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 끌린다. 무미건조하면서도 디테일하고, 그림 속 감정이 대놓고 드러나지는 않지만 어떤 그림들보다 감성적인 작품들이다.
붉은색, 노란색, 보라색.. 한데 모아놓으면 자칫 촌스러워지기 쉬운 색 배열인데 작품 속 색감들은 하나의 감정선에 녹아 절묘하게 어울린다.
창 밖에서 집안을 들여다보는 구도. 일부러 집 안의 모습을 보여주기라고 하듯 활짝 열어놓은 창 속은
환한 노란색이 칠해진 밝은 집안의 풍경이다. 벽에는 그림이 세 점이 걸려있고 밖으로 통하는 커다란 문이 가운데 보인다. 작품 속 남녀는 모두 어딘가를 다녀왔는지 차려입은 모양새이다. 여인은 새하얀 피부가 돋보이는 붉은색 드레스를 입고 있고 등 뒤에 커다란 리본도 보인다. 머리도 매만졌고 화장도 한 것 같다. 그녀는 남자 쪽 방향으로 앉았으나 말을 걸기 어려운지 피아노에 가느다란 손가락을 얹었다. 몸짓 만으로도 그녀의 망설임과 주저하는 감정이 느껴진다. 무엇을 감추고 있는 것일까. 무엇을 고백하고 싶은 것일까. 그는 알고도 모른 척하고 있는 것인지 시선을 두지 않는다.
남자는 단추도 풀지 않은 채 목까지 꽉 조이는 넥타이를 매고 신문을 읽고 있다. 신문을 읽고 있는지, 여인이 말을 걸지 못하도록 시선을 피하고 있는지, 온몸으로 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둘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 묘한 긴장감마저 느껴지고 작은 숨소리도 들릴 것 같다. 여인이 누르고 있는 피아노 건반 소리가 둘의 침묵을 깨줄 수 있을까. 왜 문은 활짝 열어 놓은 것일까. 외부의 소음이 이 둘의 긴장감을 누그러뜨려주길 바라는 것일까. 호퍼의 작품은 도시 속 외로운 사람들의 초상이라고들 이야기하는데 나는 이 외로움, 무미건조함 혹은 긴장감 속에서 이상하리 만큼 편안함을 느끼곤 한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것에 에너지가 빼앗기고 고요하고 정적인 환경을 찾아다니고, 깊은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늘 부담스러운 나의 성향이라서일까. 지금의 거리가 이 너와 나 사이의 고요함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느껴진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그 적막함과 메마름 속에서 마음이 편안하게 침잠함을 느끼고 안정감 마저 드니, 도시 속에서 나는 늘 그의 작품에 시선이 옮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