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는 도전 중입니다_별거 아닌데 별거인 서른]
지난 8월 일하다 창밖으로 참 재미난 광경을 봤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두 아이가 광화문 광장 분수대에서 놀다가 한쪽에 누워 있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물에 흥건히 젖었지만 그대로 누워 하늘을 보며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고, 볼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이들의 표정에선 백만장자도 못 누리는 행복이 느껴졌다.
이 순간 무엇이 머릿속을 스쳤다.
‘내려놓자’
누군가는 아이들을 보고 살아가는 이 시간조차 ‘일상의 감사함’이라고 생각하겠고, 또 다른 누군가는 세상 눈치 안 보는 아이들의 모습을 부러워할 수도 있겠다.
난 아이들의 모습에서 ‘내려놓음’의 의미를 찾고 있었다.
내려놓음. 인정이 필요하다. 받아들여야 내려놓을 수 있다. 서른의 나는 인정은 잘 하지만 그다음 스텝인 내려놓음을 두고 방황 중이다. 그래서일까. 난 나만의 동굴에서 빠져나오는 법을 모른다.
“난 이제 나를 조금 알 것 같단 말이야”
아빠와 약주하던 날, 집 앞으로 친한 친구를 불러놓은 날 눈물 뚝뚝 흘리며 마음 한 편에 있는 말을 꺼냈다.
서른이 될 때까지 몰랐던 게 있다. 내가 생각보다 외로움을 잘 느끼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직업 상 사람을 많이 만나고, 이런 일이 즐거워서 외롭단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일 벌이는 것도 많다. 본업 외에도 할 게 태산이다. 이뿐인가. MBTI에서 조차 외향적 성향이 98%를 차지할 만큼 누구보다 활기찬 사람이다.
그런데 깊은 내면 한쪽에 나만의 동굴이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들어가지 않았었기에 몰랐던 것뿐, 난 한 번씩 동굴에 들어가 정처 없이 걸었다.
내 나이 서른, 동굴의 존재는 알았다. 그런데 나오는 법을 모른다. 그동안 어떻게 동굴에서 빠져나왔을까 생각해 보면, 스스로 빠져나온 적은 없었다. 혼자 정처 없이 동굴 속을 누비고 다니면 누군가 나를 끄집어 내왔다. ‘어디야? 밥 먹자’ ‘날 좋은데 맥주 마시자’ 친구 호출에 다녀오면 이미 난 동굴에서 나와 있고, 만약 일을 하고 있다면 취재원들을 만남과 동시에 동굴 밖에 있는 나를 발견한다.
물론 동굴을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다. 부잣집 딸내미는 아니지만 대학 졸업까지 부족함 없이 교육을 받아왔고, 스스로 돈벌이하고, 부모님 모두 계시고, 연애도 꾸준히 하고, 오래 연을 이어온 친구들도 있고, 사지 멀쩡하고. 감사함만 가지고 살아도 행복할 텐데 왜 이렇게 외로운 건지, 스스로를 인정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이것을 받아들이기 싫어서 인생에 빈 틈을 안 주려고 일을 벌여왔던 건 아닐까.
친구들과 술자리 가지면 모든 게 나아질 것 같았던 20대 때와 달리 서른이 되니 내가 나라는 사람 앞에 솔직해져야 하는 시간이 가득했다.
그렇게 서른이 되고 인정했다. ‘나 외로움 잘 느끼는 사람이야’ 이젠 그다음 스텝이 남았다. 스스로 동굴에서 나오는 거다. 그러기 위해선 외로움의 원인인 ‘짐’을 버려야겠지. 사람일 수도 있고, 외롭기 싫어서 스스로 만든 일 일 수도 있다. 어찌 됐든 간에 나를 옭아매고 있었던 짐을 버려야 내 발로 동굴에서 나오지 않을까.
서른, 참 어렵다.
11월 서른의 끝자락을 앞두고 마음속으로 되뇌어본다.
내려놓자, 물에 젖은 채 길바닥에 누워도 행복한 아이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