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산 Nov 06. 2022

10년 전의 약속

제자의 취업 일기 2



10년 전쯤, 졸업을 앞둔 한 학생이 찾아왔다. 

말없이 가방에서 주섬주섬 뭔 서류를 꺼내더니, 테이블 위에 펼쳐 보이면서, 당당하게 말했다.

“교수님이 책임지세요.”

나는 매년 2학년 학생들에게 특별한 약속을 했다. 전공 학점 3.5 이상, 토익 750 이상, 기사 자격증 취득. 이 세 가지 조건을 만들고도 취업을 못하면 내가 좋은 회사에 취업시켜준다고 장담했었다. 자신은 약속을 지켰으니, 내가 한 약속을 책임지라고 찾아온 첫 번째 학생이었다. 

학생이 보는 앞에서 ABB에 근무하는 잘 아는 지인에게 제자 이야기를 했다. 

“그런 학생이라면 언제든 보내주세요.”

그 학생은 당당히 ABB에 합격했다. 


올해 2월, 한 학생이 찾아왔다. 그 학생은 상담을 많이 해 본 녀석이어서 성격이나 가정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기사 자격증은 없었지만 학과 수석졸업예정이고 영어도 잘하는 학생이었다. 취업이 확정된 회사가 있었는데도 꼭 외국계 기업에 취업하고 싶다고 고집했다. 10년 전 ABB에 취업한 그 제자에게 전화를 했다.

“너와 똑 닮은 네 후배가 있다.”

국내 공기업이나 대기업은 블라인드 채용방식으로 서류를 검토하고 면접을 진행하기 때문에 학생의 취업에는 도움을 주지 못하지만, 수시 채용을 하는 회사에는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일주일쯤 후 제자가 문자를 캡처한 사진을 보내왔다. 인사담당 책임자에게 보낸 문자였는데, 모든 것을 책임지고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 엔지니어로 키워보겠으니 추천한 학생으로 뽑아달라는 간절한 마음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전화가 왔다. 

“교수님과 10년 전에 한 약속, 후배 한 명을 데려가라고 당부하신 말씀을 이제 지켰습니다.”

제자는 지금까지 회사에서 키워온 자신의 신용을 다 써버렸다. 

후배를 위해 그리고 약속을 위해. 


가끔 졸업한 제자들이 찾아온다. 

나는 그들에게 강의시간을 내어주고 경험담을 들려주게 했다. 차비나 강의료를 챙겨주지는 못했지만, 제자들은 기꺼이 시간을 내줬다. 학생들은 교수 말보다는 선배들의 말에 귀를 더 잘 기울인다. 선배들이 왔다 가면 학생들의 눈빛이 많이 달라진다. 

그 녀석도 몇 년 후에 후배들을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 줄 거다. 


작가의 이전글 우연한 만남과 인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