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소 사장님께 온 편지
‘죄송합니다. 개인 사정으로 인하여 세탁소를 8월 31일까지 운영하고 폐쇄하오리.’
지난해 9월, 큼지막한 글씨로 써내려진 글이 적힌 종이가 문에 붙어있었다. 9월 5일까지는 찾아가든, 연락을 주면 배달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평소 계량 한복을 입고 다니시는 세탁소 사장님의 이별 편지이자 독촉장이었다.
아파트 상가에 있는 이 세탁소 사장님은 예고 없이 불쑥 세탁물을 가져오셨는데, 세탁물을 들고 다니시다가 집에 불이 켜져 있으면 초인종을 누르시는 것 같았다.
주말 부부에다가 늘 퇴근이 늦은 우리집이 사장님께 얼마나 골칫거리였을지. 가게를 폐업하는 순간까지 우리집 세탁물을 큰 짐이었을 것 같아 죄송했다.
사장님께 마지막 배달을 부탁하는 전화를 하는 와중에 “근데 왜 그만하시는 거에요?”라는 말이 툭 나왔다. 몇 번 뵙지도 않은 분인데도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질문이었다.
사장님은 하소연 하시듯 “요즘 세탁소 안 돼요. 아침 일찍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나와서 일하는데 한 달에 160만 원도 못 버니까..”라고 말씀하셨다.
하긴 우리만 해도 스타일러가 있어 맡기는 옷의 개수가 줄었고, 남편이 지역 근무지에 있다보니 더 횟수가 줄었다.
거기다 주변 친구들은 집 밖에 세탁물을 내놓으면 빨래를 해서 다시 가져다주는 서비스를 이용한다고 했다.
이런 세월에 밀려 사라지는 세탁소가 아쉬운 건, 세탁소는 1인 가구였던 내가 동네에서 안부를 묻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첫 자취방이자 7년을 살았던 집 인근에 있던 세탁소에 면접 정장을 자주 맡겼었다. 사장님은 내 몸 보다 큰 흰 개를 키우셨는데, 밤마다 산책을 다니시곤 했다. 개를 무서워하다보니 동네 거리에서 마주치면 슬슬 피했는데, 세탁소를 가려면 개를 지나쳐야 했다.
하지만 굳이 굳이 늘 그곳을 갔다. 무서움을 꾹 참고 세탁소 문을 열고 옷을 맡기고 옷을 찾아왔다. 그 사장님처럼 블라우스 묵을 때를 말끔히 제거해주시는 분이 없을뿐더러 굳이 어디 사는 누구, 이름을 말하지 않아도 내 얼굴을 슥 보시고 세탁물을 건네주시는 츤데레가 좋았던 것 같다.
어느날은 급하게 면접이 잡혀 정장을 맡긴 적이 있었는데 사장님은 무심하지만, 흔쾌히 받아주셨다. 살갑게 서로 안부를 묻지 않아도 나를 알아봐주는 것만으로도 외딴 섬 같은 고독감이 사라졌던 것 같다. 그 동네에 나의 공간이 바늘만큼 허락된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20분 정도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가면서 인근에 있는 다른 세탁소에 가게 됐다. 집 인근에 학교 돌담길이 있어 영화나 드라마 촬영 장소로 많이 나왔는데, 이 세탁소도 그 오래된 풍경에 함께 담기곤 했다. 그만큼 그 세월을 함께 담고 있었다.
세탁소 사장님도 어느새 이름을 기억하시곤 ‘000이요’라고 말하면 ‘알아요’ 하며 세탁물을 주셨다. 가게 앞을 지나가면 퇴근하느냐며 인사를 건네시곤 했다. 나도 어느새 사장님이 지방 어디 분이고 가족들은 그곳에 있고, 세탁소에서 혼자 생활하시는 것까지 알게 됐다.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지금 집으로 이사 오는 날, 집에 가득 쌓여있는 옷걸이를 가져다 드리며 "그동안 감사했다"고 인사를 드렸는데 그제서야 그 동네를 떠나는 게 실감이 났던 것 같다.
#. 마지막 세탁물
지난 9월 세탁소 사장님께 마지막 세탁물을 건네 받았고, 아파트 단지 상가에 있던 세탁소는 예정대로 문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