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우연(김수빈, 문학동네)을 읽고
이 책은 제13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책이다. 즉, 이 책은 청소년 독자를 주요 대상으로 하는 소설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나는 성인이다. 내가 청소년 시기였을 때는 어른들이 읽는 책을 읽고 싶어서 학교 도서관의 교사 도서 부분을 어슬렁 거리거나, 학교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넘어 서점의 책들을 구경하고는 했다. 물론 성인의 도서과 청소년 도서의 경계가 매우 흐리다는 것은 알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그렇게라도 더 넓은 세상을 마주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성인이 되고 나니 그 반대로 청소년 도서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책 자체에도 청소년 때보다 손을 덜 대게 되어, 독서를 취미라고 말하기 시작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굳이 다른 책들을 놓아두고 이 책을 읽게 되었던 것은 나에게 선입견처럼 있었던 청소년 소설의 표지보다 '덜 청소년스러웠으며' 문득 청소년 소설을 읽던 과거의 경험이 떠올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이후에 이 책을 읽을 의향이 있는 사람은 참고해 주세요.)
청소년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한다면 책의 주인공이 청소년들이고, 그 배경에 학교가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이 답답하다고 생각한 부분들도 많았다. 특히 고요의 책상을 아무도 몰래 치워주기 위해 아침 일찍 학교에 갔다가 그걸 들키지 않기 위해 집으로 돌아와 다시 지아와 함께 학교를 가는 부분이다. 나는 그 부분을 읽으면서 처음부터 그냥 지아에게 말하고 학교를 일찍 가서 있든가, 지아에게 말하고 함께 학교에 일찍 가든가 아니면 아예 학교에 일찍 가지 않고 지아와 함께 가지 왜 이렇게 고생을 하는지 의아했다.
만약 이 3가지 방법 중 하나를 지금의 내가 선택한다면 나는 가장 마지막을 선택할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아침 일찍 학교를 가느라 피곤한데 조금이라도 더 자고 싶었을 거고, 내 단짝 친구인 지아와 함께 학교를 가는 시간도 소중하기 때문에 지아와 함께하고 싶었을 거고, 이 책의 흐름상 주인공은 고요와 공개적으로 엮이고 싶지 않기 때문에 지아에게 고요의 책상을 치워주기 위해 일찍 가자고 선뜻 말하지 못했을 것 같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문득 그렇게 한다면 고요의 책상은 아무도 치워주지 않아 더러웠을 거고, 고요가 매일 책상을 스스로 치워야 하며 아무리 덤덤해 보이는 고요라도 매일 그렇게 하며 상처를 받았을 거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과거에는 나도 이 책의 주인공인 수현이처럼 다른 사람들의 힘듦을 함께 나누고 싶어 하고, 내가 조금 희생하더라도 그들을 도와주고 싶어 했을 때가 있었을 것이다. 지금의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의 편안함을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의 일에 무관심해지고, 나의 노력만으로는 크게 달라지는 게 없다며 애써 외면하는 모습들이 떠올랐다.
소설이라 비현실적인 부분이 당연히 있겠지만 어쩌면 어른보다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이 더 나을 때가 있다.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어른으로 성장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꼭 좋은 방향으로만 이루어지는 지도 의문이 든다. 혹은 단순이 나이가 든다는 것만으로 우리가 진정으로 '어른'이 되었다고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청소년기 시절의 내가 꿈꾸던 어른(이 된 나)의 모습은 오히려 어렸을 때 옳다고 생각하지만 망설였던 걸 당당히 해내고, 사회의 소수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며 살아가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청소년들의 섬세하고 순수한 마음과 행동에서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은 청소년기 시절을 거치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에게 답이 있다는 것도 맞다. 이 책을 읽으며 청소년들의 다양하고 복잡한 마음들을 보고 그들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들이 곧 나였으며 내가 곧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 모든 청소년들에게 행복한 일들만 가득하기를, 최소한 힘든 일이 있을 때 그들 옆에 좋은 어른들이 함께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