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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수 Dec 14. 2023

민화, 정다운 그림이군요 2

동안 그린 민화 단상

1

민화 수업 세 번째 그림, 모란도.


모란은 부귀영화를 준다고 한다. 부를 가지고 싶어 하는 욕망은 누구나 있다. 요즘에는 '경제적 자유'란 말을 많이 쓰는데 본질은 같지 않을지. 항상 딜레마다. 부가 있으면 행복할 것 같아 부를 이루려 노력하지만 성취하려고 그에 집착하다 보면 오히려 행복을 잃을 때가 많다.


큰 부를 일군 유명한 젊은 유튜버의 블로그에 우연히 들어간 적 있다. 재테크에 대한 심도 있는 깨알 정보가 대부분이었는데 그 틈으로 그의 '일상' 글 하나가 눈에 띈다. 정확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환율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나. 내가 왜 이러나 싶다. 좀 여유 갖고 살고 싶다.'

라는 결론이었다. 모순 아닌가. 부로 행복해지려는데 시시각각 긴장하여 행복을 놓친다. 일상이 온통 돈, 돈이 된 모습에 자괴감이 드는 것이다.


운(韻)이 기가 막히던 법정 스님 말씀이 떠오른다.


"횡재를 하면 횡액이 옵니다."


그에 따른 대가를 말하는 것이리라. 거부(巨富)는 하늘이 낸다 했으니 평범한 우리와는 별 상관이 없고, 내 부는 내 복만큼 들어온다 여기는 건 게으름에 대한 변명일까. 어쨌든 인생은 보기보다 깔끔하여 결국 내가 사는 만큼 들어온다 싶고 그 들어오는 만큼에 족하면 큰 탈이 없다.

ㆍㆍㆍ

 철학하다가

부귀영화를 준다는 모란도 앞에서

'내게도 부를 좀 다오.'

이실직고하는 나를 내려다보며 이 모란웃을 것 같구나.


나의 세 번째 민화, 모란도. 초 가을에 그렸던 듯. 선치기를 왼쪽 이파리부터 했나 보다. 엉성한 표가 나다가 오른쪽으로 갈수록 좀 나아졌다.




2

소과도(蔬果圖)의 복숭아는 사람따라 다른 것이 보인다. 내 뒷자리에서 그리는 분은 손자가

"할머니, 돼지 궁둥이 같애요. 복숭아!"

라고 말했다고 푸하하 하신다.


나의 네 번째 민화, 소과도의 복숭


당신은 어떤 것이 보이는가.

혹시 눈둘 곳을 모르시는 건 아니겠... . 그런데 당신이 옳다. 예부터 수밀도는 여성을 상징했으니 당신 잘못이 아니다. 민화에서도 비슷하게 만수무강, 여성, 젊음 등을 의미한다.


마돈나. 지금은 밤도, 모든 목거지에, 다니노라 피곤하여 돌아가려도다.

아, 너도, 먼동이 트기 전으로, 수밀도(水蜜桃)의 네 가슴에, 이슬이 맺도록 달려오너라.

-이상화, '나의 침실로' 중에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도 '수밀도의 네 가슴'에서 보듯, 인체를 '수밀도'로 비유했다. 이 시는 구원의 여성상인 마돈나를 통해 이상을 추구하는 갈망을 읊었다고 평하기도 하고, 관능적인 애욕의 진실을 표현했다고 액면 그대로 평하기도 한다.


성 표현에 대해 외설이냐 예술이냐의 잣대는 늘 논쟁이기도 하다.  분명한 것은 성은 '자연'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소과도를 보고 여성을 떠올린 그대도 '자연'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 민망한가?  그렇담 그건 내가 어쩔 수 없는 일.





*수밀도(水蜜桃) : 물이 많고 단맛이 강한 복숭아.







1.1

작년 가을 한창 민화를 배웠는데 그 겨울 제주 본태 박물관에 갔을 때 무슨 인연인지 딱, 민화전을 한다. 이목을 잡아끄는 품위가 예사롭지 않은 이 모란을 꼭 만나야겠다.


  

모란도, 조선후기, 견 실크, 123 *262.5 *98,234, 본태박물관 개관 10주년 기념 도록에서 도판 촬영


비단에 채색된 그림을 보자마자 압도된다. 민화의 기반은 궁중장식화인데 그 격을 많이 품고 있는 것인지 차원이 다른 격조이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영국 예술 공예를 주도했던 윌리엄 모리스의 복고적인 문양이 떠오르고 아르누보의 맛도 난다. 그러면서도 꽃들은 자유분방하여 근대의 기운도 물씬 풍긴다. 의도는 다를지라도 대륙을 달리하여 나타나는 유사한 멋은 신기하다. 오로지 이 꽃을 기억하기 위해 도록을 구입했다. 이 모란도를 볼 때는 부귀영화야 내게 오렴 하는 생각은 나지 않는다.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워서.



2.1

같은 책 p.19. 십장생도 8폭 병풍에 나타난 복숭아. 도판 부분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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