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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들 Sep 18. 2022

우울증이 무엇인지 누구도 모른다

 마음에 내리는 비에 우산이 필요할 때

1부. 뇌를 알면 우울증을 이해할 수 있다

 맞다. 어찌 보면 과학은 별로 호감이 가지 않는 1.3kg짜리 기관에서 일어나는 생리적 과정이 바로 우리라고 우리 자신을 깎아내리고 있는 셈이다. 정말 그렇다면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놀라운 기관이 아닌가!
 -스티븐 핑거



1.1 우울증이 무엇인지 누구도 모른다

우울증은 감기처럼 늘 우리 곁에 존재한다. 원인에 따라 규정되는 다른 질병과 달리 우울증은 증상에 따라 규정된다. 불안과 죄의식에 시달려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기분이 늘 좋지 않다. 잠을 자기도 어렵다. 이런 증상은 뇌가 우울 늪에 빠졌다는 신호다. 이런 증상이 꾸준히 반복되면 우울증 진단을 받는다. 병원에서 하는 특별검사도 없고, 뇌 스캔도 없다. 그냥 증상만 존재한다. 수많은 증상이 존재하지만, 그 원인 또한 다양하여 밝혀진 것이 거의 없다. 사실 우울증이 무엇인지는 누구도 모른다.


우리는 누구나 우울 스펙트럼 안에 존재한다

셋째 아이를 낳고 1개월 정도 지났을 때 나는 온몸에서 에너지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 느낌은 팔, 다리, 뱃속 어디에서나 나타났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으로 시작하여 모든 것이 암울하게 느껴졌다.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어느 순간 방바닥과 하나가 되었고 알 수 없는 통증이 수반되었다. 주변 사람들과 말하기도 싫었다. 다시 직장에 나가야 하는 일이 어렵게 느껴졌다. 이 느낌은 슬픔이라기보다 오히려 두려움에 가까웠다. 출산 휴가를 마치고 직장에 출근하면서 증세는 더욱 나빠졌다. 고통이 심해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께 신경이 예민하니 끊어달라고 까지 했다. 그해 겨울 내 마음은 온통 회색빛이었다.  


설마 신경을 끊어달라고 했을까? 의구심이 들지도 모른다. 우울증은 왜 그런 행동을 했냐고 비난받을 대상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고 존중을 받아야 할 심각한 문제 상황이다. 우울증은 감정에 큰 영향을 받는 감정적 질환이다. 어떻게 감정의 변화를 일으키는지는 때와 사람에 따라 다르다. 어떤 사람은 알 수 없는 절망감에 휩싸이고, 깊은 불안감을 느낀다. 엄청난 불안감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어떤 경우는 무표정한 모습으로 공허감을 느끼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무신경해진다. 우울한 감정을 느끼지 못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그냥 화난 상태로 있는 사람도 있다. 누구나 언제든지 그럴 수 있다.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해서 우울증에 대한 면역이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유명인이 우울증으로 죽음을 선택했다는 기사를 종종 본다. 그에게 “어떻게 자신의 목숨을 버릴 수 있어? 애도 있는데. 그는 모든 걸 다 갖고 있잖아”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술을 자주 먹는 사람이 모두 간암에 걸리지 않는다. 간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질 뿐이다. 뇌는 우리 삶만큼이나 복잡하다. 뇌가 복잡하다는 것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 우울증에 걸릴 요인과 무관하다는 뜻이다. 부정적인 성격과 우울 성향이 강한 유전적 요인으로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은 예도 있다. 우울증은 비논리적이다. 무슨 원인이 있어 결과로 나타난 증세가 아니다. 


