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거너로 사는 세상
비거너(Veganner)
= 비건(Vegan) + 비기너(Beginner)
= 비건 초심자
내 맘대로 이름 붙여봤다
약 2주 전 나는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 SNS와 브런치에서 연재 중인 '자취한끼' 시리즈에서
고기와 해산물 사진을 생각 없이 올리던 내가
어쩌다가 비건을 향해 움직이게 되었을까?
비거니즘을 향한 관심은 꽤나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스타그램이라는 플랫폼보다 페이스북이 훨씬 익숙하던 시절
나는 한 가지 게시물을 발견한다
도축과 관련된 제목과 함께 어미 소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진을 메인으로 내걸어둔 기사.
그 사진은 타자화 되어있던 동물과 나의 관계를 다시 연결해 주는 계기가 된다.
나에게 가축, 그러니까 돼지, 소, 닭, 오리는 동물이기 이전에 식탁에서 마주하는 '고기'
즉 음식의 개념이 더 컸다.
시골이 고향인 나는 종종 소를 키우는 축사를 지나치기도 했는데 그때 마주한 살아있는 생명체인 '소'와
식탁에서 마주한 죽은 '소'의 살점을 연결시키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기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어미 소의 눈을 본 순간
그리고 그 눈물이 내가 생각 없이 행하던 소고기 소비로 인한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한 순간
더 이상 식탁 위의 고기는 단순히 맛있는 음식이 아니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렇게 좋아하던 고기를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고기를 씹을 때마다 이건 한때 살아있던 생명의 살점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육식을 아예 끊지는 못했다.
우리는 육식이 디폴트인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고 그 세상에서 살아가기에 채식주의는 너무나 불편한 생활이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데 있어서 동물성 단백질은 꼭 필요하다는 건강 정보가 널리 퍼져있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게 나는 아주 소극적인 채식주의를 실천한다.
남들과 함께 식사를 할 때에는 굳이 고기를 피하지 않고, 나 혼자 생활할 때에는 육식 소비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고기를 소비하게 된다면 최대한 '동물복지'라는 인증이 붙어있는 제품을 구매하는 방식으로.
남들이 고기를 먹자고 할 때 가끔 한 번은 채식 요리를 제안하는 방식으로.
딱 그 정도까지만.
그리고 약 2주 전, 나는 '아무튼, 비건'이라는 책을 읽는다.
그 안에는 잔인하고 무섭다는 이유로 애써 외면해 왔던 도축의 과정과 육식 생활이 야기하는 환경 문제, 채식에 대해 잘못 알려진 이야기들이 들어있었다.
그것들이 너무나 논리적으로 정리되어 있어, 읽는 내내 나는 나도 모르게 육성으로 공감을 하고 말았다.
그렇게 책을 덮은 후, 김한민 작가님에게 완벽하게 설득당하여 바로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단 하루 만에 채식주의자가 되어버린 내 집에는 미처 지우지 못한 그전 일상의 흔적이 잔뜩 남아있었다.
고기 분말이 들어간 라면, 집에서 가져온 스팸과 참치캔, 팟타이를 위해 구매해 뒀던 새우, 단백질 섭취를 위해 필수인 줄 알았던 동물복지 계란, 매일 아침 식탁에 오르던 그릭 요거트, 대형 할인에 눈이 돌아가 잔뜩 사서 쟁여놓은 아이스크림 등.
나는 분명 채식을 지향하고 육식을 지양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그렇게 말하고 다니는 게 나름 떳떳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인지하지도 못하고 소비하던 동물성 재료들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그렇게 나는 비거너로써의 첫 일상을 시작했다.
집에 남아있는 이 흔적들을 지우는 것!
채식주의자에도 종류가 많은데 나는 비건을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그럴 때는 락토-오보 식단을 선택한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예외 상황을 제외하고는 최대한 비건 식단을 유지하려고 노력 중!
아무튼, 그래서!
우선 집에 남아있는 통조림과 스팸은 당근을 통해 팔기로 하고
계란과 요거트, 유제품이 들어간 아이스크림은 집에 있는 것까지 다 먹고 더이상 구매는 하지 않기로.
그리고 라면은 본가에 가지고 내려가고, 새우는 남아 있는 것까지만 먹고 더이상 섭취하지 않기로.
이렇게 정리했다.
앞으로의 생활에서 완벽한 비건 식단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절대 장담할 수 없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할 것이고
완벽하지 않더라도 자책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비건'에 이런 구절이 있다.
완벽한 비건을 몇 명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다수의 사람들을 더 '비건적'으로 만드는 것이 사회 전체로 봤을 때 훨씬 효과적이라고.
동물을 살리는 데도, 환경을 보호하는 데도, 공중 건강을 위해서도 말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행동을 하고,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넘어져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넘어지는 게 두려워 발을 내딛지 않는다면 평생 그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얼마 전 새로운 삶을 향한 한 걸음을 뗐고, 앞으로 얼마나 많이 넘어지게 될지 감히 상상할 수 없지만
씩씩하게 툭툭 털고 일어나 멈추지 않고 계속 걸을 것이다.
앞으로 마주할 걱정보다는 설렘이 더 큰 비거너의 일상
글로도 차곡차곡 소중히 남겨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