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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Mar 23. 2025

관심만으로는 닿을 수 없는 것들

현대인의 전념의 상실


퇴근 후 무거운 몸을 맥주와 함께 소파에 눕히고 유튜브를 켜니, 알고리즘이 나를 반긴다. 온종일 나를 관찰한 듯, 짧고 자극적인 영상들이 줄지어 추천된다. “하루 만에 부자 되는 법”, “3분 만에 이해하는 세계 역사”, “당신이 몰랐던 심리학 비밀 10가지” 같은 제목들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하나를 클릭하면 몇 분 뒤, 나는 이미 세 번째 영상을 보고 있다. 무언가를 배운 것 같기도 하지만, 막상 남은 것은 없다. 그렇게 또 하루가 그렇게 갔었다.


현대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정보와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것을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편리함 속에서 우리의 관심과 전념 방식은 변질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긴 시간 집중해야 하는 콘텐츠보다 짧고 즉각적인 만족감을 주는 정보를 선호한다. 영화관에서 두 시간을 투자하기보다는 몇 분짜리 요약 영상을 보고, 한 권의 책을 읽기보다 짧은 서평이나 책을 추천하는 동영상을 훑어본다. 음악도 처음부터 끝까지 듣는 것이 아니라, 인기 있는 하이라이트 부분만 골라 듣는 경향이 강해졌다.


이는 단순한 트렌드 변화가 아니다. 우리의 사고방식과 생활 태도가 점점 ‘빠름’에 맞춰지고 있다는 신호다. 많은 사람들은 깊이 있는 사고보다 간편하고 즉각적인 결론을 원한다. 유튜브의 배속 기능을 활용해 빠르게 영상을 보고, 게임에서는 자동 사냥 기능을 이용해 최소한의 노력만 들인다. 처음부터 끝까지 몰입하는 과정보다 핵심만 짧게 얻고 넘어가는 것이 익숙해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정말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있을까?


사람들은 바쁘게 살아가지만, 정작 중요한 것에는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인들이 짧고 빠른 콘텐츠를 선호하는 이유는 단순히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공허한 시간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소비하는 경향을 보인다. 진정으로 의미 있는 일에 몰두하기보다는, 단순히 심심함을 해소하기 위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자극적인 콘텐츠를 찾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결국 더 큰 공허함을 불러온다.


현대 사회에서 강조되는 것은 ‘최대 효율’과 ‘최대 출력’이다. 우리는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이 곧 성공이라는 가치를 내면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사고방식은 개인의 개성을 점점 상실하게 만든다. 깊이 있는 고민 없이 표면적인 정보만을 습득하며 살아가면, 결국 우리는 서로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고, 대체될 수 있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단순히 많은 정보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정보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느냐이다.


짧은 관심을 끌어들이는 콘텐츠는 우리를 어중간한 상태로 만든다. 우리는 많은 것에 관심을 두지만, 그 어느 것도 깊이 탐구하지 않는다. 관심이 전념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결국 수동적인 개인으로 머물게 된다. 현대인들은 많은 것에 흥미를 보이지만, 정작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깊이 고민하고 오랜 시간 노력하는 것보다는, 간단히 발만 담그고 가볍게 즐기는 것을 선호하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을 더욱 공허하게 만든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무엇일까? 관심을 가질 뿐 쉽게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에 온전히 몰입하는 경험이 필요하다. 결국, 삶을 충만하게 만드는 것은 ‘전념’이다.  깊이 탐구하고,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이해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무언가를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현대인은 자주 착각한다. 바쁘게 움직이면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짧고 자극적인 정보를 소비하면 지적 호기심이 충족되었다고 믿는다. 유튜브 쇼츠, 인스타 릴스로 지혜를 얻을까?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는 무엇 하나 제대로 남지 않는다. 공허함을 느낄 때일수록 바쁘게 시간을 채우려 하기보다 한두 가지에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빠르게 습득한 지식보다, 천천히 곱씹으며 이해한 한 줄의 문장이 더 오래 남는다.


취향, 취미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때때로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며 스스로를 무색무취한 사람처럼 느낄 때가 있다. 하지만 취향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1년, 5년, 혹은 그 이상을 한 가지에 몰두해 보았을 때 비로소 자신만의 색이 만들어진다. 깊이 읽고, 오래 듣고, 끈기 있게 해 보는 과정 속에서 취향은 단단해진다. 이렇듯 전념하는 태도는 단순한 성취를 넘어, ‘나’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단순히 흥미를 느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지속하고, 끝까지 해내는 과정이다. 우리는 수많은 것에 관심을 두지만, 그중 몇 가지라도 온전히 나의 것으로 만들고 있을까? 빠르게 소비하고 쉽게 흘려보내는 삶 속에서 진짜 의미 있는 무언가를 남기고 있을까?


여러 가지를 하며 바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더욱 공허해질 뿐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것을 접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깊이 이해하고 내면화했느냐이다. 생각을 많이 하는 것과 생각을 깊게 하는 것은 다르다. 우리가 정말 고민해야 할 것은 얼마나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중 무엇을 오래 붙잡고 깊이 파고들 것이냐는 점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양’이 아니라, ‘질’이다. 흥미를 느끼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것을 전념으로 바꾸는 것. 한 가지라도 제대로 해내는 경험을 통해 우리는 더 단단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결국, 무엇이든 깊이 사랑하고 전념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태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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