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신문에 실린 '호주 산업별 신입사원의 평균 연봉'을 보고 약간 의아해했습니다. 엔지니어들이 상대적으로 낮고, 금융권의 연봉이 IT 보다 높을 수 있다는 건 인정, 그런데 마케팅/광고업계가 10만 불을 넘어 가장 높았는데 이건 호주의 특이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http://www.hanhodaily.com/news/articleView.html?idxno=70504 (산업별 평균 급여 (2021년) 참조)
지금의 아이들이 대면한 해외 유학환경, 그리고 이후 뚫어야 할 취업시장은 불과 몇 년 전과 비교해도 급변했고, 감당해야 할 비용은 (그리고 포기해야 할 기회비용) 훨씬 높아졌습니다. 특히 미국의 명문대가 목표라면 자국 학생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날아드는 입학지원서와 경쟁해야 합니다. 그래도 유학생 신분으로 졸업 후 원하는 현지 취업에 성공한다면 좋은 경우지만, 한국으로 돌아가 취업전선에 합류해야 한다면 안타깝지만 다시 바늘구멍을 목표로 한 경쟁이 시작됩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지금 유학생들은 전공선택 시 조금 더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편의상 학생들 다수가 선택하는 길 또는 방법을 ‘다수의 길’라고 칭하겠습니다. 안전해 보이고, 매력적으로 보이기에 많은 학생들은 비슷비슷한 선택을 하고, 미래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본인의 장점과 성향을 파악하지 못한 채 다수의 길을 택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이렇게 되면 불과 몇 년 후 쓰나미처럼 후회가 몰려올 수 있는데, 딱 제가 그랬습니다. 현재 유망하다고 생각되는 직업군이 5년, 또는 10년 후 없어질 가능성이 있고, 졸업 후 어디에서 일하고 살아갈지와 함께, 미래에는 어떤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하게 될지 등에 대해 가능한 많은 정보를 바탕으로 예측하고, 이미 경험을 해본 주변의 지인을 활용할 수 있다면 최대한 그들의 조언을 구하며 방향을 잡아가야 실패를 줄이고, 각자에 맞는 직업과 삶을 찾는데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물론 이미 대학생이라면 가장 hot하다는 전공을 따라 선택하여 국내 대기업에 (또는 소수는 현지에) 취업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몇 년 그렇게 비슷비슷한 다수와 같은 조직에서 일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본인은 누구에게 맡겨도 해낼 수 있는 ‘고만고만한 일을 하는 인력’으로 하향 편준화가 되어 있던지,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직과 직종 변경을 고민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몇 번의 이직 후 운이 좋아 본인의 적성을 찾는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찌어찌 20년 정도의 샐러리맨으로 지낸 후 언제 ‘명퇴’ 통보를 받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직장인으로 남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기서 질문, 모두가 STEM 관련학과를 선택해야 할까?
최상위 성적의 학생들이 선택하는 의대와 법대를 제외하면, 21세기에 들어 전공 및 직업을 논할 때 가장 핫한 키워드 중 하나는 STEM (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and Math)입니다. 덕분에 글로벌하게 학생들의 목표도 STEM으로 유명한 (게다가 순위도 높은) 학교로의 진학입니다. 그리고 미래산업과 기술을 선도하는 선진국일수록 (한국도 포함하겠습니다) 엔지니어와 과학자들이 우대받는 환경이 이미 조성되어있고, 관련 산업의 일자리들이 선호도가 높으며 연봉도 상대적으로 높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키워드와 필요 직군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을 예로 들면, 과거 70년대는 과학자과 기술자들이 우대받던 시절도 있었다 합니다. 이후 국제화와 금융 기술 발달과 함께 80, 90년대에는 비즈니스, 경영 관련 학과들이 인기였고 은행 및 기업에서도 재경, 회계부서를 선호했습니다. 이제는 STEM 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하여 이공계 전공자들의 취업이 절대적으로 우세한 게 현실이고, 이건 전 세계적으로 비슷합니다.
또한 기업에서 원하는 인재상이 유기적으로 변한다는 점입니다.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조직 내에서 본인이 특정분야의 specialist로 남을 건지, 전반적인 부분에서 관리가 가능한 generalist가 될 것인가를 결정하고 경력을 관리하는 게 추세였다면, 얼마 전까지는 이 두 가지를 병합한 ’T자형 인재’, 또는 ‘융합적 인재’가 대세론으로 얘기되었습니다. 이제 곧 다가올 미래에는, 아무도 실체를 정확히 모르지만 (겪어본 적이 없으니 당연합니다) ‘4차 산업에 적합한 인재’ 배출해 내야 한다는 게 대세론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지금 현재는 STEM 전공이 선호되고 있지만, 이제는 한술 더 떠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창의적인 인재를 원한다는 게 대부분의 기업 취업게시판에 언급되고 있습니다.
