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미약했지만 끝은 더 초라했던 사회의 쓴 맛 (.. 의 시작!!)
광고, 마케팅, 경영, 비즈니스, 크리에이티브, 카피라이팅, AE, 미디어...
유럽 여행 후 맛본 광고업계에 대한 환상과 그 후폭풍으로 나는 무작정 중어중문학과에서 경영학 복수전공으로 일단 방향을 틀었다.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기도 했고, 뭘 해야 할지 몰랐지만 2가지를 첫 목표로 설정했었다. 1) 광고 동호회 가입 및 활동 그리고 2) 광고공모전 입상.
1번의 경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행히도 그때, 싸이월드의 열풍으로 인해 다양한 클럽활동을 검색하고 가입이 용이했고, 은희 누나의 소개와 몇몇 친구들을 알게 되었다. 지방에서 올라온 나는 머무를 곳도 없이 서울에서 월세방을 구해 살았다. 고통과 고난은 당연히 성공에 수반되는 과정이라 생각하며, 가진 것 별로 없는 상태로 무작정 광고 공모전에 몰두했다. 광고 모임에서 만나는 광고업계 및 동호회 사람들과의 관계를 최우선에 두고 살았던 것 같다. (많은 도움을 받았던 그 친구들에게 많은 신세를 지고 갚지 못해 살오며 마음 한구석에 늘 미안함을 두고 살고 있다.)
"야, 너 한국 광고연구원이라는 거 들어봤니? 거기 가면 광고업계 선배들이 수업도 해주고 수료증도 준다더라!"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바로 낚였다. 등록을 하고 수업을 알아보고 등록금을 마련해서 (준비된 돈이 없어 마련해야 했었다...) 바로 시작했다. 무언가에 대한 소속감과 수료증을 준다는 말에 아주 열심히 수업을 듣고 조별 프로젝트도 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공모전도 잊지 않고 계속했지만 계속 떨어졌다.
이 일련의 과정은 약 2-3년간 계속되었고 결국 한 중견 주류회사의 마케팅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입상하게 되었다. (나름 획기적이었고, 20년 지난 지금 그 아이디어와 똑같은 제품이 나왔다!). 아무튼 졸업이 다가오고 취업이라는 압박감은 나에게도 당연히 찾아왔고 고작 스펙이라고는 한광연 (한국 광고연구원)의 수료증과 소주병 혁신이라는 마케팅 공모전 우수상. 이것밖에 없었다.
솔직히 스펙으로 따지자면 술 마시고 놀며 이상을 꿈꾸기만 했던 (거기다가 얹어진 '뭐 잘 될 거야' 마인드...) 나에게 대기업은 뭐랄까 나보다 학벌 좋고 능력 좋은 엘리트들이나 가는 곳이라는 핑계로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다.
눈발이 날렸는지 아닌지 기억도 안나는 2004년 겨울 즈음에 은희 누나에게서 문자가 왔다. "너 내가 아는 오빠네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해볼래?"라는 문자에 즉답했다. "언제 시작할 수 있어? 지금 당장 할 수 있어" 회사도 물어보지 않고 대답했다.
첫 회사 cnet.com. (CNET Networks라는 미디어 네트워크 아래에는 IT업계에서 유명한 ZDNet.com, 게이머들에게 유명한 Gamespot.com 그리고 IT Gadget 리뷰 사이트로 유명했던 cnet.com 등등 다양한 미디어 채널을 가지고 그 시절 Yahoo.com의 최대 경쟁사로 군림했던 미국 샌프란시스코 기반의 미국 회사였다.)
무려 내가 꿈꾸던 외국계 회사의 디지털 마케팅 서비스팀이었지만 인턴도 아닌 허드레 일꾼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땐 몰랐다. 이게 글로벌 커리어의 출발점이었는지.
Cnet.com을 시작으로 WPP 계열 광고회사, 엠게임, 무모한 스타트업 회사들, Johnson & Johnson, adidas, 낙농회사 등등을 거치며 다양한 일들이 조직, 직무, 직업, 가족 그리고 개인의 삶에 걸쳐 버라이어티 하게 대륙을 오가며 벌어졌다. 정말 몰랐다. 한국에 허드레 일꾼으로 들어가서 기업 이벤트에서 의자를 나르고 행사장을 준비하던 일을 도맡아 하던 한 사람이 여러 대륙을 거쳐 이렇게 네덜란드로 오게 될 줄은.
소개와 저의 히스토리는 여기까지 하고, 앞으로의 글은 다양한 직장인으로서 겪게 되는 직무/직군에 관련된 다양한 소주제를 중점으로 다루고자 합니다. 연차와 경력에 따라 다양하게 펼쳐지는 이벤트들 (동료와의 관계, 이직, 연봉협상, 구조조정, 대륙간 국가 이동 등등)로부터 얻은 경험, 후회 그리고 극복기 등등을 다루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