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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바라기 Nov 11. 2022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비하고 가고 싶은 섬 '그래도'

김승희 시인의 '그래도'라는 시를 소개해 볼까 합니다

정여울 작가의 수업을 들으며 며칠간 계속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떠나질 않네요

그래도


-김승희 -



가장 낮은 곳에
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
그래도 라는 섬이 있다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도 사랑의 불꽃을 꺼트리지 않는 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그래도'
어떤 일이 있더라도
목숨은 끊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
천사 같은 김종삼, 박재삼
그런 착한 마음을 버려서 못쓴다고

부도가 나서 길거리 쫓겨나고
인기 여배우가 골방에서 목을 매고
뇌출혈로 쓰러져
말 한마디 못해도  가족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
중환자실 옆에서도
힘을 내어 웃으며 살아가는 가족들의 마음속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섬, 그 래 도

그런 마음들이 모여 사는 섬, 그 래 도


그 가장 아름다운 것 속에

더 아름다운 피 묻은 이름,

그 가장 서러운 것 속에 더 타오르는 찬란한 


누구나 그런 섬에 살면서도

세상의 어느 지도에도 알려지지 않은 섬,

그래서 더 신비한 섬,

그래서 더 가고 싶은 섬 그래도,

그대 가슴속의 따스한 미소와 장밋빛 체온

이글이글 사랑과 눈이 부신 영광의 합성


그래도 라는 섬에서

그래도 부둥켜안고

그래도 손만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 강을 다 건너 빛의 뗏목에 올라 서리라

어디엔가 걱정 근심 다 내려놓은 평화로운

그래도, 거기서 만날 수 있으리라  


너무 아름다운 시입니다

절망과 피로에 찌든 일상을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했다는 것이 놀라웠어요

맞아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죠 

그래서 더 공감이 되고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고

계속 되뇌게 되는지도 몰라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 엄마의 죽음.

그 앞에서도 우리는 밥을 먹고 문상객들과 조용히 대화를 하죠

'망연자실' 한 나를 내버려 두지 않는 문상객들

조금씩 대화를  하다 보니 나를 일으켜 세우게 되고

밥도 먹고 지금까지 잘 살고 있네요

그래도 살아야 하니까요.


결국 나도 이 섬의 일원이에요


이태원 참사의 일

너무나 기막힌 일

너무나 아까운 생명들의 어처구니없는 죽음

며칠간 정신없이 어찌할 줄 몰랐었죠

내가 그 부모의 심정이 되어 눈물도 흘리고

답답한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죠


그래도 나는 살아가고 있어요

그래도 라는 섬에서요

나뿐 아니라 우리 모두.


남편의 암 투병

수술하고 입원하고 있는 속에

함께 병원에서 간호하면서

그래도 함께 있을 수 있음에 감사하며,

그래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견뎌 냈죠

퇴원하고 

그래도 갈 수 있는 직장이 있어 다행이라고 

감사하며 열심히 출근했죠


이번에는 아버지의 죽음

그래도 고생하지 않고 돌아가셨다고

위로하면서  

장례를 다 치렀고

국립현충원에 모셨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계속 살아가고 있어요


인간의 내면 속에는 어려움에 직면하면 

그것을 이겨내고, 참아내고 살아내는 그 어떤 힘이 존재하는 거죠

조금이라도 희망을 잃지 않고, 절망의 늪을 빠져나오려는 용기만 있다면,

갈 수 있는 섬이 아닐까요

그 내면의 힘이 '그래도'라는 섬이 아닐까요


멀고 먼 갈 수 없는 불가능의 섬이 아니죠

유토피아와 같은 상상의 섬이 아닌

조금의 용기만 있어도 갈 수 있는 섬

조금의 희망만 있어도 갈 수 있는 섬

조금의 인내만 있어도 갈 수 있는 섬 

조금의 살고자 하는 의욕만 있으면 갈 수 있는 섬


그래서 그 섬이 신비하고 가고 싶은 꿈의 섬이 아닐까요


아니 이미 우리는 그 섬에 살고 있고 

그 섬에서만이 살아낼 수 있는 거죠 



#그래도  #김승희  #정여울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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