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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은 Jan 03. 2023

보랏빛 추억

나의 라일락


  매 해 봄이면 나는 여의도 공원으로 향하곤 한다. 많은 이들이 봄의 메인은 벚꽃이라고들 하지만, 내게 있어 벚꽃은 엑스트라에 불과하다. 아직은 옷깃 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찬 4월. 옷을 여민 채 벚꽃을 지나친다. 꽃들이 참으로 흐드러지게 폈구나. 튤립과 철쭉을 지나쳐 여의도 공원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는 라일락 나무 앞에 멈춰 선다. 철없던 난 몰래 라일락 향을 한아름 꺾어 일산으로 향하곤 했다.  


  연례행사처럼 수년을 반복 해오던 행동들이었는데, 올 해는 차마 여의도의 보랏빛을 만나러 갈 수 없었다. 멍하니 어항 속만을 바라보며 허한 속을 달랬다. 내 작은 어항 속 푸른 베타의 이름도 라일라. 라일라가 풍성한 지느러미로 내게 말한다. 어서 나가봐.

  라일라의 플레어링에 난  니트 가디건을 여미며 꿩 대신 닭으로 집 앞 벤치에 향한다. 작은 라일락 나무 앞 벤치에 앉아 책장을 넘겨본다. 열두 번은 더 읽어본 듯한 공지영의 ‘사랑 후에 오는 것들’. 늘 주인공이 답답하다는 생각을 하며 잠시 숨을 고르자 kf94 마스크 속으로 스며온 라일락 향기. 왜인지 모를 애틋함이 밀려온다.

  다시 한 번 폐가 시릴 정도로 크게 숨을 들이켜 본다. 때마침 에어팟에서 흘러나온 이문세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실소를 터뜨렸다. 방금 읽던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이 아름다운 이 상황에 나 홀로 앉아있는 것이 처량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노래 첫 소절에 심금이 울린다. ‘라일락 꽃 향기 맡으면, 잊을 수 없는 기억에-’ 그렇다. 사실 내가 라일락에 이토록 집착하게 된 계기도 어릴 적 잊을 수 없는 기억에서 비롯된 것이다.


  라일락과 연관된 나의 가장 낡은 기억을 찾자면 아마 내가 여섯 살이 되던 해 봄일 것이다. 적당히 덥혀진 공기에 꽃향기가 가득 퍼지던, 노란 나비가 꽃향기를 쫒아가던 그런 봄이었다.

 쑥 캐기에 여념 없는 할머니의 등 뒤 바위에 걸터앉아 네잎클로버를 찾던 난 연신 하품을 해댔다. 온 몸으로 지루함을 표출하던 와중, 따듯한 바람 사이로 스쳐 지나가는 보랏빛 향기가 내 코끝을 간질였다.

  그 향기의 출처를 찾기 위해 난 고개를 하늘로 젖힌 채 한참을 뛰어 다녔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새 향기의 종착지에 다다랐다. 어릴 적 나는 꽃이란 화려하고 아름다운, 강렬한 색채를 지닌 것들의 집합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나의 고정관념이 산산이 부서졌던 첫 순간이었을 것이다. 은은한 연보랏빛의 수많은 송이들은 강렬한 원색의 꽃들을 비웃듯 고고한 자태를 뽐내었다. 처음 마주한 보랏빛 꽃들에 완전히 매료된 난 발끝을 세워 더 가까이 향을 맡기 위해 애썼다. 간신히 닿은 작은 꽃송이 하나에 얼굴을 파묻어 온 세포들을 그 보랏빛 꽃에 집중시켰다. 당시 신선한 충격이었던 그 향기는 감히 문장으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여섯 살의 어린 난 그 향기를 형용할 수 없어 맛으로 표현하고자 꽃을 입에 넣어 씹어보기 까지 했으니 말이다.

  여념 없이 꽃에 빠져있는 나의 뒤로 급박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할머니였다. 흙으로 범벅이 되어있는 손으로 당신의 눈물을 닦아내며 내게 다가오셨다. 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말없이 사라진 것에 대한 죄책감이었을 것이다. “네가 없어지면 할미는 못 살아.” 안도의 한숨을 쉬는 할머니를 보며 미안한 마음에 난 울음이 터졌다. 수도꼭지라도 틀었는지 멈출 줄 모르는 내 눈물에 할머니는 주머니에서 보랏빛 손수건을 꺼내 내 뺨을 닦아주셨다.

  꽃 한 떨기를 왼 손에 쥔 채 흐느끼는 나를 할머니께서는 들어 안아주신 채 “이 꽃이 뭔지 알간?” 하고 물으셨다.

  좌우로 고개를 흔드는 날 보곤 “이 꽃은 라일락이라 하는디, 할미는 이 꽃이 제일루 좋다!” 고 말씀하셨다. 처음이었다.

  할머니께서는 늘 당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는 분이셨다. 좋아하는 과일이 무엇인지, 좋아하는 노래는 무엇인지,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수도 없이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늘 “우리 가은이가 좋아하는 게 할미가 좋아하는 거지” 였다.

