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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rrick Kim RN Oct 10. 2023

자신한테 관대하고 남한테 엄격하지 않으세요?

간호사로 일을 시작한 지 1년 정도 된 즈음에 후배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게 되고, 후배들과 술 한잔 할 기회가 생겼었다. 삼 교대 간호사의 번을 맞춰 모임을 갖는다는 건 굉장히 공을 들여야 하는 일. 그렇게 어렵사리 날짜를 잡고 같이 한 술자리에서 후배가 나에게 한마디 해준 게 잊히지 않는다.


"제가 학교에서부터 알던 선배님들이 지금 병원에서 만나니 저희한테 어렵고 너무 힘들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신분이 달라서 감히 제가 한마디도 건네기가 힘들더라고요. 선배님은 그렇게 되지 마시고 지금처럼 쭉 같이 계셨으면 좋겠어요."


이 이야기를 알고 있는 유일한 동기 한 명은 그 후배들이 널 얼마나 우습게 생각하길래 그런 말까지 하냐고들 비아냥 거렸지만 사실 마음 한편에서 끄덕끄덕 하며 듣기는 했다. 물론 그 당시에 병원 분위기란 지금하고 또 달랐기에 후배들에게 어디 가서 다른 선배들에게 이런 말 하지 말라고 입단속 해놓긴 했지만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고 그렇게도 신규 때 버벅대고 울먹이던 친구들이 1년 정도 지나니 완장 하나씩 차고 마치 나에겐 그런 시간들이 없었다는 듯했던 몇몇 동기들의 얼굴이 눈앞을 스치며 "그래 나는 정말 필요한 경우에만 그렇게 할 테니, 대신에 내가 말하면 정말 큰일 난 것일 테니 잘 들어줘야 돼"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그 이후로도 각별히 조심했다. 내가 바빠서 가끔 생략하거나 빼먹는 일들은 후배들에게 매뉴얼대로 알려주되 절대 강요하지 않았다. 대신에 나를 따라만 하지 말라고 늘 당부하곤 했다. 후배한테 큰소리 한번 안 냈고,  무리한 요구도 하지 않았다. 행여나 그렇게 하려 치면 "나도 그렇게 하라고 하면 힘든데 이 친구들한테 강요하면 이 친구들은 지도 안 하면서 왜 우리한테 하라고 하냐며 얼마나 날 우습게 생각할까" 생각이 들어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런 노선을 걷다 보니 나한테 의외의 복병이 생겼다. "혼내지 않는 것 때문에 혼나는 것"


사실 알게 모르게 후배들 때문에 선배들한테 내가 혼난 적도 많고, 후배들 잘못도 덮어쓴 경우도 참 많았다. "그래. 내가 혼나면 적어도 방어는 할 수 있지, 저 친구가 혼나면 하루 내내 혼날 테니 그것보단 나으니까." 하면서 덮고 넘어간 적도 무수히 많았다. 나는 그래도 나름대로 심지굳은 믿음이 있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후배들이 조금은 알아주겠지. 아니, 그렇지 못하더라도 내리사랑이라고 앞으로 그들의 후배들한테는 따뜻하게 해 주겠지. 그렇게 악습을 끊으면 된 거야."라고 생각하고 나름대로 내가 짊어져야 할 몫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무엇이 달라졌나 하면 나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라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다.


내가 미국에 오기 직전까지 몇몇 직장에서 신규를 가르치고 수많은 신규선생님들의 모습을 보았지만, 서툴러 어쩔 줄 모르고 남의 지적에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던 친구들이 반드시 선배가 되어 마음의 상처를 주는 말을 안 하지는 않았다. 나를 포함한 몇몇 동료 선후배들의 따뜻한 배려를 통해 성장한 친구도 마법같이 1년 정도가 지나니 본인이 원체 잘나 그렇게 된 듯, 아니면 처음부터 난 빈틈없이 해왔기에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그들의 후배한테 참 내가 보기에도 혹독하게 대하곤 했다. 내 성향상 그런 건 또 묵과하기 힘든 성격이라 부당한 것을 요구하지 않기를 타일러도 보고 설득도 해봤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선배는 더 이상 내 편이 아니구나" 정도였다. 


그러면 나는 그 친구들한테 말해주고 싶다. "나는 신규 때 몹시 서툴렀고 지금도 부족하다. 다만 지금은 내가 뭐가 부족한지 어떤 게 내 단점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딱 그 차이뿐이라 내 후배들한테 나도 못하는 완벽을 강요할 수 없다."


그렇게 한국에서 마지막까지 악순환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던 내 노력의 끝은 누군가에겐"저 선배는 애초부터 내편이 아닌 사람"의 편 가르기 놀이로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누구에겐 반역자가 되어버린 한국에서의 경험들을 마무리하고 온 미국. 이제 나는 누군가가 미국에서 일하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나는 "의사, 간호사 모두 한 팀이 되어 서로를 배려해 주고 감싸주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적어도 남한테 엄격하려면 나에겐 곱절로 엄격해져야 하고 그렇게 노력하다 보면 어느덧 구태여 신경질적으로 반응하지 않아도 후배들은 나의 모습을 보고 자연스레 따라온다. 내가 싫었던 건 남에게 강요하지 말아야 하고 우리는 편을 갈라 감정소모를 하러 모인 게 아니라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모인 사람들이다. 내가 몸담았던 환경은 참 자주 본질을 잊고 있었다. 물론 미국이라고 다 그렇진 않으나, 적어도 근무시간 내엔 어떤 소모적인 논쟁도, 감정적인 부딪침도 자제한다. 이게 결국 환자에게 다 투사될 것이라고 하는 우리 팀 내의 암묵적인 합의가 있는 듯했다.


아침에 나이트 근무를 마치고 아침을 한 끼 사 먹으며 한국에서 근무하는 후배에게 연락이 한통 왔다. 후배와 한참을 그때 이야기를 하다가 후배가 전한 고마운 마음에 저절로 따뜻해지며 그래도 내 노력이 헛되지 않았구나 싶어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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