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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지 Oct 25. 2022

외국인 학생들의 웃음보 버튼

오늘의 어휘: 새끼


  ‘새끼’라는 말에 날 선 반응을 보이게 된 건 언제부터일까. 

  오래전 이 말을 참 듣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아직 외지 생활이나 낯선 사람들에 적응하지 못했던 대학 신입생 시절, 쉬는 날이나 방학은 숨구멍이었다. 고향 집에 갔다 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디 하나 편한 구석 없는 타지를 떠나 잠시라도 엄마 품에서 있다 오고픈 마음이 컸을 것이다. 


  사랑의 인사였는데

  그러나 고향에 가서도 아쉬움이 없지는 않았다. 엄마는 오랜만에 만난 자식에 대한 반가움을 얼굴 가득 드러내면서도, 듣고 싶어 했던 그 말만은 끝내 해 주지 않았다. 궁디 팡팡 두드려 주면서 “아이고, 내 새끼 왔어!” 하는 그 말을…. ‘자식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는 사전적 정의와 상관없이, 아니 어쩌면 그 말이 그렇게 원초적이어서 본능적으로 엄마 냄새가 나는 말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내겐 그렇게 사랑의 인사인 이 단어를 수업 시간에 입 밖으로 꺼내면 그 맥락을 듣기도 전에 학생들은 묘한 웃음부터 터뜨린다. 한국어 수업 시간에는 당연히 ‘낳은 지 얼마 안 되는 어린 짐승’이라는 뜻의 새끼를 사용한다. 새끼 고양이나 새끼 강아지가 그런 예다. 하지만 학생들은 이 단어를 듣자마자 ‘어떤 사람을 욕하여 이르는 말’을 떠올린다. 그리고는 자기들끼리 눈짓을 하기도 하고 ‘새끼야!’라고 조심스레 내뱉으며 장난을 치기도 한다. 

  ‘국제 통용 한국어 표준 교육과정’에서는 이 단어를 4급 과정에 배치하고 있지만, 학생들은 초급 단계부터 이 단어를 대부분 알고 있다. 그것도 하나의 뜻으로만. 왜 그럴까.

  알다시피 많은 유학생들이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고 있다. 아르바이트는 학생들이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는 수단이면서, 생활에 필요한 서바이벌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래서 짧은 문장 하나 이어 말하기 힘든 학생들이 “손님, 화장실은 이쪽으로 쭉 가다가 오른쪽으로 돌면 있습니다. 비밀번호…” 같은 긴 문장을 정확하게 구사해 교사들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몰라도 좋을 말을 배우는 것도 아르바이트를 통해서이다. 고용주나 손님이 자신들을 향해 ‘새끼’라고 한다고 상당수 학생들이 증언하고 있다. ‘야!’라는 호칭은 그나마 나은 경우이다. 학생들은 아르바이트하느라 공부를 등한시해서 교사를 속상하게 할지는 몰라도, 돈을 벌어 자기 힘으로 공부하는, 정말 기특하기 짝이 없는 아이들이다. 그런 귀한 아들딸이 낯선 타국에서 ‘새끼’나 ‘야’로 불리고 있다는 걸 안다면 부모들의 마음은 얼마나 미어질까.


  싸우려는 게 아니라면

  ‘새끼’라는 단어의 매력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동창회 같은 데서 이 단어처럼 유용한 말이 또 있을까. 하지만 남용은 말자. 제 자식도 아니면서, 친한 사이도 아니면서, 그리고 싸우려는 게 아니라면 사용하지 말자. ‘새끼’가 아닌 ‘세 끼’라는 말에도 괜히 자신의 불쾌한 경험을 떠올리는 외국인 학생들을 보기가 영 민망하다. 이들에게도 ‘새끼’가 엄마를 떠올리게 하는 단어가 될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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