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느린손 Mar 22. 2023

균형

펜싱 국가대표 선수의 인터뷰를 본 적 있다.

펜싱 선수는 항상 같은 손으로 칼을 잡고 같은 발로 내딛기 때문에 팔다리 양쪽이 다르게 발달한다고 한다.

펜싱은 상대방을 먼저 찌르는 경기이기 때문에 칼을 멀리 뻗는 것이 유리하다. 칼의 길이는 정해져 있으니 손을 멀리 뻗어야 하고 그러면서 한 팔이 다른 팔보다 길어진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내딛는 발도 거의 항상 같기 때문에 왼발 오른발의 근육이 다르게 발달한다는 것이다.


산악자전거를 오래 탄 친구의 허벅지는 거의 내 허리두께이다. 반면 상체는 탄탄하지만 하체에 비하면 빈약한 수준이다. 엔진 역할을 하는 다리는 오랫동안 강화되며 굵어진 것이고 스티어링을 담당하는 상체는 말라있어 바이킹에 적합한 몸이 된 것이다.


어떤 운동이든 종목 특성에 맞게 근육이 발달하고 몸이 그 움직임에 최적화되도록 적응할 것이라고 짐작한다.

한 종목에서 오랫동안 훈련과정을 거치면서 최고의 수준이 되었을 때 몸이 균형있게 발달하지 않는다는 것은 좀 억울해 보인다. 그 때문에 옷 입기가 힘들다는 애교 섞인 선수의 투정을 이해할만하다.


하지만 한 발만 떨어져 생각해 보면 그들의 몸은 불균형해 보일지언정 그들 삶의 현장인 경기장위에서는 무엇보다도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급한 비탈이나 절벽에 자라는 나무는 마치 누가 분재라도 한 것처럼 구부정하게 자란다. 

바람이 늘 거세게 부는 해변가의 해송들은 집단 종교집회라도 하듯이 일제히 한쪽 방향으로 손을 뻗고 있다.

해가 잘 드는 평지에서 반듯하게 자란 나무에 비하면 균형이 깨진 모습이다. 좌우가 대칭이 되지 않으면 불균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로든 휘어 자라는 나무의 단면을 보면 나이테의 중앙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이를 '편심생장'이라고 한다. 즉 한쪽의 나이테가 반대쪽 보다 훨씬 촘촘하다. 촘촘하다는 것은 나무의 밀도가 반대쪽보다 높고 강도가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쪽으로 지속적으로 가해지는 힘에 대한 응력이 작용한 탓이다. 

펜싱 선수의 다리처럼 한쪽 다리로 버티고 버텨서 한쪽에만 강한 근육이 생긴 것이다. 


제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자라는 것 같은 나무도 알고 보면 살아남기 위해 거센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기도 하고 피하기도 하고, 중력을 거스르기도 하고 순응하며 필요한 근육을 키우며 자란 것이다. 

외롭고 지난한 싸움 끝에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주어진 환경과 완벽한 균형을 이룬 것이다.


해가 잘 들고 바람 없는 평지에 떨어진 것과 척박하고 바람 잘날 없는 절벽에 떨어진 것이 본래 같은 씨였다. 각기 떨어진 곳에서 반듯하게 자란 것도 구부정하게 자란 것도 모두 제 나름의 균형과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라면은 신라면, 브런치는 이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