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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rrick Kim RN Jul 26. 2023

처음이라 어렵지만 그래서 더 감사해야 해

슬기로운 미국생활에 대한 고민

오랜만에 클라우드 용량이 다 차간다는 알람이 울려 휴대폰 앨범을 정리할 기회가 생겼다. 아주 옛날 20대 후반 때부터 몇 번의 이직을 경험하는 동안의 추억, 큰맘 먹고 시작한 외국 여행의 기록, 한국에서의 마지막 직장과 미국 시작의 기록까지 생생히 눈앞에 펼쳐졌다.


되돌아보면 처음 간호사로서 일을 시작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내가 직장에서 인격적으로 대우받는다고 생각하고 일한 기간은 그리 오래지 않은 것 같다. 스스로 생각해도 신규 시절에는 1명의 몫을 해내지 못해 움직이는 족족 누군가의 손이 필요했고, 그렇기에 도무지 존중받으며 일하기 힘들 수밖에 없었다. 이후에도 워낙에 천성이 싹싹하지도 못하고 마음에 없는 소리를 입밖에 꺼내지 못하는 나인 터라 매끄럽게 관계를 풀어나가는 동기들에 비해 존중받으며 일하지도 못한 순간이 태반이었다. 물론 지금은 그 또한 능력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때는 남이 한 잘못까지 뒤집어쓰며 가슴을 치기도 했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직장에 출근할 때 정말 아무 걱정 없이 그냥 출근한 시간은 돌아보면 얼마 되지도 않는 듯하다. 참 감사하게도 한국에서의 마지막 직장에선 나 스스로가 과분할 정도로 인격적인 대우를 물씬 받고 근무할 수 있었다. 일하는 동안 스트레스가 없었다면 거짓말이지만, 이제 7년의 시간이 흘러서 다소 무뎌진 나에겐 그 정도 스트레스는 오히려 가끔씩 나태해지는 나를 되돌아보게 해주는 좋은 계기를 주었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미국에서 이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며 또 새로운 업무에 적응을 하고 있다.


영어도 마음같이 매끄럽지 않고, 문화도 너무 다른 곳. 누군가와 같이 온 것도 아니고 경제적으로 윤택하게 풀어나갈 만한 도움을 받은 것도, 어느 아는 사람이 무언가를 도와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기에 처음 미국에 오기 전부터 걱정이 태산이었던 미국생활.


실제 일을 시작한 지 한 달가량이 되어 내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니, 그래도 8년 전의 내가 왔더라면 애초에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법한 상황에도 제법 무던히 견디며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여전히 마음속에는 내가 적응해 나가며 매끄럽게 업무에 잘 녹아들어 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무겁게 자리하고 있지만, 지금에서야 내가 돌아갈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 너무 잘 알기에 웬만한 상황에선 "그럴 수 있지"라고 받아들이고 넘기기로 했다. 게다가 한국에서 내가 받았던 상처와 스트레스를 떠올리자니 아직은 "이대로 돌아갈 순 없다"는게 내 솔직한 마음이기도 하다.


어차피 적응해야 하는 미국에서의 첫 직장생활. 끝만 보고 하루하루 버티기엔 너무 막연하기에 나 스스로 "어떻게 이 버티어 나가는 과정 자체에서 조금의 즐거움과 보람이라도 찾을 순 없을까" 하는 고민이 깊어졌다.


처음 간호사 면허를 딸 때도, 원하던 장소에서 일을 할 기회를 얻을 때에도, 미국 간호사 면허를 따고 이민비자를 얻게 된 순간에도 그 준비하고 기다리는 과정이 너무 길고 고단해서 "언제나 끝날까? 끝나면 너무 행복하겠다"라는 생각만 쥐고 버텨나가곤 했던 나. 하지만 돌이켜보면 막상 원하던 무언가가 손에 떨어지게 된 순간의 행복은 길어야 일주일 남짓에 불과했고 나는 다음 고민으로 넘어가 또 고민의 꼬리를 물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내가 처음 사회생활을 한 순간부터 기쁨과 성취의 시간보단 아주 대부분의 시간을 고민하고 버텨나가는데 보냈다 생각하니 더 이상 이러지 않을 순 없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여전히 적응은 힘들고 일은 내 뜻대로 안 되는 게 많은 한 달 남짓 일한 미국의 직장. 하지만 "돈 받는 영어학원"이라 생각하고 모난 사람이 없는 것만으로도 이 직장을 나의 미국 생활의 첫 단추를 끼워준 "미국 학원"이라 여기고 감사하게 여기기로 마음먹었다.


그래도 내가 영어가 서툴다고 면전에서 면박주는 사람도 없고, 뒤에서 욕하는 것은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니 스스로들 하도록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부러도 큰돈 들여서 미국에 어학연수 하러 오는데 나는 돈 받으며 영어공부하니 이 얼마나 이득인가? 천지에 선생님이니 마구 써가면서 익혀야겠다 생각하니 고단한 밤근무에 그래도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누군가와 견줘도 뒤지지 않을 혹독한 사회인으로서의 시간을 보낸 만큼 아마도 그 시간들은 이렇게 웃어넘길 여유를 선물로 둔 게 아닌가 싶다.


한국을 떠나기 전 인간관계에 대한 극심한 실망으로 당분간 그 어떤 인간적인 교류도 하지 않겠다 마음먹고 지금도 어느 그 누구와 감정을 섞지 않고 있다. (같이 일하는 외국인 간호사는 나보고 로봇 같다고도 했다) 그렇기에 뼈에 사무치게 외롭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그래서 낯선 땅에서 고군분투하는 지금의 상황이 상처가 많았던 나에겐 어쩌면 치료적인 환경이기도 하다.


혼자서 부딪혀야 하기에 외롭고, 의지할 곳 없어 막막하고, 때로는 이 먼 곳까지 뭐 때문에 왔나 싶다가도 아이러니하게 그렇게 가슴 졸이며 버텨나갔던 나의 과거가 넌져시 가르침을 주고 있었다. "지금 아니면 못해 한번 제대로 과정을 즐겨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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