  할머니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는 “왜?” 라고 물었다. 할머니는 딸꾹질을 하는 내 등을 토닥이며 대답했다. “라일락의 꽃말은 젊은 날의 추억이랴. 할미도 젊은 날들이 있었거든.” 할머니의 젊은 시절 이야기는 마치 오래된 옛날 영화 필름을 재생해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고즈넉하면서도 애틋한, 혹은 뭉클한.

  할머니는 어머니에 대한, 그러니까 나의 증조할머니에 대한 추억을 자주 상기시키곤 했다. 할머니의 어머니는 낭창낭창한 걸음걸이로 집 앞 정원을 자주 걸으셨다고 했다. 어린 할머니의 손을 잡고 이 꽃은 진달래, 이 꽃은 제비꽃, 이 꽃은 연산홍, 이 꽃은 모란. 하시며 하나하나 다 일러주시곤 했단다. 그 중 증조모께서 가장 좋아하시던 꽃이 바로 라일락이었는데, 정원의 담장을 전부 라일락으로 장식 해두실 정도로 라일락을 좋아하셨다고 한다. 하여 매 해 봄이면 담장에 흐드러지게 핀 라일락을 두고 어머니와 함께 소묘를 하는 시간을 보내며 라일락에 대한 애정을 쌓아온 것이다.

  하지만 늘 낭창낭창하실 것만 같던 증조모께서 겨우내 지병을 앓으며 하시던 말씀은, 라일락을 보고 돌아가시고 싶다는 말씀이었단다. 결국 라일락을 보지 못 하고 떠나셨다고 했는데, 다시 한 번 할머니의 눈물을 보았다. 아까 내 눈물을 닦았던 보랏빛 손수건으로 할머니의 눈물을 닦아준다. 나의 첫 라일락은 보랏빛 추억으로 물들어갔다.

  수십 번의 라일락이 피고 졌다. 15년 전의 라일락은 그 때 그 자리 그대로였으나, 애석하게도 소중한 것들은 금세 시들어버리기 마련이다. 수십 년이 흐르며 시드는 것은 라일락뿐만이 아니었다. 심장이 약한 집안 내력으로 할머니께서 거동하기 어려워지셨다.

  벌써 일산 병원에 입원하시고 난 뒤로 라일락이 다섯 번이나 피고 졌다. 의자에 걸터앉아 가만히 할머니 얼굴을 들여다본다.

  “할머니, 올해도 라일락 폈네-”

하며 화단에서 따온 라일락을 툭 건넨다. 반가운 기색 없이 도로 가져다 놓으라고 말씀하신다.

“모든 것은 순리대로 돌아가는겨. 각자 있어야 할 제자리가 있고, 그 자리에 있어야 가장 예쁜 거란다, 그러니 할미 죽고 나면 산소 옆에 작은 라일락 묘목 하나 심어두어. 알갔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최근 증상이 악화되며 당신의 죽음에 대하여 이야기를 자주 꺼내시기 때문이다. 속상한 마음에 나는 또 “맘에 안 들면 내다 버리쇼.” 퉁명하게 말하며 병실을 빠져 나간다.

  돌이켜보니 그렇다. 우리 할머니는 늘 모든 것들은 제자리에 있어야 가장 아름다운 법이라고 말씀하시며 사라지는 꽃향기에 아쉬워하던 분이셨다.

  그렇게 당신이 좋아하시는 라일락을 절대 꺾어서 집에 가져가는 법이 없었던 울 할머니. 내가 커버린 뒤부터는 내가 하는 말들이 너무 현학적이라며 힘 좀 빼라고 하시던 울 할머니. 연이은 입시에 실패해 홀로 흐느끼던 내게, 볕이 들면 다시 라일락이 필거라고 말씀하시던 울 할머니. 부주의한 내가 혹여나 다치진 않을까 우리학교 근처에서 늘 서성이시던 울 할머니. 내가 목감기에 걸린 날이면 밤새 배를 삶아 입에 떠먹여 주시던 울 할머니. 내가 교복 입는 모습까지 만이라도 보고 가고 싶다 하신 울 할머니. 이젠 웨딩드레스 입는 모습까지 봐줬으면 좋겠는데. 왜 자꾸만 입 밖으로 감정 표현이 안 되는 건지.


  그 어느 순간보다 가장 슬픈 순간은, 내게 추억을 만들어준 이가 추억이 되었을 때다. 나의 소중한 라일락이 돌이킬 수 없는 추억이 되기 전에 49개월 난 조카 손을 붙잡고 연습해본다. “율아, 이 꽃은 라일락인데, 고모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야.”

  라일락의 또 다른 꽃말은 첫사랑이다. 내게 있어 처음으로 사랑을 넘치도록 가득 부어 준 우리 친할머니, 정해연 여사께 이 글을 바치며 마무리한다.

  난 다시 라일락 향을 한아름 안고 일산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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