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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생강 Oct 04. 2022

'서울대'보낸 엄마? 살짝 손들어 봅니다

서울대 가서 음대생 노릇하는 융합형 인재

그렇다. 필자도 우리나라 최고 지성의 요람이라는 '서울대'에 진학한 자녀가 있다고 살짝 손들어 본다.

아이가 자랄 때의 육아일기를 들여다보니 이렇게 쓰여있다.

아이가 26개월이 되었을 때 함께 놀면서 물어보았다.
"승이는 이다음에 크면 뭐가 될 거야?"
"으~응, 포끄레잉!"
"진짜? 진짜 승이는 포클레인이 될 수 있어?"
"응! 승이는 숑숑! 숑숑! 움직이는 포끄레잉이 될끄야!'
아이는 한쪽 팔을 포클레인처럼 굽혀 휘휘 휘저으며 확신에 차 대답했다.  
40개월이 되었을 때 또 함께 놀며 물었다.
"승이는 이다음에 크면 뭐가 될 거야?"
"으응~. 엄마가 될 거야."
"왜 엄마가 되고 싶어?"
"엄마가 맛있는 밥을 해주고 또 세상에서 '승이' 하고 같이 제일 예쁘니까 엄마가 될 거야"라고 말했다.

사실, 난 이 글을 쓰면서 마치 나 스스로와 자식 자랑하는 것처럼 들릴까 봐 상당히 조심스럽고 쑥스럽다.

그저, 나의 경험은 이러이러했다 하는 것이니, 공감이 되는 것만 들으시면 되겠다.



아이는 성장하면서 그 나이에서 생각하고 볼 수 있는 꿈이 계속 바뀌어져 갔다.

나는 아이의 꿈이 계속 바뀌어 간다는 흥미로움보다, 보이는 것을 그대로 담는 깨끗한 도화지와 같은 순수한 것이 아이의 마음이란 사실이 두려웠다.  

아이들은 부모를 보고 배우고 느끼고 생각하고 꿈을 꾼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나 자신도 아직 완벽하지 않은데 내가 아이를 통한 거울이 된다는 사실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

그렇지만,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하여 또 좋은 가정을 만들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은 나를 더욱 성장하고 성취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에 충분하였다.


그러면, 내가 생각하는 좋은 부모란 어떤 것인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주는 부모, 아이가 꿈을 꿀 수 있게

함께 조력해주는 부모였다. 아이를 많이 놀게 하고 싶었다. 놀면서 오감을 통해 느끼고 경험하고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랐기에 특별히 강요된 학습을 시도하거나 하지 않았다.

유치원 시절에도 많이 놀게 하였고 아이는 이에 크게 부응하여 놀아도 땀을 뻘뻘 흘려가며 정말 열심히 놀아주었다.

초등학교를 가서도 열심히 놀았는데 아이가 와서 말하길 '앞으로 나는 치마를 입지 않을 거야, 왜냐하면 치마를 입으면 열심히 놀 수 없거든. 바지만 입을 거야!'라고 선포할 정도로 열심히 뛰어놀았다.

중학교에 가서도 친구들과 재미있게 노는 것이 좋아서 학교를 즐겁게 다녔다.

논다고 해서 친구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학교에서 말썽을 부린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부모가 자녀의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항상 아이의 '마음을 들을 귀'와 '포근히 안길 품'을 열어 놓는 일은 필수조건이라 생각했다.

나에게 1프로의 의심도 없이 '엄마!'라고 부르는 경이로움과 신뢰를 보이는 어리고 작은 아이.

나는 그 작은 생명이 내게 주는 신뢰에 압도당해서 나를 100프로 의지하는 그 '어린 사람'에게 무엇이든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직장생활이 피곤해도 함께 침대에 누워 포근히 꿈나라로 가라고 아이의 머릿결을 쓰다듬는 일은 다정하고 행복한 일이었다.  


낮동안 아이에게 100퍼센트의 자유를 허락하는 일은 아직 덜 여문 아이에게 꼬삐 풀린 망아지가 되도록 방치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자유로운 시간이 많은 만큼 아이가 해야 할 학교 과제나 스스로 돌봐야 하는 일은 우선순위가 되게 하였다.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은 부모의 강요가 아니라 스스로의 경험과 선택을 통해서 스스로의 습관이 되도록 도왔다.

