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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로우 Aug 14. 2024

낯선 나라에 나를 데려놓으니 생긴 일

서른셋, 첫 혼자 여행을 하며 몸에 새겨온 감각들

서른셋, 처음 떠난 혼자 여행. 그것도 비행기를 타고 10시간 이상 가야 하는 호주로 떠났다. 

비수기였지만 상관없었다. 

몇 년째 번아웃에 시달린 나를 위한 결정이었다. 

통장 잔고를 보면서 이 시기에 떠나는 게 맞나 고민했지만, 이번 만은 머리가 아닌 가슴의 결정을 따르기로 했다. 

멜버른, 시드니 골목 곳곳을 혼자 밟으며 떠난 첫 혼자 여행에서 느낀 것들을 남겨보려 한다. 



낯선 곳에 나를 내던져야 하는 이유     


모든 인생은 혼자 떠난 여행이다.
혼자서도 자신의 행복을 좇아 걸어갈 수 있어야 한다.
혼자 행복할 수 있어야 자신의 생각대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있다.
-카트린 지타     


한국과 다른 문화권에 혼자 가면 나에 대해 적나라하게 알게 된다.

나의 경우, 내가 생각보다 여행에서 외식, 예쁜 사진 남기기, 화장(꾸밈)에 크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어딜 가든 예쁜 사진을 남기고 꾸미는 것이 기본값이 되었다는 것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나에게 당연했던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당연하지 않음을 알게 될 때, 근데 그 당연했던 것이 내가 억지로 하고 있었던 것임을 알게 됐을 때. 

그때의 자유로움과 약간의 허탈함은 내가 얼마나 비교에 젖어 들어 살고 있었는 지를 알게 해 주었다. 

다들 예쁜 옷을 입고 꾸미니까 나도 꾸미고 싶은 줄 알았다. 예쁘게 화장하고 밖을 나가면 주눅 들지 않고 자신감이 생기니까 자존감을 올리기 위한 방법 중 하나가 꾸밈이라고 생각했다. 화장기 없는 얼굴, 밋밋한 차림으로 나서면 형형색색의 사람들 속에 회색빛 인간이 된 거 같은 괴리감에 피곤하더라도 아이라인을 그리고 입술을 열심히 바르고 문 밖을 나섰다. 


머리색과 피부색, 다양한 옷차림과 행색, 겨울에 노출이 있는 옷을 입어도 여름에 목도리를 둘러도 관심 없는 무신경함. 이 다양함과 무신경함이 기본값인 나라에 여행하고 나니 나 자신을 옥죄던 것을을 하나하나 마주할 수 있었다. 


혼자 여행하지 않았더라면 마주할 수 없었겠지. 아마 일행의 눈치를 보느라 나도 화장을 했거나 같은 옷을 3일 내내 입는 것이 부끄러워서 옷을 더 갖춰 입으려 노력했을게 뻔하다.


그래서 먼 나라를 혼자 여행하는 것이 좋다. 

호주에서 돌아와서 호주의 향기를 그리워하던 날 도서관에 갔다가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라는 책을 발견했다. 개인적으로 책과도 인연이 있다고 믿는다. 활자에서 우러 져 나오는 작가의 에너지가 나와 공명해서 나를 이끌었을 것이다. 

수많은 책 중에서 빛바랜 이 책이 유독 끌렸던 이유는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것들이 담겨있기 때문이겠지? 


그중 몇 문장을 소개할까 한다. 

- 아무것도 할 필요 없이 단지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상태, 누구도 나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상태에 대한 갈망이 절실했다.

- 새로운 세상으로 발을 내디딤으로써 선택의 여지가 없는 거처럼 여겨졌던 나의 삶이 실상은 여러 삶의 모습 중 한 가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러 가능성을 열어 두고 나와 다른 것들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하자 상처를 받아간 화를 내는 일이 줄어들었다. 여행을 거듭할수록 내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기분이었다.

- 스스로 여행을 준비하고, 홀로 여행지에 도착하고 나면 당신은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자신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임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렇다. 한국에서의 나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해 달리는 경주마 같았다. 

하지만 목적지를 알지 못하는, 그저 불안함과 조급함에 달리기만 하는 경주마.

다들 바쁘게 살고 흔히 말하는 “갓생”을 사는 사람들이 칭송받으니 나도 그렇게 살아야 ‘인간노릇’을 하고 있는 줄 착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혼자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나보니 알겠더라. 

그 모든 게 내 자연스러운 생체 리듬이나 욕구가 아닌 ‘열등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발버둥이었다는 것을. 

시드니에 있는 타롱가 동물원에서 우연히 시간이 맞아 물개쇼를 보는데 갑자기 울컥하고 눈물이 났다. 

이 자유로움과 현존함에서 비롯한 행복을 선물해 준 나에게 너무 고마워서. 

지금 내 상황에 여행을 가는 게 맞을까? 고민하다가 머리가 아닌 가슴의 울림을 따라 준 내가 고마워서. 

한평생 머리로만 결정했는데, 가슴의 진정한 바람에 귀 기울 여준 내가 기특하고 고마워서. 

그때의 그 든든함과 자유로움, 차오르는 사랑은 여행 내내 나를 충전시켜 주었고 외롭다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았다. 그렇다. 혼자 여행하면 심심하고 외로울 거라는 것도 관념이었다. 

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직접 모험하고 부딪혀 봐야 한다.

서른이 넘어서야 나에게 선물해 준 이 혼자 떠난 여행이 나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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