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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그라노 Dec 01. 2022

커리어 다운그레이드

1보 전진을 위한 2보 후퇴인가… 아님 그 반대인가…

커리어를 열심히 쌓아오다 뭔가 한계에 다다른 것 같은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었다. 그간 쌓아온 경험이라든가 나만의 노하우들이 이제 곧 소진되어서 다음에 꺼낼 카드를 손에 쥐지 않고 있는 느낌. 그래서 다음은 뭔데? 이제 우린 뭘 하면 좋을까 하는 회의에서 할 말이 아무것도 남지 않은 느낌이랄까…그래서 부랴부랴 인터넷을 뒤져본 경험이 있다.


몇 가지 행동으로 직접 옮겼던 것 중에 첫 번째는 온라인 강좌들로 이론을 닦아보자는 결정이었다.

8개의 아이비리그 대학교들

1) 약간의 어시스트였던 내 나름대로의 자기 계발

2014-16년 사이에 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s, 대규모 공개 온라인 강의?)라는 온라인 강좌들이 유수 아이비리그 대학들을 선두로 개강이 되고 수업을 다 듣고 나면 수료증을 주는 형식이었는데, 뭔가를 배우기도 하고 또 그 당시 커리어 SNS인 Linkedin에 포스팅도 할만한 그럴싸한 activity이기도 했다.  

 서둘러 수업을 듣고  어찌해서 받은 수료증은 그냥 좀 더 나를 그럴싸해 보이게 하려는 개수작의 일환이었다. 그런데, 존슨 앤 존슨 아태본부 근무 시절, 어느 날 Regional Senior Director (전무쯤 되려나)인 R이 나에게 와서 물었다. “너 빅 데이터 & 소셜 애널리틱스 강좌 들었던데 그거 할만해? 수준이 어느 정도야?” 그녀의 질문에 “그거 내가 관심 있던 분야를 이해하기 시작하는 용도로 적합한 수준인 것 같아. 그런데 사실 아주 표면적인 이야기들이 많아서 실무랑은 좀 거리거 있어 보이더라”라고 대답하고 자리에 와서 생각해보니 이게 나 자신을 알리는데 도움이 되겠구나 싶었다. SNS에 직장상사들이나 동료들이 연결되어있다면 “어이~ 나 이런 거 요즘 해~”, “요즘에 이런 대세 토픽들을 나도 뒤처지지 않고 따라가고 있어”라는 커넥션 포인트로 사용하기 그만이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름 간접적으로 (상대적으로 쉽게) 나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알리고 가끔은 오피스 토크의 토픽으로 사용하기에 좋았다.



두 번째는, 좀 과격한 방식의 큰 변화를 동반한 본격적인 커리어 다운그레이드의 경험이다.

꼭 내려가는 것만은 아니더라…

2) 진짜 커리어 다운그레이드


때는 바야흐로 2019년. 매년 그랬지만, 이놈의 구조조정은 연례행사처럼 돌아왔고 우리 부서도 임원들 간의 혈투로 여럿 피를 흘리며 회사를 관두기도 했던 그때. 그 칼날은 나에게도 찾아왔다. 불안함이 느껴진 그 30분짜리 회의 요청은 아니나 다를까 인사팀과 비즈니스 그룹 리더 몇몇이 참여하는, 소위 느낌이 딱 오는 미팅 요청이었다. ‘아 xx… 어이없네…’라는 기분으로 참석한 그 회의는 예상대로 였다. ”네가 못해서 그런 게 아니고 고심 끝에 우리 비즈니스 그룹을 없애기로 했어. 다른 애들도 오늘 통보받을 거야 “ 하고 시작한 회의는 단 30분 만에 끝났다. 몇 가지 희망(?) 퇴직 패키지와 가든 리브 (회사에 적을 두고 그 기간 동안은 출근하진 않지만 월급을 준다)를 받고 슬픈 표정으로 회사를 나와 차에 타자마자 “야호!!!!”라고 소리쳤다. (물론 아내와 아이가 소식을 듣고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나를 맞이하고 ‘어떻게든 잘 될 거야. 나라도 뭘 좀 알아볼게’라는 말에 든든한 인생의 동반자로서 감동도 받았다!)


회사 잘리고 미쳐버린 건가 하겠지만 사실 유럽에서 한번 꼭 살아보고 싶었던 나는 유럽 기반의 회사에 계속 지원중이었는데 이 일이 있기 전 3개월 전부터 한 회사와 인터뷰를 이미 진행 중이었다. 이게 커리어 다운그레이드와 무슨 상관이겠냐마는 이 사건으로 인해 어쨌건 커리어다운그레이드를 어쩔 수 없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디다스 글로벌 본사에 입사하며 싱가포르에서 네덜란드로 넘어오는 과정에 커리어와 관련된 대부분의 것들이 다운그레이드 되었다. 연봉은 세후 30% 이상 줄어들었다. 물론 싱가포르와 네덜란드의 물가 밸런스가 다르기도 했다. 직급도 내려왔다. 부장에서 차장으로. 업무범위도 전략을 설정하던 일에서 실행하는 일로 변경되었으며, 전체적으로 딱 3~4년 정도 이전에 하던 업무/연봉/커리어 스테이지로 다운그레이드 완료.


처음엔 “괜한 객기를 부렸나…” 싶었다. 나는 거의 나이 40, 경력 12-13년 차가 되어가는데 옆에 앉은 유러피언 동료들은 이제 경력 7-10년 차에 30대 초중반들이 아닌가. (내가 꼰대가 되어가서 그러나 싶었다…)


그런데 이 커리어다운그레이드의 힘은 3~4개월 정도의 부작용 (꼰대 마인드 + 알 수 없는 자괴감)이 지나고 나자 뭔지 모를 자신감과 위에 말한 온라인 강좌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희한한 배짱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이미 해 본 것들과 시행착오들을 새로운 업무방향과 논쟁, 실무에 재 반영하면서 중간관리자로써 리더십을 처음으로 경험하고 쾌감을 느꼈던 것 같다. 동료들에게 왜 안되는지, 어디에 더 집중해야 하는가를 여유 있게 가이드하고 리드하는 그 기분은 흡사 마흔 살의 내가 그 기억을 가지고 다시 서른 초반의 내가 되어 일해보는 아니 살아보는 기분이었다.


뭔가 강탈당하고 쓴 패배의 잔을 마시는 것 같은 커리어 다운그레이드. 하지만 버리면 내 커리어도 더 가뿐해지는 특별한 (갱생한 것 같은…) 경험을 한 것 같다.


그리고 이젠 누군가로 인해 내 커리어나 내동댕이 쳐지더라도 무섭지 않다. (하지만 가끔 이 문, 저 문을 두드리며 커리어의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꼭 필요한 것 같다.)




글로벌 회사들이 밥먹듯이 하는 구조조정과 맞물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한 결정이었지만, 지금은 그 한 번의 다운그레이드로 또 다른 많은 것들을 배우고 또 한 번 같은 직무를 다른 방식으로 해 본 경험은 특별한 자신감 같은 것으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상황이 그렇게 흘러간다면 한 번쯤 지는 척 한수 접고 결정해도 장기적으로는 더 탄탄한 회사원(언제 그만둘지 모르지만)이 되리라 믿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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