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쉬는 도전 중입니다_싱가포르 여행②]
2022 8/26 ~ 8/31
싱가포르
새로운 문화를 익히는 건 도전의 영역이다. 그래서 여행은 도전이다. 여행을 다녀와서 사람이 변한다는 건 증명되지 않은 말이 아니다. 실제 신체는 여행하는 과정에서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낸다. 인간의 신경계를 통합하는 중추기관인 뇌는 근육의 운동을 조절하고 감각을 인식하며 기억하고 말하고 감정을 일으킨다. 뇌가 자신이 역할을 이행하지 않으면 '살아 있지만 죽은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러한 뇌는 불확실한 환경에서 최상의 조건으로 활동한다. 책 '변화하는 뇌'에선 새로운 환경이 뇌에 긍정적 변화를 일으킨다고 설명한다.
난 싱가포르에 도착한 뒤 직접 싱가포르 땅을 걸으면서 새로운 환경에 금방 적응했다. 하지만 이 같은 생각은 오산이었다. 난 또 다른 적응이 필요했다. 문화적응이다. '문화쯤이야 금방 적응하지' 했지만 생각보다 적응할 새로운 문화는 많았고, 새로운 장소에서 벌어진 일들도 새 문화를 익히는 것만큼이나 나를 놀랍게 했다.
돌아다니는 도마뱀도 마찬가지다. 8월 27일 오전 호텔에서 조식을 먹고 준비한 뒤 부랴부랴 나왔다. 날씨가 좋았기 때문이다. 여행 전 싱가포르 스콜(열대지방에서 대류에 의해 나타나는 소나기)에 대해 익히 들었던 바, 날이 좋을 때 계획했던 장소에 다녀와야 했다. 당시 첫 행선지는 보타닉가든이었다. 싱가포르에서 가장 오래된 정원이라는 문구가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고, 국내에서 보지 못했던 백조도 눈으로 보고 싶었다. 그렇게 도착한 보타닉가든. 걷다가 내가 먼저 내뱉은 말은 "Oh my god"였다. 정원 내 닭이 돌아다니는 것도 신기했는데 그 사이로 내 종아리만한 도마뱀이 무언가를 주시하며 슬금슬금 움직였다. 순간 '도마뱀이 나한테 달려들면 어떡하지' '무는 거 아니야?' '왜 이렇게 방치한 거지?' 별 생각 다했다. 하지만 도마뱀은 지나가는 사람은 신경도 쓰지 않고 무언가를 주시하는 데 집중했다.
해당 도마뱀은 왕도마뱀(Monitor Lizard)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보타닉가든에는 1) Malayan Water Monitor와 2) Clouded Monitor Lizard 총 2마리가 서식한다고 알려졌다. 도마뱀을 코앞에서 본 게 처음일뿐더러 세계문화유산인 정원에 왕도마뱀을 자유롭게 놔둔다는 건 신기한 광경 중 하나였다. 어떻게 보면 왕도마뱀을 자유롭게 놔둔 것 자체가 싱가포르의 자랑일 수 있겠다 싶었다. 동물원 속 동물들보다 보타닉가든 왕도마뱀들이 더 행복해 보였던 것처럼 말이다.
무더운 더위 속 보타닉가든 산책을 잘 마치고 싱가포르 쇼핑 중심지 오차드거리로 향했다. 오차드거리에 가고 싶었던 매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자들의 속옷 로망을 실현시키는 '빅토리아 시크릿'이다. 난생처음 빅토리아 시크릿을 본 나는 마음속으로 또 외쳤다. 'Oh my god'
속옷 매장 하나로 놀라기까지 하냐는 반응이 있을 것이다. 이해한다. 다만 내게 빅토리아 시크릿은 미국 하이틴 드라마를 보던 어린 소녀가 어른이 된 후 알 수 없는 꿈을 실현시켜 줄 수 있는 환상의 브랜드였다. 빅토리아 시크릿 속옷을 입으면 마치 나의 매력을 더 발산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을 강하게 심어준달까. 실제로 특별한 의미를 받았다. 영화, 유튜브에서만 보던 빅토리아시크릿 매장에 방문했다는 것, 빅토리아시크릿에서 제작한 대표적인 향을 담은 바디제품을 구매했다는 것, 빅토리아시크릿이 새겨진 속옷을 샀다는 것. 이 모든 순간들은 내 눈을 번쩍 뜨게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빅토리아 시크릿 쇼핑백을 들고나갔을 때 알 수 없이 짜릿할 것만 같았다. 여행 마치고 돌아올 때 짐정리하며 제일 신경 쓴 부분이 빅토리아 시크릿 쇼핑백 보관이었다. 그만큼 새로운 장소에서 얻은 새로운 물품은 세로토닌 분비를 적극적으로 일으켰다.
싱가포르에서 'Oh my god'를 외쳤던 순간은 또 있다. 택시였다. 싱가포르에는 택시 승강장이 따로 있고 그곳에서만 택시를 탈 수 있다는 걸 여행 도중 알았다. 오차드거리에서 열심히 손으로 택시를 잡았지만 생생 지나가길래 '외국인이라서 그런가' 싶었다. 그리고 우버 택시를 부르고 기다리는데 택시기사에게 메시지가 왔다. 내가 있는 곳은 택시 승강장이 아니기 때문에 탑승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친절하게 근처에 위치한 택시 승강장을 알려주셨고, 난 그곳으로 이동했다. 우리나라 택시 호출 시스템과 약간 다른 모습에 놀랐다. 길에서 손을 흔들며 택시기사의 눈을 마주치면 잡히는 택시였는데, 싱가포르에선 택시 승강장에서만 이용해야 한다니. 정돈된 문화에 박수를 보냈다.
이뿐 아니다. 택시를 타고나서도 어려움이 있었다. 영어였다. 싱가포르 국민들의 영어 발음을 비하하는 게 전혀 아니다. 나도 영어 발음이 완벽하지 못하다. 다만 오랜 기간 영어 공부를 하지 않고 살아서일까. 택시기사와의 소통이 생각보다 원활하지 않았다.
이런 느낌의 상황이었다.
택시기사 : one dollor (워-네 달러)
나 : pardon?
택시기사 : one one (워네 워-네).
나 : 워네?... 숫자 1을 가리키며 one?
택시기사 : Yes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싱가포르의 택시 문화, 택시 상황은. 역시 도전은 가르침을 준다. 내가 추후 또 싱가포르를 가게 된다면 기억하지 않겠나. 싱가포르의 택시 문화와 택시기사와의 소통을 말이다. 이렇게 난 또 도전을 통해 한 국가의 문화를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