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만큼 중요한 직무에 대한 갈망과 내 삶의 소중한 인연들
때는 바야흐로 2002년. 대한민국 월드컵이 열리고 붉은 악마의 함성과 열기가 온 대한민국의 거리와 광장을 가득 메우던 그때 나는 유럽에 있었다. 스무 살을 갓 넘기도록 넘게 살아온 인생에서 첫 해외행이었고, 너무나 우연히도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 도착한 첫 해외여행의 첫 목적지가 바로 지금 살고 있는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인 것도 신기할 따름이다.
군대를 제대하고 난생처음 친구 (8살 때부터 친구인 효찬이)를 따라 배낭여행을 나온 나로서는 세상 모든 것이 신기하고 새로웠다. 아마 그때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터.
커리어에 관련된 글을 쓰기로 하고 왠 뜬금없는 해외여행 이야기냐 싶겠지만, 이 첫 해외여행이 내 삶과 커리어의 첫 단추를 달아주었기 때문이다.
사실, 작가의 소개에도 가볍게 다루었지만, 나의 삶은 별 특별할 게 없었다. 너무나 특별한 것들을 많이 쌓아야 스펙이 되던 시절은 그때도 다름이 없었기에 내가 더 초라해 보이고 부족해 보였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미술이나 밴드에서 집적거리던 음악 정도가 특기인 것으로 착각하고 이걸로 밥 벌어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살았다.
그렇기에 그냥 어떻게 살면 되겠지. 살다 보면 나도 뭐 장사도하고, 일도 좀 하고 하다가 안되면 아버지가 운영하는 작은 공장에 자리하나 차지하고 살면 되지 뭐...라는 정말 대책 없는 마인드로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별로 꿈다운 꿈이 없었고 커리어 따위는 소위 열정 넘치고 촘촘하게 삶을 설계하는 엘리트들의 것이었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유럽에서 몇 달간 여행을 다니다 여행의 막바지 즈음에 프랑스 파리에서 3일 정도 머물렀다. 그 시절에 배낭여행객들에게 큰 인기였던 "초코파이"라는 한인민박집에 있는 커다란 도미토리 룸에 숙소를 정하고 짐을 풀었다. 첫날 저녁에 오랜만에 만난 한국사람들과 그룹 지어 샹젤리제 거리를 구경하고 그 그룹은 숙소에서도 이어져 큰 술자리가 벌어졌었다. 삼삼오오 젊은 한국인 배낭여행객들은 그날 있었던 여행지라던가 맛집, 또는 한국에서 유럽까지 끌고 온 자신의 삶과 꿈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들을 밤새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저는 한국에서 친구 (효찬이) 따라 유럽까지 왔어요"라고 투박한 자기소개를 하고 내가 앉을 만한 자리를 찾아 비집고 앉아 맥주를 홀짝거리며 사람들 속으로 녹아들어 갈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여기서 나의 전반적인 20대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두 인물을 만나게 될 줄이야!
그 이름하여 *은희와 *채드".
은희 누나 만남: "난 내일 몽마르트르 언덕 구경 갈건대 같이 갈래?"라고 누군가 말을 꺼냈다. 누군가 싶어 보니 아주 작은 체구임에도 눈빛이 영롱한 초등학생이 말을 꺼내는 것이었다. '아니 저렇게 용감한 어린이가 혼자 유럽여행도 오고... 근데 왜 어른들의 술자리에...?'라는 생각을 처음 했었던 것 같다. 여권 검사를 해보니 나보다 3살 많은 누나일 줄이야... 지금은 제주에서 게스트하우스를 하며 사는 멋있는 사람!
채드형 만남: 초코파이 한인민박에서 숙취로 고생하던 날 아침, 1층 침대에서 뒤척이던 나를 보고 누군가 "야 너 왜 여깄냐?"라고 해서 눈을 떠보니, 유럽 여행 중 우연히 기차 안에서 여러 번 만난 또 다른 배낭여행객. 채드형은 희한하게도 유럽 11개국을 여행 다니는 중간중간 뜬금없는 장소에서 계속 마주쳤다. 베를린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기차에서도 만나고, 오스트리아 빈의 자연사 박물관 앞 동상 앞에서도 만난 그 사람을 프랑스 파리의 숙소에서 또 우연찮게 만났다. 이 정도면 신기한 인연이 아니었나 싶다. 나중에 이 형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도 함께한다.
여행도 함께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두 사람과의 인연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한국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그렇게 만나게 된 채드 형과 은희 누나. 지금 생각해보면 스무살 이후, 내 청춘의 삶에 많은 커리어 플랫폼을 이들을 통해 접하게 되었던 것 같다. 이 둘 사이에는 커다란 공통 관심사가 있었는데 바로, 광고영역에 발 담그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학창 시절 실력은 뛰어나지 않았지만, 밴드 음악도 하고 싶었고, 미술도 하고 싶었던 나는 광고라는 분야의 상업예술이라면 나의 꿈이나 미래를 그려볼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상상이 했다. 두 사람의 도움을 받아 그렇게 "광고"에 대한 진로에 뒤늦게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방인들이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꿨다.
이번 글에서는 조금 더 여행과 사람들을 통한 이야기를 통해 제가 기대어 살아왔던 배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사람이 사는 환경이 물과 같다면, 새로운 물의 유입은 늘 필요한 것 같습니다. 드라마틱한 변화를 원한다면,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어딘가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의 삶에서 보지 못한 무언가로 새로운 방향을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 삶의 스테이지가 성숙해져 가며 느끼는 무게가 이런 여행 형식을 결정하기 어렵게 만드네요. 젊으면 젊을수록 그리고 가벼울수록 좋은 것 같아요.
실질적인 글로벌 회사원 이야기는 첫 직장에 들어간 이후 시점부터 조금씩 소주제들을 중점으로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