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이 추워서 책상을 안방에 들여놓았더니 침대에 올랐다가 책상으로 훌쩍 넘어온다. 저러고 자리 차지. 그러니 내가 일을 못할 때가 많은데 사실 쑨이 핑계로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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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보고 있으면 결론은 저것이다. 귀가 쫑긋하다가 두 눈의 각도가 조금 내려가다가 턱이 책상까지 떨어지며 눈이 초승달이다가, 그 눈이 일자로 쫙 다물리고 잠!
며칠 전에 이 녀석이 머그잔을 깨 먹었다. 십삼 년 동안 좋아했던 머그다.
정든 머그의 장렬한 최후를 남겨야지 ㅠ
저 머그 입은 태순이 머리가 딱 들어간다. 바닥까지 남은 커피는 그래서 태순이가 못 먹는다. 깊이도 깊을 뿐더러 머리가 끼어버려서 되빼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그날은 반쯤 남은 커피를 뭘 한다고였는지 몰라도 책상에 두었던 거 같다.
'쿵'
둔탁한 소리에 불안. 분명 뭔가 깨진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안방 책상 밑으로 머그가 조각나 있다. 이놈이 중간쯤 남은 커피를 먹다 그 맛에 심취하셔서 고개를 끝까지 들이 미신 모양이다. 컵이 빠지질 않으니 어찌어찌하다 바닥 없는 공간으로 닿자 덜컥 머그 제 무게로 크악하고 떨어진 듯.
생각하니 아찔하다. 눈이 컵에 든 쑨이가 잘못하면 같이 책상에서 떨어졌을 수도 있고 숨쉬기 힘들어 곤란했을 수도 있고. 좋아하던 정든 머그였지만 말없이 치운다.
다 잤는지 슬그머니 일어나더니 또 이 잔에 다가가 남은 커피를 핥아먹으려 한다. 스리슬쩍.
야!!!
드디어 오늘은 나에게 덜미를 잡혔다. '꼼짝 마'인 이놈이 너무 우스워서 찰칵. 동물학대 아닙니다요. 살살 잡았는디 ㅠ.
남은 커피를 포기하고 이젠 자꾸 내 눈을 피한다. 태순아, 여기 봐, 해도. 내가 너무했나;;
이 잔을 또 깼다 한들 내가 뭐라고 하겠는가. 코펜하겐에 간 기념 삼으려고 손 그림이 이쁜 것으로 두 개 사 왔는데 그 기념 하나 없어지는 거지. 아보카도 할 때 잘 쓰고 있고 달달이 커피 먹고 싶은 날도 쓰기 좋다. 없으면 다른 잔에 한다고 일 생기는 거도 아니니 한다만 한 번 더 바라봐지네. 너도 갔을 수 있었다 싶어.
며칠 후.
에효... 손 멱살도 유효 기간이 지났는지 내가 다가가서 찍는 줄도 모르고 코 박고 남아있지도 않은 커피를 ㅠ.
이제 얼굴이 다 들어갔다;;
또 멱살을 잡나 하다
'울 엄마는 왜 맨날 과격이냐, 큰일도 아닌데.'
할까 봐 오늘은 안아서 떼어 놓는다. 그러니 금방 내 품에서 기절, 잠든다. 머리를 이리 산발을 하고.
커피 핥다 떡진 태순이 머리
저 잔은 오늘도 살아남았다만 금이 갔다 해도 태순이랑 요렇게 사는 게 더 좋다. 커피 마시고 발딱 일어나 바로 치워야 되는 게 귀찮긴 하지만. 그래도 돌아보니 태순이가 짜달시리 큰 사고를 친 건 많이 없다.
근데 저 머그가 멀쩡한 채 주방 선반에서 펑퍼짐한 궁뎅이 깔고 있을 것만 같애. 십삼 년 정이 여태 안 떠났네...크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