나보다 더 심각한 우울 경험을 한 사람을 종종 만난다. 우울증이 심각한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적용되는 뇌 원리는 같다. 신경과학은 어떤 뇌스캔과 MRI 등으로도 우울증을 진단할 수 없음을 밝혔다. 우울증은 우리가 공통으로 가진 뇌 회로의 부산물이다. 누구나 우울 스펙트럼 안에 존재한다. 우리 뇌가 우울 성향에 쉽게 빠지도록 배선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많은 사람의 뇌에는 우울 상태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건강한 성향도 있다. 뇌에 이런 성향이 부족하다고 해도 희망은 있다. 그동안 뇌과학은 눈부신 발전을 했다. 우울증과 관련된 뇌 회로와 그 회로를 변화시킬 방법에 대해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울증에는 확실한 치료법이 없다

클라우스 베르하르트 작가가 쓴 『어느 날 갑자기 무기력이 찾아왔다』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독일의 심리 치료 및 정신의학 박사인 우버 곤터 Uwe Gonther 교수가 디프레치오넌호이터 Depressionen heute와 인터뷰한 내용이다. 

“최근에서야 나는 중요한 추가 교육을 통해 우울증의 생화학적 작용이 아직 미지의 영역임을 알게 되었다. 인간의 신체에서 분비되는 물질 중에 우울증의 발생을 설명해주는 물질은 없다. 우울증을 측정할 수 있는 정도로 악화시키는 물질도 없다. 우리 정신과 의사들은 과학적인 근거가 전혀 없음에도 제약회사들이 마케팅을 통해 약속하는 것들을 그대로 믿어 버렸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뇌에서 세로토닌과 노르아드레날린이 부족하면 우울증에 걸린다고 믿는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항우울제를 먹는다. 미국에서는 지난 2011~2014년 기간에 12세 이상의 청소년 및 성인을 대상으로 연구했다. 연구 결과 8명 중 1명이 항우울제를 먹는다. 유럽에서도 인구의 8퍼센트 정도가 항우울제를 먹는다. 중증 우울증 환자의 경우 항우울제를 단기 복용하는 경우 우울감 해소에 효과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우버 곤터 교수의 말처럼 항우울제 복용으로 우울증이 줄어든다는 생물학적 근거가 없다. 아직도 우울증에 관한 확실한 생체지표는 없다. 사람을 정서적 불균형으로 빠트리는 것은 하나의 물질이 아니라 아주 많은 물질이 상호작용한 결과다. 항우울제는 하나의 물질에 집중한 연구 결과물일 뿐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뇌에서 세로토닌과 노르아드레날린이 부족하면 우울증에 걸린다고 믿는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항우울제를 먹는다. 미국에서는 지난 2011~2014년 기간에 12세 이상의 청소년 및 성인을 대상으로 연구했다. 연구 결과 8명 중 1명이 항우울제를 먹는다. 유럽에서도 인구의 8퍼센트 정도가 항우울제를 먹는다. 중증 우울증 환자의 경우 항우울제를 단기 복용하는 경우 우울감 해소에 효과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우버 곤터 교수의 말처럼 항우울제 복용으로 우울증이 줄어든다는 생물학적 근거가 없다. 아직도 우울증에 관한 확실한 생체지표는 없다. 사람을 정서적 불균형으로 빠트리는 것은 하나의 물질이 아니라 아주 많은 물질이 상호작용한 결과다. 항우울제는 하나의 물질에 집중한 연구 결과물일 뿐이다.      


뇌 속 신경전달물질 한두 개를 조절하는 것으로 수많은 질병을 치료할 수 없다. 사람 수만큼 우울증의 증상도 다양하다. 사람에 따라 특정 멘탈헬스법을 이용하기도 하고 몸을 움직여 부정적인 생각의 틀에서 벗어난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산책을 하기만 해도 효과를 보는 사람도 있다. 같은 약과 음식을 먹어도 사람마다 다르게 반응한다. 몸속에서 영향을 주는 특정 미량 원소의 과부족으로도 우울증이 생길 수 있다. 코로나바이러스와 몸속 염증이나 외상으로 인한 신진대사 불균형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복잡하게 얽힌 서로 다른 원인을 몇 개의 알약으로 해결할 수 없다. 진짜 원인을 알 수 없게 되어 병이 악화하거나 재발한다.