즉, 우리 아이들이 졸업 후 세상에 나갈 때 정확하게 어떤 전공과 직업이 필요하게 될지는 아무도 정확하게는 모른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부모가 최소한 앞으로 변화할 산업군을 찾아보고, 아이의 성향을 파악한 후 다수의 길 외 다양한 선택지를 보여줘야 합니다. 필자도 과연 어떻게 해야 미래에 필요한 인재들이 만들어질 수 있는지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사람 중 하나에 불과해서 많은 고민을 합니다. 이미 각계에서 전문가라 자부하는 분들이 이와 관련하여 학문적인 연구를 하고, 많은 책들이 나와 있어서 여기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배제하겠지만, 제 믿음은 ‘적어도 본인의 성향과 맞고, 그 일을 하면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직업을 업으로 삼아야 롱런한다’입니다. 그래야 행복한 삶을 살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아이가 어떤 방향으로 삶을 영위해갈 수 있도록 고민해 주는 것만으로도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줄이고, 의미 있는 조언을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필자도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니면서 진로와 미래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소재지였던 미국 중부의 작은 도시는 바깥세상의 변화와 글로벌한 흐름, 국제정세에 대해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었고, 그곳에서 나고자란 대부분의 동창들은 다시 그 지역에서 삶을 영위해갈 것 이기에 바깥세상을 목표로 한 삶을 그려볼 이유가 없던 환경에서 유학생활을 했던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상당히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현재 아이의 조기유학을 생각하고 있으시다면, 많은 것을 다각도로 고려하여 첫 단추를 잘 끼우는 것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유학지를 선택하는 데 있어 누구에게 ‘거기 좋다’라는 말만 듣고 결정 하기보다는, 학교 주변도 직접 가보고, 졸업생들과 연결이 될 수 있다면 가능한 다수의 졸업생, 재학생, 그들의 부모들도 만나보면서 많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결정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도 결과적으로 감성적인 결정을 하게 되겠지만 그래도 그래야 합니다.
대부분의 유학생과 마찬가지로 필자의 고등학교 졸업성적도 상위권, 특히 영어의 영향을 덜 받는 수학과 과학은 최상위권이었습니다. 다음에 더 자세하게 시대의 변화와 국제정세를 읽을 수 있는 ‘멘토의 중요성’에 대해 다뤄 보겠지만, 제 주위에는 먼 나라에서 온 한 유학생에게 맞는 유의미한 조업을 해줄 멘토 또는 카운슬러는 없었습니다. 직업상의 성향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성적만을 바탕으로 진학 가능한 engineering school 중 가장 명성이 있는 학교를 선택했고, 특정 전공분야에서는 미국 내 최고라는 학교를 졸업 후 엔지니어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정확하게 2년 뒤 ‘이걸 평생 동안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내면에서 고개를 들었고, 결국 퇴직과 이직을 반복하며 파트타임 병행으로 다른 학위를 추가하면서 직군 변경을 여러번 해야 했습니다. 참고로 그래서 필자는 학사학위 2개, 석사학위 2개라는 아주 우스꽝스러운 학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늦은 나이에 적성 (이라고 할 것도 없이 그나마 잘하면서 아웃풋도 좋은)에 맞는 직업을 찾아 일하고 있지만, 긴 유학 시간 동안 거금을 투자해 얻은 졸업장, 전공과는 무관한 포지션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잘못된 선택과 투자로 먼 길을 돌아와야만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전공을 결정하기 전 누군가 저에게 필요한 조언, 성향에 맞는 직업군과 곧 다가올 미래를 위한 인사이트를 제공해 주었다면 이렇게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먼 길을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후 필자의 결정이 얼마나 멍청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는 1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지금 와서 판단해보면 저는 이과 성향보다는 문과 성향이 더 강한 학생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아마도 그때 그런 확신이 있었다 하더라도 과감하게 문과계열로 진학을 결정할 수 있었을지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면 대부분의 인문계 전공은 주어진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원서를 소화하고, 토론과 에세이로 성적이 평가되었기 때문에, 불과 3년밖에 안된 유학생의 영어 실력으로 문과계열 전공과목들을 따라가는데 충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도 공대 전공으로 대학원까지 마치고 직장에서 5년 정도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이 직업이 나에게 안 맞다’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상당히 혼란스러웠고 불필요하게 돌아온 시간과 비용이 너무 아까웠습니다. 적어도 대학원은 이공계를 선택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간단하게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몇 가지 들어 보겠습니다. 본인이 혼자 익숙한 속도로 뭔가를 학습하는 스타일인지, 조별과제에서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얻어내고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스타일인지에 따라 성향이 크게 나뉘고, 이에 따른 공부 스타일과 전공선택을 고민해야 할 수 있습니다. 주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고 시야가 넓은 성향인지, 주변의 상황이나 유혹은 내 알바 아니다라며 본인만의 스타일을 고집하는 성향인지 따라 대학 캠퍼스 선택이 달라져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만나면서 에너지를 뺏기는 스타일인지, 다양한 사회생활에서 에너지를 얻는 성향인지에 따라 어울리는 직업이 확실하게 다르겠지요? 예를 들면 필자는 한 장소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장시간 실내 활동 시 갑갑해하며, 반복적인 업무보다는 단기적인 프로젝트가 주어졌을 때 빠르게 집중력을 끌어올려 문제를 해결한 후 다음 문제로 넘어가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번 반복적인 업무, 호흡이 긴 장기 프로젝트, 사무실에 오랜 시간 있어야 하는 직업을 선택했다면 당연히 만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이걸 깨닫고 나니 이미 서른 중반이 되어 있었습니다.
지금 직업선택을 고민하고 있는 학생이라면 본인의 성향이 무엇인지 (필요하면 부모 및 주변의 조력자들과) 치열하게 고민하고, 앞으로 필요하게 될 직업군과 절대 없어지지 않을 전공을 선택하고 방향을 잡아가라 조언합니다. 모두가 STEM 관련 직업을 선택하고 유수의 대기업에서 일할 수 없고, 꼭 그래야 성공한 삶이라 하지 않습니다. 사회가 잘 돌아가려면 다양한 직업군이 필요하고, 오히려 극소수의 인력이지만 절대적으로 없어질 수 없는 직업군들이 존재하며, 본인의 성향에 맞게 그 직업의 ‘진입장벽’을 넘을 수만 있다면 오히려 훨씬 더 안정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것을 많이 봐왔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