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이의 방문을 살짝 열었더니 펼쳐지는 풍경.
방해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문을 다시 조용히 닫는다.
칼 라르손은 집에서 일어나는 하루 하루를 아름답게 그린 작가로 유명하다.
유년 시절 불행하게 자란 작가는 결혼식 후 신부의 초상을 한 점 그리고, 이제는 자신의 불행한 삶이 행복으로 극복되었다며 한참을 울었다고도 한다. 많은 아이들을 부인과 함께 정성으로 기르고 행복한 가정을 따뜻하게 돌보았던 작가이다.
작품 속에는 고르고 고른 소품들과 가구들이 눈에 띈다. 초록색 옷장 위에 있는 오브제나 벽에 붙어 있는 그림들과 작품 앞쪽의 선반, 벽의 작품들도 하나 같이 허투루 놓은 것이 없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이케아 풍'의 붉은색 책상과 의자. 의자에는 푹신한 쿠션이 꼼꼼하게 매어져 있는데, 끈의 매듭만 보아도 이 가정이 얼마나 정성으로 아이들과 집을 돌보는지 느껴진달까.
2년 넘는 도슨트 교육을 이수하고 교육 마지막으로 도슨트 시연 테스트가 있던 날이었다.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서 열리던 전시였는데 '리투아니아 그림책 전시'였던 것 같다. 같이 교육을 받던 15명 도슨트 선생님들의 시연을 하나하나 다 같이 따라가면서 보고 교수님과 함께 개인의 장단점을 평가해 주시는 자리였다. PT발표는 대학 때부터 잘한다는 소리를 들어 자신이 있던 나였는데 오랜만에 사람들 앞에 서니 긴장이 되었다. 어느 유명한 도슨트의 스타일을 따라 한답시고 아이패드까지 챙겨가며 도슨팅을 했는데 삐걱삐걱 그렇게 실수가 많은 수가 없었다. 두고두고 이불 킥의 날이었다.
그 전시의 한 구석에는 그림책 작가의 작업실을 재현해 놓은 공간이 있었는데 예쁘장한 책상과 의자가 놓여있었다. 나는 그 구역에 큰 주목은 하지 않고 다른 작품들 위주로 스크립트를 작성했다. 나와 같이 교육받았던 도슨트 선생님들은 나보다 나이가 평균 10살 이상 많으셨던 분들이었는데 시연을 듣다보니 나 빼고 모두 다 이 공간에 대해 주목을 하셨더랬다.
"이제 아이들도 크고 저만의 시간이 많아지는 나이가 되다 보니 문득 집안에서 나의 자리는 어디 있나 둘러보게 되더라고요. 남편의 서재, 아이들의 책상 다 있는데 문득 나는 내가 앉을자리는 식탁뿐이란 생각에 서글퍼졌어요. 오늘 이 스크립트도 식탁에 썼거든요. 오늘 작가의 책상과 의자를 보며 문득 너무 부럽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를 위한 책상과 의자를 꼭 사서 집 한편에 내 공간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
그 당시만 해도 둘째가 어린이집에 다니는 어린 나이였기에 나도 매일 매일 육아에 매몰되어 '내 공간'이라는 개념조차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우리집이 다 내 공간이지 뭐.. 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지 못할 뿐이었다. 우리 집에도 아이들용 작은 공부상과 책상, 남편의 책상은 있었지만 정작 우리집에서 가장 책을 많이 읽는 나의 책상은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 무조건 고르고 골라 내 맘에 쏙 드는 책상과 의자를 사리라고 결심했다. 그 결심을 이루기까지는 그 후로 3년이 넘게 걸렸지만, 그 때의 도슨트 선생님들의 말이 내 안에 계속 남아 나에 대해 집중하고 돌아보는 시간을 늘 소중히 하려고 하고 있다.
좋은 도슨팅이란 무얼까. 작품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보다는 작품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주고 공감을 이끌어 내야 할 것 이다. 그리고 작품을 접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과 삶의 조각을 다시금 돌아보고 다듬어 갈 수 있는 생각의 공간을 열어주어야 좋은 해설일 것 같다. 그때의 도슨트 선생님의 설익었지만 솔직했던 스크립트가 나를 돌보고 내 공간을 돌보는 계기가 되게 해 준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