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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rrick Kim RN Sep 07. 2023

나는 나를 제일 홀대했다.

한 번도 진지하게 해보지 못한 나에 대한 고민

내가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말이 있었다. “원하시는 대로 하세요! 저는 다 좋거든요” “저 결정장애가 있어서 결정해 주세요! 뭐든 다 좋습니다”. 하지만 한 번도 이런 생각은 해본 적 없다. “나는 과연 정말 다 좋은 게 맞을까?”


여태껏 가족과 함께 사는 시간, 혼자 독립해서 사는 시간 동안 내가 무언가를 굉장히 하고 싶거나 먹고 싶었던 것은 딱히 없었던 것 같다. 누군가가 뭘 먹으러 가자고 할 때도 딱히 뭔가 먹고 싶었던 것도 없었고, 놀러 가자고 해도  딱히 아무 데나 상관없었다. 나 혼자 생활을 하는 시간 동안은 그게 더 극심했는데, 하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딱히 없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뭘 원하는지 젼혀 관심이 없었다. 일정이 없는 날은 일을 만들어서 했고, 식사는 되도록 간편하게 해결했다. 비용이 드는 스트레스 해소법은 관심도 없었고, 운동도 나에게 투자할 필요를 못 느껴 요가학원에 일 년 정도 다닌 것을 품으로 계속 꾸준히 집에서 매트 한 장 펼쳐놓고 했다. (덕분에 요가 강사 커리큘럼을 수료했으니, 소정의 소득은 있었던 셈이다)


미국에서 자리 잡은 선배를 저번주에 만날 기회가 있었다. 미국에서의 계획을 말하고 간단히 조언을 구할 참이었는데, 선배가 내 말을 다 듣더니 “너는 네가 뭘 원하는지도 잘 모르는 것 같은데? 너한테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는 게 먼저일 것 같아”라고 하셨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돌이켜보니, 그 선배에게 들은 말이 마음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돌이켜보면 나는 나 스스로에게 무관심했다. 다른 사람의 기분을 살피기 바빴고, 내가 뭘 먹거나 즐기는데 돈을 쓰는 건 무척이나 아까웠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몰라 여가시간이 생기면 투잡을 뛸 궁리만 했고, 먹고 싶었던 게 없었던 게 이니라 내가 먹고 싶은 거를 상대방이 싫어하는 그 상황이 싫어 차라리 먹기 싫은 걸 먹는 게 나았다. 나도 쉬엄쉬엄 일하고 싶지만 상대방이 불편해하고 짜증 내는 게 싫어서 내 몫으로 떼어와 일했고, 남의 건강은 걱정되지만 내 건강은 젼혀 걱정하지 않았다. 필요하다고 하면 기꺼이 있어주고 필요 없다고 하면 기꺼이 사라져 줄수도 있었다. 내가 오로지 내 의지대로 결정한 건 미국으로의 이민 딱 하나였다.


그러던 사이 나는 33살. 그렇게 절절매던 사람들은 이제 곁에 없고, 나는 옛날 같지 않음을 느끼며, 시간도 돈도 쓸 수 있지만 쓸 수 없는 반쪽짜리 사람이 되어버렸다.


오직 직장이 나를 규정하는 전부가 되어버렸고, 가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심지어 하고 싶은 것도 너무 무관심한 지 오래라 이젠 모르겠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게 미국에 와서 이제야 처음 나 스스로한테 관심이 부족하다고 말해주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돌이켜 보니, 내가 어려운 시간을 겪고 지금도 뭔가 막연하다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쩌면 나 스스로한테 관심이 없어 내가 나를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처음부터 내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고 날 존중해주지 못했기 때문에 배는 엉뚱한 방향으로 정처 없이 떠돌고 있었다.


혼자여서 외롭고, 시간은 많지만 사람 쉬이 안 바뀐다고 나는 여젼히 나한테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데 인색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조금씩 방향을 다시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한국에서 똑 떨어진 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만큼 온전히 나한테 집중해서 여태껏 33년 동안 본인 스스로한테 무시당한 나를 한번 되돌아보기로 했다. 그래야 내가 뭘 원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공부하고 일하면서 이곳에 정착할 수 있을지 선명해질 것 같다. 처음으로 일이 끝나고 간단한 아침이나 나에게 대접하려 식당으로 길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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