아직 우울증에 확실한 치료법은 없다. 정확하게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증상도 있고 어떤 신경 화학물질과 뇌 영역이 관련 있는지도 안다. 다양한 원인도 안다. 그러나 우울증은 파킨슨병 같은 다른 뇌 질병만큼 세밀하게 알지 못한다. 다행히 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떻게 하면 나아지는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햇빛, 운동, 명상, 감사하는 마음 등은 특정 신경회로에서 일어나는 활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 우울증의 진행경로를 바꿀 수 있다. 우울감의 진단 수준과 불안의 깊이는 중요하지 않다. 뇌를 이해하고 뇌의 건강한 작동법을 아는 데 필요한 신경과학의 원리는 같기 때문이다.  


이해를 넘어 행동하라

시드니대학교 짐 라고풀로스Jim Lagopoulos 연구팀은 중증 우울증 환자 1,700여명의 뇌 스캔을 약 7,200여명의 정상인의 뇌 스캔과 비교했다. 여기서 우울증 환자의 해마가 건강한 사람의 해마보다 평균 14퍼센트가 작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런 차이는 어릴 적부터 지속적인 우울 증상으로 고통을 받아온 환자에게서 더 잘 관찰되었다. 우울증 단계를 적게 겪은 환자의 해마 크기는 건강한 사람과 큰 차이가 없었다. 이에 대해 라고폴로스는 “우울증은 뇌를 변화시키는 질병이다.”라고 밝혔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다. 누구나 우울 스펙트럼 안에 존재한다. 그렇다고 감기처럼 가볍게 생각하고 무시하면 안 된다. 우울 늪에 오래 머물면 뇌가 변하기 때문이다. 뇌를 건강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것도 같은 원리다. 우울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이해와 실천이 필요하다. 몸을 움직이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과 침대를 빠져나와 아침 산책을 하는 것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이해한 것을 작은 것이라도 꾸준히 실행하면 뇌에 큰 변화가 생긴다. 이해가 뇌를 바꾸는 방식은 실행이 뇌를 바꾸는 방식과 다르다. 우울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뇌과학을 잘 활용하려면 반드시 이해와 행동을 함께해야 한다.  




몇 년 전 나는 삶의 활기를 되찾기 위해 뇌교육 워크숍에 참여했다. 강사는 뇌를 활용하는 방법,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 등을 이야기했다. 낯선 방법들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아 자세한 설명을 부탁했다. 강사는 “이해하려고 너무 애쓰지 마세요. 그냥 한번 해보세요.”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생각을 그치고 행동을 그냥 해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 이해가 도움이 되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안 된다. 이해가 행동으로 이어지면 큰 힘을 발휘하지만 이해하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생각에 빠진다. 생각을 멈추고 이 책에 실린 활동들을 그냥 해보길 권한다. 뇌과학의 이해와 상관없이 효과를 볼 것이다.


“위대함을 성취하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시작하라.
가진 것을 이용하라. 할 수 있는 것을 하라.” 

아서 애시Arthur Ashe의 말을 우울증을 극복하는 방법에 적용하면 아주 유용하다. 우울증을 극복하려면 지금 당신이 있는 자리에서 시작한다. 당신이 가진 것을 이용한다. 당신이 할 수 있는 행동을 한다. 있는 그 자리에서 시작하려면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 당신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과 감정을 체크하고 그것의 바탕이 되는 뇌과학을 이해해야 한다. 이번 장은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날 때 읽는 안내서처럼 당신이 뇌과학을 이해하는 데 도울 것이다.      


우울증은 감기처럼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질병이다. 사람마다 다양한 증상으로 나타나고 벗어나는 방법도 다 다르다. 원인을 알 수 없어 확실한 치료법도 없다. 우울증은 외부 상황보다는 배선된 뇌의 작용에 영향을 더 받는다. 뇌 회로 간의 의사소통 문제로 우울 사고와 행동 패턴에 사로잡혀 있으면 빠져나오기 어렵다. 우울증의 뿌리는 생물학적이다. 그냥 마음을 먹는다고 쉽게 빠져나올 수 없다. 당신을 주로 지배하는 감정과 생각을 체크하고 그 바탕이 되는 뇌과학을 이해해야 한다. 뇌는 신경생물학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 당신이 있는 자리에서 바로 시작해야 한다. 우울한 기분으로 침대에 누워있다면 바로 일어나 그냥 움직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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