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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결나은 Feb 12. 2023

버릴 수 없는 옷

아빠의 젊음이 보인다.

옷장에 입지 못한 채 간직 중인 옷이 있다.

살이 쪄서 작아진 옷도 아니고, 살이 빠져 헐렁한 옷도 아니다.

25년 전쯤 지금의 내 나이쯤이던 친정아빠가 직접 디자인하고 직접 만들어 주신 캐시미어 코트이다.






친정아빠와 친정엄마는 옷을 직접 만드셨던 분이다.

물론 지금은 70대 초반, 60반의 연세라 눈이 침침하시다며 옷 만드는 일은 진작에 그만두셨지만 30년 이상 옷을 만드셨다.


어린 시절, 잠에서 일어나면 나는 늘 똑같은 모습을 마주했다. 미싱(재봉틀)에 앉아 옷을 만드시는 아빠의 모습과 스팀다리미로 옷을 다림질하시는 엄마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시대가 변하고 기성복이 대중화되어 맞춤복이 점차 사라졌다. 어느 순간 옷을 만드시는 아빠와 엄마의 모습도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아동복 브랜드의 옷보다 아빠가 직접 만들어주신 주름치마를 더 많이 입고 자란 듯하다.




지만 중고등학생 때는 아빠가 만들어주신 옷을 거의 입지 않았다.


그러다 대학생이 된 이후 아빠가 만들어 주신 옷을 입고 싶다고 말씀드리니 제일 먼저 만들어 주신 옷은 검은색 캐시미어 코트 였다. 따뜻하게 입으라며 안감은 누빔퀼팅에, 차이나칼라 스타일로 주머니도 편하게 만들어 주셨다. 더 이쁜 옷이 있었겠지만 따듯하고 편한 디자인의 아빠가 만들어주신 코트를 너무 많이 입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주머니닳는 줄도 모르고..


초등딸아이가 입어도 그럴듯해 보이지만 주머니가 닳어버린 소중한 코트이다.



아빠가 옷을 만드는 일을 그만두시고 나서 그 코트의 소중함을 알게 된 이후는 그 옷을 입지 못했다. 닳아버린 주머니를 보고 나서는 행여 옷도 더 낡아져 버려지게 될까 봐 아끼고 아끼느라 입을 수가 없었다. 더 이상 아빠가 나를 위해 옷을 만들어 주실 수 없는 상황임을 알기에 더 소중한 옷이다.




이렇게 추억에 잠기다가 옷장을 열어보았다. 20년이 훨씬 전 만들어주신 코트와 나란히 걸린 또 다른 코트.. 잊고 있던 밤색코트가 하나 더 걸려있다. 아빠가 엄마께 만들어주신 코트를 내가 물려받아서 입던 반코트이다. 내 나이만큼 오래된 밤색코트. 아빠가 이 옷을 만들 때 딸이 입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셨을 테다. 그리고 이 옷을 보고 추억에 잠기는 딸은 더욱 생각하지 않으셨을 테다.  


이 옷을 보고 아빠를 그리워하는 날이 다가올 것 같다.




오래된 코트를 보니 눈가가 뜨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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