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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코 Dec 02. 2022

12월

Hania Rani - Silent Night



엄마는 알고 나는 모르는, 그때의 나는 어린아이, 단순한 모습과 그렇지 않은 마음은 엄마는 모르고 나는 알았던 시절이었다. 12월의 크리스마스가 다가올수록 설레는 마음으로 선물을 기대하는 마음, 뭐가 좋은 것인지 뭐가 나쁜 것인지 서투른 생각으로 나를 기분 좋게 하는 것이라면 소중하게 아껴 혼자 꺼내 먹으려다 다른 아이들과 싱글벙글 나누는 시간도 나쁘지 않구나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는 날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아슬아슬하게 사라지는 지난 추억들이 차가운 얼음 덩어리가 녹아내려 눈으로 떨어지는 입자가 내 혀 끝에 닿을 때까지, 입의 일부분이 얼어붙는 기분이 든다고 하더라도 즐거웠던 시절이 있었다.


추위 때문에 시린 마음이 차가워지지 않을 수 있도록 붙잡는 싸움은 무엇이 좋았는지 무엇이 나빴는지 추억하는 일만으로도 쉽게 만질 수 있는 것.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그리고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엄마의 어깨가 좁아지는 것을 보고 엄마가 이렇게 키가 작았었나, 엄마가 이렇게 약했었나, 미세한 떨림의 시선으로 한 해를 추억하는 일만으로도 나는 뜨거워지곤 한다.


꽁꽁 싸맨 얼어있는 순간들이 이제는 식어버렸지만 그 식은 안개 위에는 그림자보다 더 뚜렷하고 농염한 선이 생긴 것이다. 숨죽여있었던, 너무 어려 사라지는 줄도 몰랐던 일들이 모두 연결되어 하나와 하나를 연결할 힘을 기른 것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아팠나, 어제도 모두 지나가버리고 불투명한 공허의 틈 사이에 그렇게 필요 없는 것들을 채워놓고 선물인 줄 알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것이 아닌 것은 손에 잡히기도 전에 사라져 버린다는 사실에 감사하기도 한다.


그때는 그랬었지, 추억하는 일만으로도 뜨거운 마음을 찾는 일이 많아질수록 이제는 진짜 알맹이가 채워지는구나 생각을 한다. 때로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무구함이 그리워지기도 하다가도 뭉툭한 덩어리를 여러 개 끌어안고 있는 나의 모습을 마주할 때면 대견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순간이 벅차질 때까지, 조금만 더 뛰어야지 하던 경주의 마음을 그리고 있노라면 초등학교 봄 운동회에서 상대가 주는 바통을 내치고 혼자 달렸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 1등을 앞둔 결승선에서 나는 배가 아픈 척을 하면서 고꾸라지곤 했다. 


잘 생각해보면 1등을 해야 한다는 다른 이의 시선들에 갑작스럽게 쪼그라든 게 아니었을까 싶다. 그게 아니라면 당연히 패자의 자리에서 위로를 받고 다정한 엄마와 아빠의 말들 안에서 더 사로잡히고 싶은 발칙한 장난이었을지도 모른다. 관심에 굶주려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태생부터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아나기 힘든 존재로 태어난 까닭이다. 그래서 어른이 되는 일은 쓸쓸하고 고독한 길로 당연히 걸어 들어가는 일로 느껴지기 마련인가 보다. 


내가 잃은 것은 당신에게, 기억은 시간성에 지배당하지 않기에 우리가 닿을 수 있는 물리력을 잃은 순간이다. 자주 회상하고 자주 돌아보면서 아끼고 아껴주면, 말하기 힘든 언어가 힘을 잃는 지점에서 알갱이들을 발견하게 된다. 나와 함께했던 이들이 사라지지 않은, 영원한 결속을 맺는 아름다운 비밀의 정원. 고요함 속에 12월이라는 마지막 달은 사랑으로 가득 채워 선물하고 싶은 이들을 추억하는 약속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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