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책상에 앉아 보고서를 넘길 때마다, 잘 짜인 목차와 번듯한 데이터에도 불구하고 영혼이 느껴지지 않는 글들을 마주하곤 한다. 그 보고서는 마치 정교하게 조립되었으나 엔진이 없는 자동차와 같았다. ‘Why’라는 엔진은 없고, ‘What’이라는 차대만 앙상하게 남아있는 문서들. 읽는 내내 공허한 메아리만 되돌아오는 듯한 글을 읽으며, 나는 작성자를 조용히 부를 수밖에 없었다.
“김 주무관님, 이 일을 왜 시작하게 된 걸까요?” “이 보고서를 통해 우리가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일까요?” “만약 이 보고서의 내용을 딱 한 문장으로 요약해야 한다면, 뭐라고 하면 좋을까요?”
처음에는 당혹스러워하던 직원의 눈빛은, 몇 번의 질문이 오가면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저 ‘지시받은 일’이라 여겼던 과업의 이면에서, 본인도 잊고 있던 일의 근본적인 이유와 목적을 스스로 발견해 내는 순간이다. 그제야 비로소 보고서는 단순한 정보의 나열에서 ‘의미 있는 제언’으로 변모할 가능성이 보인다.
문제는 이러한 ‘영혼 없는 문서’가 우리 주변에 만연하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어쩌면 속도와 효율을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왜?’라고 물을 시간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주어진 과업을 ‘체크리스트’ 지우듯 해치우는 데 익숙해진 나머지, 이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우리 조직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숙고하는 과정을 생략해 버린다. 그렇게 목적지를 잃은 배처럼, 우리는 성실하게 노를 젓고 있지만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는 항해를 계속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설득력 있는 보고서, 생동감 넘치는 글은 바로 이 ‘왜?’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글의 중심에 ‘나’를 세운다는 것은, 단순히 내 이름을 적는 행위가 아니다. 글을 읽게 될 상대를 명확히 정의하고, 그가 무엇을 궁금해할지, 어떤 근거에 설득될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전략가의 시선’을 갖는 것이다. 내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수많은 자료 속에서 옥석을 가려내고, 논리의 흐름을 설계하는 ‘건축가의 정교함’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 모든 고민의 흔적은 고스란히 글에 담긴다. 탄탄한 논리와 적절한 근거, 매끄러운 문장과 진심이 담긴 제언은 읽는 이의 마음에 닿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그것이 바로 단순한 ‘문서’가 아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콘텐츠’가 되는 순간이다.
사실 ‘왜?’라는 질문의 힘은 비단 책상 위에서만 발휘되지 않는다. 인류의 모든 위대한 발견과 혁신은 이 질문에서 비롯되었다. 아이들이 끊임없이 “왜?”라고 묻는 것은 세상을 이해하려는 가장 순수한 지적 탐구의 발현이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정답을 찾는 데 급급한 나머지 질문하는 법을 잊어버린다. 도요타의 ‘5 Whys 기법’처럼 문제의 표면이 아닌 근본 원인을 찾아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처럼, ‘왜?’라는 질문은 현상을 꿰뚫어 본질에 닿게 하는 가장 날카로운 도구다.
더 나아가 우리 삶이라는 거대한 항해에서 ‘왜?’라는 질문은 방향을 알려주는 북극성이자, 거친 풍랑을 견디게 하는 묵직한 닻이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며, 왜 그것을 하고 싶은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진 사람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저마다의 가슴에 자신만의 ‘왜’를 품고 있는 사람은 눈앞의 고난과 역경을 그 목적지로 나아가는 과정의 일부로 받아들일 힘을 갖게 된다.
나 역시 박사 과정 중 수없이 쏟아지는 과제와 끝이 보이지 않는 연구 속에서 길을 잃고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는 왜 그토록 잠 못 이루며 이 길을 가려하는가?” “학위 너머에 네가 진정으로 꿈꾸는 삶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오늘 하루, 그 꿈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이 질문들은 흩어진 의지를 한데 모으고, 희미해진 내적 동기에 다시 불을 붙이는 강력한 기폭제가 되어주었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만약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는 일을 할 것인가?”라고 물었던 것은, 자신의 ‘왜’를 매 순간 확인하려는 치열한 의식이었다. 나 또한 매일 아침, 하루를 시작하며 감사일기에 적는다. “내일 내가 죽는다면, 오늘 반드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 앞에 서면, 하루의 밀도가 달라진다. 관성적으로 처리하던 일들 속에서도 우선순위가 명확해지고,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 선명하게 보인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 한 편의 글을 쓰기 전, 그리고 삶의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우리 스스로에게 가장 먼저 ‘왜?’라고 물어보자. 그 질문은 우리를 둘러싼 현상 너머의 본질을 보게 할 것이며, 잠자고 있던 호기심과 열정을 깨워 우리를 더 나은 결과와 더 깊이 있는 삶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텅 빈 분주함이 아닌, 의미 있는 충만함으로 당신의 하루를 채우고 싶다면, 바로 지금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당신의 가장 강력한 ‘왜?’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