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농부였다.
동이 터서 해가질 때까지 흙 위에 서 있던 할아버지는 고된 하루를 마치고 방에 들어서면 깨지기 쉬운 물건을 바닥에 내려놓듯이 지친 몸을 한 부분씩 조심스럽게 자리에 내려놓고 마지막으로 베개에 머리를 천천히 뉘면서 눈을 지긋이 감았다. 그리고는 어디선가 놀고 있는 손주들을 향해 밭은 소리로 ‘양말 좀 벗겨라’ 하셨다. 하루의 마감을 알리는 소리였다.
할아버지의 양말을 벗기는 것은 늘 내 몫이었다. 앙상한 종아리를 헐겁게 감싸고 있던 목이 긴 양말을 아래로 잡아당기면 가는 올이 거칠어진 피부와 논바닥처럼 갈라진 각질에 걸려 '투드득' 하며 걸리고 끊기는 소리가 나곤 했다. 한 겨울 바짝 마른 나뭇가지에 양말을 신겼다가 벗기면 그런 느낌일 것이다.
할아버지가 양말을 벗는 것은 하루 종일 온몸을 무겁게 덮고 있던 흙을 털어내고 소박하지만 마땅한 쉼을 찾는 의식이었다.
시골의 일이란 것은 하려고 하면 끝이 없고 안 하면 할 게 없다고 늘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는 무엇이든 계속 할 일을 찾는 분이었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겨울철의 일거리는 주로 땔감 장만이었다. 젊은 아버지가 굵고 가는 통나무 더미를 경운기 가득 싣고 와 마당에 부려놓으면 그것을 아궁이에 넣기 좋은 크기로 자르는 것이 할아버지의 역할이었다.
할아버지는 마당 한켠에 수북이 쌓인 나무 더미 앞에 단단히 자리를 잡고 톱질을 시작했다.
톱질 한 번에 한겨울 찬 구들장에 온기가 돌고, 또 한 번에 가마솥에 김이 오르고, 또 한 번에 자식 입에 뜨거운 밥이 들어가는 상상이라도 하셨을까, 할아버지의 톱질에는 쉼이 없었다. 한번 자리를 잡으면 계속 그 자리에 그 자세였다. 흥부가 박을 타는 것 같은 ‘슬근슬근’ 느린 톱질이지만 하루 종일 나무를 잘라내면 적당한 길이의 토막들이 수북하게 쌓였다. 톱질이 느린 것은 할아버지가 노쇠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해야만 하루 종일 더 많은 토막을 자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간혹 톱질이 무뎌지면 양지바른 마루에 걸터앉아 줄로 톱날을 하나하나 빠짐없이 어슷어슷 갈고 톱날 사이사이에 줄을 넣고 비스듬하게 비틀어 톱날의 어김을 바로잡았다. 연장도, 사람도 쉬어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날이 무디면 절삭력이 떨어지고 톱 날어김이 일정하지 않으면 톱길이 휘게 되어 결국에는 톱이 나무에 끼이게 된다. 빨리 끝내려는 마음에 톱질을 빠르게 하거나 욕심내어 힘을 주어도 톱이 반듯하게 들어가지 않아 역시 톱이 나무에 껴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되고 무엇보다 쉽게 지치게 된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할아버지의 톱질은 교과서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옛집을 허물고 그 자리에 현대식 새집이 올라가면서 해가 따듯하게 들어오는 뜨락의 풍경과 함께 할아버지가 쓰던 다양한 연장들도 사라졌다. 아니 사라졌다기보다는 아무도 찾는 사람이 없어서 어딘가 있을 수 있지만 없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 것이다. 어디선가 한낱 녹슨 쇳덩어리가 되어 있을 터였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십여 년이 지나고 잘라놓은 나무토막들을 처마 아래 나란히 쌓아두던 어린 손자는 성장하여 늦깍이 목수가 되었다. 영화 속 '절대반지'가 스스로 주인을 찾듯 새로운 주인이라도 나타난 것으로 본 것일까, 어느 날 사라졌던 할아버지의 연장 더미가 십수 년간 누가 열어보지도 않았을 창고에서 발견되었다. 마치 고분에서 유골을 수습하듯 하나하나 녹슨 연장을 조심스레 꺼내 마당에 펼쳐놓았다.
버얼건 녹은 연장의 본래 색깔을 완벽하게 감출 수 있었지만 치열했던 사용 흔적까지 감추지는 못했다.
날은 이가 숭숭 빠져 더 이상 예리하지 않고 연장의 머리는 수없는 쇠망치질에 무질어졌지만 양말 하나도 채우지 못하는 할아버지의 야윈 다리가 아랫목에서 쉼을 찾는 것처럼 제 몫을 다한 이 연장들도 마땅한 쉼을 가지고 있던 것이리라.
동이 터서 해가 질 때까지 흙 위에 서 계시던 할아버지는 농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