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전쯤 지금의 내 나이쯤이던 친정아빠가 직접 디자인하고 직접 만들어 주신 캐시미어 코트이다.
친정아빠와 친정엄마는 옷을 직접만드셨던 분이다.
물론 지금은 70대 초반,60대 후반의 연세라 눈이 침침하시다며 옷 만드는 일은 진작에 그만두셨지만 30년 이상 옷을 만드셨다.
어린 시절, 잠에서 일어나면 나는 늘 똑같은 모습을 마주했다. 미싱(재봉틀)에 앉아 옷을 만드시는 아빠의 모습과 스팀다리미로 옷을 다림질하시는 엄마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시대가 변하고 기성복이 대중화되어 맞춤복이 점차 사라졌다. 어느 순간 옷을 만드시는 아빠와 엄마의 모습도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아동복 브랜드의 옷보다 아빠가 직접 만들어주신 주름치마를 더 많이 입고 자란 듯하다.
하지만 중고등학생 때는아빠가 만들어주신 옷을 거의 입지 않았다.
그러다 대학생이 된 이후 아빠가 만들어 주신 옷을 입고 싶다고 말씀드리니 제일먼저 만들어 주신 옷은 검은색 캐시미어 코트 였다. 따뜻하게 입으라며 안감은 누빔퀼팅에, 차이나칼라 스타일로 주머니도 편하게 만들어 주셨다. 더 이쁜 옷이 있었겠지만 따듯하고 편한 디자인의 아빠가 만들어주신 코트를 너무 많이 입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주머니가 닳는 줄도 모르고..
초등딸아이가 입어도 그럴듯해 보이지만 주머니가 닳어버린 소중한 코트이다.
아빠가 옷을 만드는 일을 그만두시고 나서 그 코트의 소중함을 알게 된 이후는 그 옷을 입지 못했다. 닳아버린 주머니를 보고 나서는 행여 옷도 더 낡아져 버려지게 될까 봐 아끼고 아끼느라 입을 수가 없었다. 더 이상 아빠가 나를 위해 옷을 만들어 주실 수 없는 상황임을 알기에 더 소중한 옷이다.
이렇게 추억에 잠기다가 옷장을 열어보았다. 20년이 훨씬 전 만들어주신 코트와 나란히 걸린 또 다른 코트.. 잊고 있던 밤색코트가 하나 더 걸려있다. 아빠가 엄마께 만들어주신 코트를 내가 물려받아서 입던 반코트이다. 내 나이만큼 오래된 밤색코트. 아빠가 이 옷을 만들 때 딸이 입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셨을 테다. 그리고 이 옷을 보고 추억에 잠기는 딸은 더욱 생각하지 않으셨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