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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코 Nov 22. 2022

설득

A Walking Embrace - Nils Frahm

오늘은 반드시 희망적인 글을 쓰리라는 다짐을 했다. 

오늘 새벽에는 바람이 많이 불어 밤사이 창문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새벽녘에 어슴푸레 짜증 섞인 눈빛으로 미세한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을 쏘아보았다. 

한 움큼 떨어지는 치아와 교정기 사이에서 일어난 꿈속의 나는 바람이 집 안에서 부는 것인지 바깥에서 부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커튼이 분명히 쳐져있었는데, 이 자리에는 면으로 된 두꺼운 이름하여 암막커튼이란 게 분명히 쳐져있었는데. 

아니다, 그건 거실에 있지. 침실 방에는 플라스틱으로 장식된 나무 선반이 있구나. 

옆에는 사람이 없었는데 갑자기 어느 순간엔가 사람이 있었다가 없었다가 했다. 


숨소리는 미세해서 모두가 잠들고 싶은 밤에만 기억을 상기시키고, 숨을 쉰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이들의 틈 사이에 생과 생을 왔다 갔다 하는 놀이를 한다고 했다. 심심하면 너도 와, 가르쳐주는 것 없이 깨닫게 되는 어린이들이 아주 많은 어느 숲 속에는 키가 150cm 정도 되는 사내들이 쫄쫄이 맬방 바지를 입고 도끼를 들고 쫓아온다고 한다.


오후에는 저녁에 먹을 장을 좀 보려고 하다가 귤을 까먹던 손톱이 다 샛노래진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무작정 화장실에 우두커니 서서 우드 향이 나는 핸드 솝으로 손을 닦곤 했다. 오늘 세일하는 품목이 대충 보니 내가 생전 안 먹는 굴이 1kg에 만 원이라나.


파가니니의 음악을 기억한다. 장엄한 숲에 발을 들여놓는 찰나에 사라져 버리는 악몽과 환희가 교차해서 나를 부르는 것처럼, 빗소리를 들으면서도 화창한 날씨 따위를 기대하는 것이 인간이라나. 


나에게 희망이라니 뭐라니 하는 소리를 하는 유일한 것은 내 안에 믿음이라는 것인데, 이 믿음이라는 것도 친구가 언제든 필요로 하는지 홀로는 영 서있질 못한다. 그래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비스듬히 서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데 이런 불만족의 상황에 만족을 끼워 맞추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를 설득해야 하는 일에 직면한다. 


비로소 1인분의 삶을 한다는 건 유치하리만큼 진실된 것. 


배운 것 없이 어른이 되는 어린이들이 가득한 숲 속에는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하면서 잔혹한 떼죽음을 상상하고 두려워하는 것. 오늘도 무사히 지나가는 하루에 감사하면서 나에게는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넙죽 감사의 이름을 올리는 것. 감사의 무도회에서는 차고 넘치는 위선자들을 하나하나 골라내기가 버거워 원격 조종 장치로 투사해 보이는 이들의 마음 무게를 재어 제 스스로의 무게만 담긴 것은 모조리 도축장 앞에 놓여진다는 것. 두려움이 한없이 작아지기 위해서는 남의 짐을 들어야 된다. 


아, 오늘은 힘써서 희망적인 이야기를 써보려고 했다. 그래서 잔혹 동화도 소환하고 그래서 내 무의식도 가감 없이 당신에게 보였다. 아, 오늘은 꼭 기필코 써보려고 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절망에 아스라이 빗겨나가면서 포근한 보금자리의 축복에 집중하고자 하는 안락한 마음을 저마다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비극이 지나치게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다가오는 삶의 현실 앞에서 주저하는 연인들의 발걸음을 다시 바라보면서 작은 설렘을 느끼는 것으로 화면 속 대리만족을 억지로 끌어올리는 영혼의 절규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다.


오전에는 뭘 하려고 했더라, 신발이 낡아서 내 생일에는 새 신발을 좀 받았으면 좋겠는데. 생각해보니 다음 달 15일 정도에 친구 집들이를 하려고 했는데, 새로운 아이가 태어났다고 하던데. 애기 이름이 뭐였더라. 갓난아이를 보자니 전염병을 혹시나 옮기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약속을 취소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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