우리에게는 학교의 교과과정이나 발달과정에 아이가 8할만 이해하면 무난하다는 교육철학이 있었다.

따라서, 경쟁의 대상이 학급 친구나 주위 친구가 아니었고 스스로에게 성취감과 당당함을 느낄 수 있으면 오케이였다.   

나머지 2할에 해당하는 것은 성장하며 자연스레 이해하고 터득하게 되리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아이는 8할 이상을 해내었다.

아이를 우리의 소유물로 보기보다 하나의 인격체로 보았기에 강요보다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아이가 교우관계가 원만하고 학교생활이 즐겁다면 잘 자라고 있구나 하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아이를 많이 놀게 하였을까?




큰 그릇을 만들려면 많이 많이 놀게 해야지


작은 그릇에는 작은 생각이 담기고 큰 그릇에는 큰 생각이 담긴다.

이미 만들어진 작은 그릇에 아무리 큰 생각을 담으려 해 봤자 흘러넘치기만할 뿐 큰 것을 담을 수 없다.

큰 그릇은 급히 서두를 필요도 없고 흙을 치대고 치대어 천천히 넓고 크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 유치, 초등, 중등 시절에 될 수 있는 한 많이 놀게 하였고 공부의 중요성을 강요하지 않았다.

창의력은 늘 엉뚱한 생각에서 만들어지고 많이 놀아 본 아이가 융합적 사고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많이 노는 과정에서 문제 해결 능력이나 창의적인 사고가 가능하다는 것은 우리 어른이 경험으로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한글교육을 위해 학습지를 시킨다든가 그것을 위하여 별도의 학습에 몰아넣지 않았다.

대신 저녁마다 함께 누워 잠자리에서 동화책을 읽어주는, 보통 가정에서 부모가 하곤 하는 그런 것을 하였다.

또한, 맘껏 놀고 난 후의 뒷정리라든가 학교에서의 과제 등... 도 왜 해야 하는지 스스로 필요성을 느끼고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자율에 맡겼고 도움을 요청할 때 도와주었다.

아이는 스스로가 귀함을 알아갔고 책임감을 배워갔다. 당연히 자신의 일에 우선순위가 있음도 알아갔으며 스스로의 일은 시키지 않아도 책임 있게 하고 열심히 놀러 나갔다.




엄마도 아이와 함께 성장해야지


아이 보고 '무엇이 되어라' "이것을 해라' 하기보다 중요한 것은, 엄마도 엄마의 삶을 살고 엄마의 꿈을 꾸는 것이다.

엄마도 꿈이 있었지 않은가? 나 스스로의 자아성취를 위한 공부를 천천히 하면 된다.

'공부해라, 책을 읽어라'가 아니라 내가 부엌 식탁에서 책을 읽고 공부를 하면 되는 것이었다.

물론, 이것이 직장생활과 육아를 동시에 병행하는 엄마에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의 바른 성장, 큰 그릇도 중요했지만 내 개인적 발전과 자아성취도 중요하였기에 나는 나대로

아이를 키우면서 직장을 다니고 대학원 석. 박사 공부를 계속하였다.

그러니, 아이가 자라면서 자연스레 열심히 놀고, 노력하고, 공부하고, 책을 찾아서 보는 일은 그냥 당연스러운 집안 분위기였다.

하나의 개체, 하나의 인간으로서, 아이는 아이의 인생이 있고 엄마는 엄마의 인생이 있는 것이었다.

당연히 아이도 '엄마는 엄마의 인생을 열심히 충실하게 사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할 것은 너무 세게 달리지 말라는 것이다. 세게 달리면 부작용이 반드시 따라오는데

필자는 30대를 너무 세게 달려서 '번아웃 증후군'에 한동안 시달렸었다.

그래서 느리고 더디 가라고, 아이의 성장과 동시에 엄마로서, 사회인으로서 서서히 성장하고 성취하는 삶을 살아가도 된다고 권하고 싶다.




외국어 교육은 필수죠


사람은 아는 만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같은 말이라도 어느 언어로 표현하느냐에 따라 그 깊이와 전달받는 감성과 느낌이 다르다.

영어의 관용적 표현을 배울 때나 그 단어가 생겨난 뿌리를 공부할 때면 동. 서양의 일이 어쩌면 이리 같으면서도 다른지 그 스토리에 재미와 놀라움을 느끼게 된다.

