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스텔 Estelle Oct 22. 2023

술에 진심이에요

[숨 쉬는 도전 중입니다_술에 진심인 이유]

* 술 : 알코올 성분이 있어 마시면 취하게 되는 음료의 총칭


나는 술에 진심이다. 진심이라는 건, 술 한 잔을 마실 때 내가 먹는 음식과 분위기를 고려한 상태에서 마실 술을 선택한다는 의미다. 술 하나에 뭐 이렇게 신중하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술도 음식이다. 생각 없이 마시는 것보다 내가 무언가를 섭취하는 그 상황에 맞춰 마신다면 술의 매력에 더 빠져들 수 있다.


왼쪽부터 전통주 단감명작, 사케 (이름 잊음), 마카오에서 마신 맑은 내일 꿀 소주


술의 맛을 깨달은 건 20대 중반이다. 그전까지만 해도 당당하게 신분증을 보여주며 '나 술 마실 수 있다'라며 어른의 느낌을 받으려고 애쓰고, 그래서 더 부어라 마셔라 해 정작 술의 맛을 몰랐다. 일단 죽도록 마시고 취하는 게 술 문화라고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20대 중반을 넘어서자 숙취가 심했고, 일명 '블랙아웃'(과음으로 인한 기억상실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내겐 큰 충격이었다. 술로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들이 이 같은 나의 상태에서 시작된다는 생각에 변화가 필요했다. 술 약속을 모두 깼다. 그렇다면 현재 금주를 이어가고 있나? 아니다. 술을 즐기고 있다. 술이 가진 향과 맛이 어떤 음식에 어울릴지, 누구와 마실 즐길 있을지, 어떤 상황에서 마시면 기억에 오래 남을지 등을 생각하며 술과 적당히 거리를 두는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술과 적당히 거리를 두는 친구가 되기 위해선 술이 어떤 특징을 가진 지 파악해야 한다. 


술을 마실 때, 입 속에 잠시 머금고 가만히 있으면 술이 가진 고유의 향이 입과 코에 서서히 퍼진다. 그 상태에서 넘기면 술의 끝맛이 혀를 적당히 자극한다. 그때 술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술이 한껏 매력발산하고 내 입 안에선 잔치가 열리고, 감정은 미묘하게 분위기를 감싸 안아준다.


이러한 느낌은 주로 와인에서 나타난다. 하지만 와인을 제외한 탁주, 소주, 맥주 모두 각자의 매력을 발산하는 순간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탁주가 있다. 탁주는 찹쌀, 멥쌀, 보리 등을 쪄서 누룩과 물을 섞어 발효시킨 우리나라 고유의 술이다. 각 지역별로 탁주를 제조하는 양조장이 있으며, 최근 양조장 수는 증가하고 있다. 우리 고유의 술을 만드는 곳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탁주는 양조장이 지닌 가치와 양조장만의 비법을 담아낸다. 대표적으로 '2023 K-Sool 프리미엄 시음 상담회'에서 탁주 부문 대상을 받은 다도참주가(양조장)의 '라봉'은 과일과 막걸리의 조화가 적절하게 이뤄져 있다. 다도참주가의 경우 한라봉으로 만든 라봉 탁주뿐 아니라 딸기로 만든 '딸링'도 있다. 평소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게 뭔 술이야' 할 수 있겠지만 시음 상담회에서 라봉을 시음했을 때 '왜 대상 받았는지 이유'를 알았다. 다도참주가는 향신료가 아닌 자신들의 비법으로 과일과 막걸리의 조화가 맞는 비율을 찾아 제조한다. 이처럼 탁주는 양조장에서 무엇을 중점에 두고 제조하는지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진다. 


술은 분위기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같은 맥주를 마셔도 방 안에서 혼자 마실 때와 펍에서 마실 때, 옥상에서 고기 구우며 맥주캔 뜯고 다 같이 짠하며 마실 때 매번 맛이 달라진다. 내가 술의 진심인 또 다른 이유다.


그래서일까. 술은 더 알아가고 싶은 친구다. 술에 진심인 사람들을 만날 땐 이 생각이 더 확고해진다. 술이 가진 특징을 서로 논하고, 파악하며 알아가는 그 과정. 씹는 음식으로는 이런 논의와 파악 과정이 거의 없다. '맛있다'가 대부분이다. 좀 더 나아가면 '이 안에 버섯 들어갔나?' 이 정도. 하지만 술은 한 번의 시음으로 무한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해주는 음식이다. 


때때로 다른 술, 내 인생에 술 마시는 첫 도전이 기억난다.

어른들은 그렇게 '크' 하는데 뭐가 '크'인지 몰랐던 그 시절. '~맛이 난다는데 뭔 맛인지 아리송했던 그 순간들. 좀 더 파악하고 마셨던 지금과 술의 거리는 한 뼘 가까워졌다.




작가의 이전글 한때 시를 썼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