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고단한 삶 3
어려운 살림에도 할아버지는 7남매를 두셨다.
그 당시 가족의 전 재산은 산촌에 있는 초가집 한 채와 땅 3마지기가 전부였다. 아버지는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때였다고 회상하신다. 아버지는 신혼생활 중 625 전쟁에 참전하셨다. 5년 동안 군 복무를 마친 아버지는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고군분투하셨다. 농사일 이외에도 타지를 돌아다니며 온갖 특용작물의 재배 방법을 알아 오셨다. 고생 뒤에는 보람이 뒤따랐다. 두 작은아버지를 분가시키고도 땅이 20마지기로 불어났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평생소원이던 산도 갖게 되었다. 크진 않지만 우리 산이 생긴 그날, 할아버지는 처음으로 덩실덩실 춤을 추셨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해에 아버지는 큰 결심을 하셨다.
"장남인 네가 출세해서 가족을 보살펴 주면 좋겠다."
나는 어머니와 함께 서울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전세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수확이 제일 잘 나오는 논을 팔아야 했다. 할아버지는 땅을 판다는 것을 몹시 못마땅하게 생각하셨다. 몇 년이 지난 후에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위해, 돈을 더 쳐주고 그 땅을 다시 사들였다.
그때 할아버지는 또 한 번 더 덩실 춤을 추셨다.
내가 중학교 들어갔을 때 할아버지가 내게 두툼한 서류를 보여 주셨다.
“이제, 이 집은 장손인 네 거다.”
할아버지가 평생 사시던 시골집은 내 집이 되었다. 아버지도 아니고 작은아버지도 아니고 내게 주신 할아버지의 큰 선물이었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시골집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손들을 기다리며 사셨다. 훗날 할머니는 시골집이 내려다보이는 동산 아래에 묻히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할아버지는 사과를 깎아 할머니 입에 넣어 주시며 마른 눈물을 보이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1년 후, 추운 겨울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는 소원대로 우리 산에 묻히셨다.
30여 년 전에, 아버지가 동생과 나를 불러 앉혔다.
“할아버지가 아끼시던 땅이니 잘 가꾸어봐라.”
아버지는 시골에 있는 땅의 반을 내 동생에게 선물로 주셨다. 내게도 동생과 똑 같이 주겠다고 하셨지만 싫다고 했다. 아버지 말씀에 마음만 무거워졌다.
나는 왜 마음이 무거워지는 걸까? 왜 선물이 부담으로 느껴지는 걸까?
동생은 나 때문에 어머니와 떨어져 어린 시절 10년을 시골에서 살아야 했다. 어머니의 정을 느끼지 못하고 고생하며 자란 내 동생에게 전부 다 주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다. 나는 할아버지가 주신 시골집 하나만으로도 어깨가 무거웠다.
5년 전쯤에, 아버지는 할머니가 잠들어 계신 앞동산에 있는 밭과 할아버지가 아끼셨던 산을 큰아이에게 선물했다.
“장손인 네게 주는 거다.”
그리고 지난해 시골에 있는 나머지 땅을 내게 주셨다.
나는 내가 받은 모든 것을 우리 아이들에게 공평히 나누어 주기로 약속했다. 할아버지께 받은 시골집을 작은아이에게 그리고 아버지께 받은 땅은 두 아이에게 반씩 나누어 주기로 했다. 작은아이는 좋아라 하며 궁금해하는데 큰아이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내가 떠안아야 하는 부담을 우리 큰아이에게 지워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그러셨던 것처럼,
평생을 장남이란 무거운 짐을 지고, 오직 가족만을 걱정하며 살아오셨다.
아!
우리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