필자는 외국인들과 일하는 시간이 많았었다. 그들과 부대끼며 생활하면서 영어를 포함한 외국어를 말할 줄 아는 것이 그 사람의 언어능력과 문해력의 높음에 잣대가 되지 않음을 알았다.

외국어는 하나의 소통의 도구로서의 언어이므로 그 도구가 어떤 수준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이해, 소통되는지는 온전히 개인의 역량에 달려 있는 것이다.

하나의 외국어를 배우면 그 과정에서 그 언어가 속해있는 역사와 관습, 지리, 환경 등에 관심을 갖게 되고 사고와 경험의 폭, 소통의 폭이 넓어지게 된다.  

아이도 어릴 적부터 외국어를 접했다.

동요로 먼저 외국어의 소리에 익숙해졌고 게임과 놀이를 통해 그들의 습관이나 사고방식, 언어적 표현, 동작 등을 편견 없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뇌의 사고영역을 깨우는 작업이므로 한글로 생각할 때와 서양식 사고에는 다른 표현의 틀이 만들어진다.

내 의사를 표현함에도 그들이 잘 알아듣는 그들의 표현방식을 구사하여야 소통에 문제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글로벌 시대에 평생에 걸친 다양한 외국어 학습의 중요성은 두말하면 잔소리일 것이다.

 



음악은 풍성한 감성을 갖추기 위한 평생 친구지


아름답고 섬세한 감성과 다정한 친구가 필요하다면 음악만큼 좋은 것이 있을까?

아이도 7살 어릴 때부터 악기를 하나 선택하였고 스무 살이 넘은 지금껏 클래식 악기를 취미로 계속하고 있다.

우리가 자란 시대와는 다르게 요즘은 학교 방과 후 프로그램이 잘 마련되어 있어 저렴한 비용으로 악기를 접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아이는 방과 후 프로그램을 통하여 바이올린을 접하고 플루트를 접하였지만 스스로 자신과 맞는 평생 악기는

따로 있음을 알고 결국은 다른 악기를 선택하였다.

아이가 초등 고학년이 되고 중, 고등학교 시절, 여느 아이들과 다름없이 걸그룹을 좋아하고 아이돌 가수들의 노래와 근황을 주시하는 그런 사춘기를 보낼 때에도 주 1~2회 악기 연습을 계속하였다.

꾸준하게 조금씩이라도 악기를 손에 놓지 않고 사춘기를 보냈고 고3 수능과 내신 공부의 스트레스 속에서도 주말에 짬을 내어 악기를 다루며 수험생의 스트레스를 풀곤 하였다.


그리고 악기 연주는 대학에 진학하여서 동아리 활동을 통해서 빛을 발하게 되었다.  

아이는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동아리에 들었다. 학기 중에 공부를 하고 강의가 비는 시간에 동아리 활동을 하였다. 방학이 되었을 때는 오케스트라 공연 발표를 위해 70여 명의 타과 학생들과 함께 클래식 대곡을 집중적으로 연습한다.

어릴 때보다 감성이 풍부해지고 삶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으므로 당연히 음악에 대한 이해의 폭도 깊어지고 삶을 대하는 통찰 역시 음악을 통하여 깊어져 간다고 한다.

  

아이는 어제도 어떤 링크와 해설을 카톡으로 보내왔다.

브람스의 명곡과 차이코스프키의 대곡이 있으니 엄마, 아빠도 많이 들어보고 발표회에 오라고 했다.

약대에 가서 음대생의 생활을 맛보고 다른 학제 간의 교류가 음악이라는 공통의 분모에서 생겨난다.

학생들이 대학에서의 자유를 알코올과 연애활동에 집중할 때, 아이는 '음악'이라는 공감을 가지고 친구와 교류하고 친분을 쌓고 미래를 위한 공부를 한다.

엄마, 아빠가 예전에 ‘어린 사람'에게 원했던 대로 대학가서도 잘 놀고 인생을 잘 즐기고 있는 것이다.

 

내가 봐도 아이는 참 멋이 있는 바쁜 인생을 산다.

요즘 말로 '갓생'이다.




여기서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

"너 지금 행복하니?" 하고 아이에게 물었다.

대답은?

"100프로 만족해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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