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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호 Jun 19. 2024

[2024  독후기록 38] 마지막 스승, 법정 스님

정찬주 작가님 책.

[마지막 스승, 법정 스님]

정찬주, 여백, 2024년 2월, 볼륨 331쪽.



사방에 능소화와 수국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습니다.  아직 6월 중순임에도 불구, 일찍 찾아온 무더위로 심신이 쉬이 지쳐가네요.


법정스님의 在家제자인 정찬주 작가님 新作입니다.  작가님은 1953년 전남 보성生입니다.  샘터社에 근무하며 법정스님 책 원고 편집 담당자로 일하며, 스님과 오랜 인연을 맺으셨네요.  당시 샘터社의 편집자는 동화작가로 우리에게 알려진 故 정채봉 님이시고, 작가님은 副편집자 정도로 보시면 됩니다.  다른 高僧으로부터 출가를 권유받았지만 속세에 남아 작가로 사시는 분입니다.  우리 정신문학의 뿌리를 일깨우는 소설 100여 권과 여러 산문集을 펴내신 多作家시고요.  조선일보에 <조용헌의 살롱>을 싣고 계시는 조용헌 선생님과 비슷하게, 400 여곳의 암자를 직접 답사하여 3권으로 엮어낸 [암자로 가는 길]에 유독 눈길이 가네요.


작가님은 2002년 전남 화순 계당산 자락에 산방 이불재(耳佛齋)를 짓고, 텃밭을 가꾸며 집필에 전념 중이십니다.  제가 사는 광주에서 가까운 곳이니, 시간 내어 한 번 방문해 볼 생각입니다만, 산방을 불쑥 찾아오는 불청객들이 많아 싸리문에 ‘집필 중’이라 써붙여 놓으셨다기에, 방해되지 않도록 멀찍이서 바라보다, 용기가 나면 차 한 잔 얻어 마시는 시도를 해 보려고요.ㅎㅎ


책은 총 세 부로 구성되었습니다.  1부는 ‘맑고 향기로운 스님’이라는 제목으로, 스님께서 보내준 엽서와 편지, 유목에 붙인 사연들을 이야기합니다.  작가님은 집필실 벽에 호미를 걸어 두었다는데요, 새벽같이 논밭으로 나와 일하는 산중농부들을 보면서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라 自問하며 스스로를 다독인다고 합니다.


차와 관련해서 唐시인 노동스님이 지은 <칠완다가>라는 詩를, 법정스님께서 <일곱 잔의 차 노래>로 의역하셨는데, 같이 감상해 보시죠.


차 한 잔을 마시니 목과 입을 축여주고

두 잔을 마시니 외롭지 않고

세 잔 째에 가슴이 열리고,

네 잔은 가벼운 땀이 나 기분이 상쾌해지고

다섯 잔은 정신이 맑아지고

여섯 잔은 신선과 통하여

일곱 잔엔 옆 겨드랑이서 맑은 바람이 나는구나.


이 詩를 읽다 보니, 커피나 술 생각보단 차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2부 ‘마지막 스님 법정스님’에선 스님께서 기거하셨던 불일암 공간에 저장된 추억과 사연들의 기록입니다.  작가님께서 칠순에 접어드시다 보니, 기억이 흐려지게 될 것을 저어하여 정리해 두셨습니다.  법정스님께선 2010년 3월에 입적하셨는데, 그때 쓴 ‘추도사’가 123쪽에서 126쪽에 걸쳐 실려 있습니다.  옮기기엔 분량이 많아 생략합니다.


작가님께서 중학교 2학년 때 읽었고 지금도 기억하는,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에 실린 글귀를 들려주시는데요.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은 지금 이 순간이고,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이 순간에 만나는 사람이고,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일은 지금 이 순간 만나는 사람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푸는 일이다(135쪽)”에서, 지금 살고 있는 우리 일상의 중요함을 다시 깨닫습니다.


스님께서 애송하셨다던, 다산 정약용 선생의 詩 <獨笑>, ‘홀로 웃다’도 감상하시죠.


양식 많은 집은 자식이 귀하고

지식 많은 집은 배고픔이 있으며

높은 벼슬아치는 반드시 어리석고

재주 있는 사람은 재주 펼 길 없다.

완전한 福을 갖춘 집 드물고

지극한 道는 쇠퇴하기 마련이며

아비가 절약하면 아들은 방탕하고

아내가 지혜로우면 남편은 푼수이다(이 부분에서 많이 찔렸습니다ㅠㅠ)

보름달 뜨면 구름이 자주 끼고

꽃이 활짝 피면 바람이 불어댄다

세상일이란 모두 이런 거지

나 홀로 웃는 까닭 아는 이 없을걸.


마지막 3부 ‘법정스님처럼’은 정찬주 작가의 산방인 ‘이불재’에서 경험한 사계절 이야깁니다.


편안하게 읽히면서,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그런 책이었습니다.

읽으며 밑줄 진하게 긋고, 선택적 필사해 본 좋은 문장들 함께 합니다.


“밤하늘이 아름다운 까닭은 크고 작은, 밝고 희미한 별들이 모두 제자리에서 반짝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이란 제자리에서 자기 몫을 다 하는 것이다.”(187쪽)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군더더기를 없애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만년필이라도 한 개면 족하지, 두 개는 군더더기다.”(211쪽)

이래서 스님께선 하나 이상을 갖지 않으시고, 주변분들에게 다 내어 주셨답니다.  그 좋아하는 차를 우리는 다기조차도 한 세트만 가지고 계셨다고.


“우리가 진정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소유하려 하거나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가끔 목말랐을 때 그리움을 만나야 한다.  소유와 집착은 사랑이 아니다”(221쪽)


“귀 동냥한 지식은 남의 것이지만, 체험 속에서 자각한 지혜는 내 것으로 쌓인다.”(237쪽)


지혜를, 세상사는 이치를 알고 싶으신 분, 마음의 평안을 찾고 싶으신 분들께 일독을 추천드립니다.


올해 38번째 책읽기


#마지막스승법정스님  #법정  #정찬주  #이불재  #독후기록  #불일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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