 기진맥진하게 만든다. 밖에서는 감정을 꾹 참고 집에 와서 엄마를 보며 눌렀던 감정을 터트리고 해소하는 경우가 많다. 감정에 북받쳐 몇시간씩 우는 날도 더러 있다. 울고 있는 아이를 보며 아이가 손 내밀때 그 시간에 내가 곁에 있어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힘들고 지친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따뜻한 품으로 안아준다.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함께 먹고 산책을 데리고 나가거나 드라이브라도 데리고 나간다. 다음날이면 아이는 밝게 기운을 차린다. 지난 내 생일에도 아이가 준 편지에는 '엄마, 늘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위로해 주어서 정말 고마워요.'라고 씌어있는 것을 보며 내 작은 품이 아이에게 아직은 도움이 되고 있고나 싶었다.
크리스천인 나는 하나님이 사람의 인생의 시기마다 어떤 특정한 자리로 부르시고 순종하기를 원하신다 믿는다. 그리고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도 결단하는 것도 결국에는 자신의 몫이라 생각한다. 내가 선택한 지금의 자리를 정성으로 아름답게 보낸다면 또 새로운 시절이 펼쳐질 것이니 그 또한 즐거운 인생의 나날이 될 것 임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