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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수 Jan 08. 2024

민화, 정다운 그림이군요. 4

호작도 (虎鵲圖) 걸다

내가 그린 민화 중에 걸어 두고 싶은 것은 아래 호작도이다. 호작도는 까치호랑이 그림을 말한다. 서낭신이 까치를 시켜 범에게 신탁(神卓)을 전달한 그림 또는 어리석은 권력자 범을 지혜로운 서민 까치가 놀려 먹는 풍자 그림이라고도 한다. 가정에서 거는 호랑이 그림은 재앙을 막아주는 벽사( 辟邪) 기능을 주로 한다.


석 달여에 걸친 민화 수업은 끝났지만 기념으로 하나 남겨서 족자를 해 보고 싶었다. 거한 액자보다는 간단한 걸그림이 내 실력에 다. 당연히 이 호랑이를 골랐다.



내가 그린 호작도. 이놈이 은근 좋다.



민화를 만나게 된 인연도 호랑이 때문이었다. 동해남부선이 폐선이 되면서 기찻길 옆 오막살이들이 문화 공간이 되어 갔다. 이름도 고운 '청사포' 바다 앞 작은 오막살이가 어느 날 가 보니 그림집이 되어 있다.


'북청화첩'.


주인장은 갤러리의 문턱을 낮춰서 일반 사람들이 쉽게 그림을 소비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들고 싶어 했다.  문화도 '권력'이어서 우리 같은 일반인들은 그 생태계 앞에서 주눅 들지 않던가. 의외로 협조해 주는 작가들이 많아서 그럭저럭 운영이 된다고 하였다. 내가 갔을 때는 민화 작가의 전시가 있었다. TV 사극에 작품이 오르는 유명한 이정옥 작가라 한다. 작년 초, 호랑이의 해다 보니 호랑이 그림이 단연 인기가 좋았다. 이 멋진 거대 호랑이는 이미 솔드 아웃.


맹수의 눈이 총명한 듯 다정스럽다. 깊은 산속도 보이고 힘찬 해 기운도 느껴진다.  금빛의 변주가 화사하고 다이내믹한데 실제 색감이 안 나와서 아쉽다.



민화에는 팍팍한 인생을 해학과 너그러움으로 살아내던 평범한 사람들의 지혜가 담겨있다. 매사 심각하여 삶이 무겁기 그지없고 도시의 회색에 갇혀 사는 내게 '너도 나처럼 이리 밝게, 색색이 한 번 누려 봐.' 하던 그림. 그때, 민화의 매력을 보았다. 해 보고 싶었다. 그게 인연이었다.




예전에는 기복적인 행위가 좀 우습다고 생각했다.

 '그런다고 복 들어오면 복 없는 사람 어딨노.'

데 민화를 그리고부터는 복을 빈다는 것에 고개 끄덕이게 되었다. 귀여운 녀석을 뚝딱 그려 놓고

"호랑아. 우리 집을 지켜주라."

말 붙이는 것이 소박하고 정스럽지 않은가. 이 벽사의 기도는 걸쭉한 주술이라기보단 그리 되면 너 좋고 나 좋은 경쾌한 소망이다. 그림 봐서 좋고 집 잘 되면 더 좋고. 누이 좋고 매부도 좋으면 훨 좋고. 이런 마음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흥이 나고 여유로우니 재미지다.


그래서 나도

" 네 이놈 호랑아, 우리 집 잘 지켜라이."

하려고 호작도를 걸었다. 내가 그렸다~ 하려고 낙관이랄 게 없으니 도장 하나 꺼내어 이놈 꽁무니에 꾹 찍었다. 하하.


그림을 볼 때마다 기분이 너무 좋다.


호랭이가 집을 잘 지킬지 똑똑한 까치가 보고 있으니 안심이다.





새해가 새하얀 가슴으로 기지개를 켜고 있다. 호작도가 여러분 가정에도 복을 드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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