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는 도전 중입니다_싱가포르 여행③]
2022 8/26 ~ 8/31
싱가포르
난 어려서 영어를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 중학교 1학년 땐 1·2학기 중간·기말고사 영어 성적이 100점이었다. 수행평가까지 포함해 일명 '올백'이었다. 어렸을 적 또래 친구들보다 한국어도 빨리 떼 부모님은 내가 외국어 신동인 줄 알았다고 한다. 그래서 싱가포르 여행 준비 과정에서 언어로 인한 긴장감은 없었다. '나 정도면 여행 영어는 기본이지' 싶었다.
그런데 웬걸. 영어로 대화하기 전 눈 마주치는 것부터 힘들었다. 택시에선 목적지 이동을 해야 하니 계산만 잘하면 됐었지만, 호텔에 도착해선 체크인을 한 뒤 호텔리어가 말을 걸까 봐 일부러 다른 곳을 쳐다봤다. 여행 자체가 도전이었지만 그 속에 또 다른 도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것과, 처음 떠난 새로운 환경에서 그 언어를 쓰려고 하는 건 비례관계가 아니었다. 아무리 영어로 소통할 수 있어도 난 알 수 없는 두려움으로 외국인들의 눈을 쳐다보지 못했다.
하지만 싱가포르 여행 셋째 날, 외국인들의 눈을 못 마주치는 나의 모습은 사라졌다. '이것'을 탑재하고 나서다. 바로 여유다. 낯선 환경에서의 기본 회화조차 어려웠던 나의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 준 여유는 싱가포르 환경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싱가포르 여행 셋째 날, 난 싱가포르 센토사에 위치한 카펠라 호텔에 묵었다. 싱가포르 카펠라 호텔은 2018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회담을 했던 장소다. 5성급 호텔일뿐더러 전 세계 몇 없는 호텔로 서비스가 최상이다. 그러다 보니 이곳 직원들은 서비스 차원으로 호텔 투숙객들의 눈을 마주치며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이 말인즉슨, 카펠라 호텔 직원들은 내가 투숙하는 방을 안내할 때, 내가 식사를 할 때, 수영장에 머물 때 끊임없이 필요한 것을 확인하며 질문을 하고 호텔에 대해 설명해 준다. 초반 웰컴음료를 받았을 때까지만 해도 눈 마주치는 게 힘들었지만 호텔 직원들이 여유 있게 'Good Afternoon' 'Hi' 'Hello' 하는 모습에 또 환경에 난 스며들었다. 외국인 직원이 "Have a nice day"라고 인사하면 "Have a good day"라고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나중엔 나를 신경 써주는 모습에 고마워 감사의 표현 한 마디 더 하려고 애썼다. 카펠라 호텔에서 조식을 먹던 당시, 내 테이블을 지켜보던 직원이 갑자기 다가와 한쪽을 가리키며 '저 쪽에도 조식 음식이 있다'라고 말했다. 내가 똑같은 곳에서만 음식을 가져오는 게 마음에 걸렸던 모양인가 보다. 누군가는 부담스럽게 생각할 순 있지만, 난 이 직원의 섬세함에 감동했다. 비싼 숙박비가 전혀 아깝지 않았다. 조식을 다 먹고 나가면서 난 이 직원에게 말했다.
"I really enjoyed the meal."
"I feel grateful for your kindness."
아무도 내게 말 걸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큰 변화였다. 과거 영어 수행평가 하던 당시 떨지 않고 영어로 말을 하던 나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싱가포르 환경에서 느낀 여유는 나에게 작은 변화를 주었고, 난 그 변화에 알 수 없는 성취감을 느꼈다.
도전은 항상 우리 삶에 존재한다. 물론 내가 우리나라에 돌아올 때까지 외국인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고 해서 도전에 실패했다는 건 아니다. 첫 여행지, 낯선 환경에서 필요한 물건을 사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호텔에 묵고, 먹고 싶은 것도 먹고 다니고. 이 모든 게 처음이고 무사히 귀국했으면 그것만으로 난 도전에 성공한 사람이다. 하지만 낯선 환경에서 나 스스로 답답하게 여겼던 일을 해내니 성취감은 더 컸다. 밀린 숙제를 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도전에 여유가 더해지면 성취감이 커진다. 이처럼 여유는 우리에게 항상 큰 선물을 가져다준다. 나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 주고, 나의 '진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사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매 순간 여유를 갖긴 힘들다. 여유를 가지려고 노력해도 환경이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대형서점 에세이 코너에 서서 책을 펴고 '여유를 가져라'라는 문구를 또 보고 있지 않는가.
다만 확실한 건 여유가 없다고 해서 도전하지 않고 사는 건 아니다. 재차 강조하지만 우리가 숨 쉬며 살아가는 이 순간도 도전 중이다. 절대 여유 없는 행동과 도전하는 삶은 비례 관계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