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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rrick Kim RN Jun 29. 2023

한국에서의 마지막 밤

이민 떠나기 전날의 기록

나는 30대 중반을 향해 치닫아 가며 어학연수, 유학 같은 것을 가본 적도 없는 뼛속까지 한국인이다. 그렇기에 내 나라를 떠나서 외국에서 산다는 것에 대해 그리 심오하게 생각해 본 일이 없다.


그러다 어떤 계기로 미국에 가서 한번 내 힘으로 일하고 공부해 보자 결정한 그 순간부터 미국으로 가는 날을 코앞에 두기까지 사실 나는 별 기대도 감흥도 없었다. 단지 더 나은 내가 되지 않을까 하는 "가져보지 못한 것에 대한 환상"정도만 있지 않았을까? 이민을 준비하는 과정이 누구나 그렇듯 매끄럽게 물 흐르듯 가진 않기에 중간에 "나 진짜 이러다 미국에 못 가는 거 아닌가?" 싶다가도 "못가도 어쩔 수 없지" 정도 쉬이 받아들여가며 미국에 간다는 건 나에게 막연한 미래, 미래에 대한 할 말이 도무지 없을 때 내뱉는 방어기제와 같이 기능했다. 나에겐 내일 출근하는 직장에서 나오는 점심메뉴가 더 중요했기에 미국 이민은 누군가가 나의 미래 계획에 대해 물어보면 "미국 갈 거예요"라고 말하는 정도의 의미에 불과했다


그러다 시간이 차츰 흘러, 미국에 가기로 한 날을 일주일 앞으로 두고, 나는 이제 몸과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


뭔가 말로 설명하기 힘든 미묘한 감정이 어느 날 갑자기 불현듯 밀려왔다. 편도 비행기 티켓에 찍힌 날짜가 어느덧 목전에 다가오니 예상치 못하게 절박한 감정이 마음을 비집고 새어 나왔다. 여태 경험했던 인상적인 장소와 경험이 눈앞에 아른거리길 몇 차례, 나에게 돈 한 푼 쓰는 게 아깝던 내가 지나가는 길에 매력적인 가게가 있으면 다시 오기 힘들 것이란 생각에 기꺼이 값을 내고 커피를 한잔 시키고 있었다. 너무도 익숙한 내 주변의 공간이 이제부터는 잠시 머무르는, 그래서 한시라도 바삐 경험해야 하는 여행지로 변해갔다. 물론 미래에 대한 약간의 기대와 걱정도 있었으나, 절박함의 감정이 이를 압도했다. 이곳에서 30년 넘도록 돈이 아까워 한잔 쉬이 사 먹지 못했던 커피를 몇 잔이나 정처 없이 걸으며 사 먹는 나는 그렇게 애써 발끝에 아쉬움을 두고 다녔다.


지금 와서는 감사해야 할 일인지 모르겠으나, 가족들은 다사다난한 일에 휘말려 내가 가는 것을 의미 있게 받아들이질 못했고, 나의 이민은 식탁에 오를 주젯거리도 되지 못했다. 그 와중에 동료, 선배, 주변의 많은 분들이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고 퍼부어 주는 감사한 마음에 직장에 정을 두던 나는 끝끝내 출국 1주일이 안되던 순간까지 일을 놓지 못했다. 하고 싶은 건 많지만 할 건 없고, 떠나야 하지만 그렇기에 아쉬운 일주일은 그렇게 속절없지 지나갔다.


그리고 떠나기 전날 밤. 그 새벽은 참으로 길었다.


차마 누워 잠에 들지 못하고 바깥으로 나와 동네를 산책하며 집 주변을 눈에 애써 강박적으로 담아갔다. 자주 갔던 길목에서 서성이며 캔커피를 한잔 무릎 위에 놓고 한참 벤치에 앉아 담배만 물고 있다가 다시 돌아와 누워도 잠에 들길 거부하고 있었다. 내 힘으로 한번 제대로 판을 벌려 보자는 욕심에 시작한 이민길이지만, 일상에서 너무나 익숙하게 누려왔던 시간과 공간들을 마지막으로 곁에 둘 수 있는 밤 시간이 너무도 아까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신뢰했던 사람들과 함께하는 순간의 행복에 잠시 이민을 접을까 고민했고 머지않아 신뢰가 처참하게 깨지면서 다시 더 단단하게 결심하기도 했던 미국이민, 그렇게 좋았던 기억이든 그렇지 않았던 기억이던 모든 것을 등 뒤에 두고 지구 반대편으로 떠난다는 게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한 감정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렇게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 전날에 급하게 부랴부랴 챙긴 짐을 들고 공항으로 향했다. 나의 30년이 담긴 작지만 묵직한 짐, 그게 내가 들고 갈 유일한 것이었다.


다시 돌아오기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걸 너무 잘 알고 있기에, 그리고 돌아오더라도 지금과 같이 30대의 눈으로 이곳을 보지 않을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가는 길목, 지나가는 사람들, 그렇게도 지긋지긋했던 출근길 모든 것들을 바삐 눈에 담아두며 가는 내내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공항에서 짐을 부치고 부랴부랴 비행기 티켓, 이민비자 봉투를 쥐어들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나는 어쩌면 당분간 다시 오기 힘들 수도 있는 고국, 가족, 친구들과의 이별의 상황에 나를 떠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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