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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티바람 Jul 23. 2024

화초들의 무덤

운수 좋은 날

궂은 날씨에 꾸준히 제습기를 돌리고

쌓인 물을 화초에 나눠준다.


어제는 한 번도 아프지 않았던 녀석의

썩은 이파리를 잘라냈고

얼마 전에는 생사를 알 수 없이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녀석을 집 밖으로 내놨다.


이사 오기 전에는 잘 자라던 녀석들의

힘 빠진 모습을 퇴근 후 소파에 앉아

바라볼 때면 나도 힘이 빠지곤 한다.


열심이 닿지 않은 걸까

혹은 내 불안만 닿은 걸까

영양이 부족한가 아니면 과했나

내가 문제인가 집이 문제인가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결국 문제는 나로부터 시작될 테고

침대에 꼭꼭 숨어 미안한 이 마음을

감추고 싶은 날이다.

  

인생은 정원이고 뿌린 대로 거둔다는

파울로 코엘류 할아버지의 말이 생각난다.

삶의 곳곳에 뿌린다고 뿌리고만 산 것 같은데

그 흔한 꽃 한 송이 제대로 못 건지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나만의 착각인 걸까.


화초 몇 개가 큰 대수라고.

사람을 참 궁상맞게 한다.

 

하여간 훌륭한 정원사가 되긴 글러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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