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창작수필 제61호 가을 수.필.문.예
나는 요즘 새삼 "내일 세계의 종말이 올지라도 나는 오늘 한 그 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고 한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의 말을 되새겨 보게 된다.
예전엔 내일 종말이 온다면 과연 오늘 사과나무를 심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 요즈음 그 말이 의미 있게 다가온다.
오늘을 사는 확고한 신념이 있기에 내일의 불확실함에 불안해하지 않고 사과나무를 심었던 것이 아닐까
불혹의 나이가 지났음에도 항상 미혹하고, 지천명이 가까워 졌음에도 아직은 깨우치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있지만 노령화 시대 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현대를 살아가는 나에게 노후에 대한 대비는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살아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건강하게, 사회를 위해 타인을 위해 봉사하며, 삶의 보람을 느끼며 살아가고 싶기에 더더욱 마음에 와 닿는다.
얼마 전 읽은 '정신력의 기적'이란 책에서
"오늘에게 만세를 보낸다.
어제는 이제 꿈이고, 내일은 환영이다.
오늘을 잘 살면
모든 어제는 행복의 꿈이 되고 모든 내일은 희망의 환상이 된다.
이날은 대 생명력이 나에게 보내는 눈부신 선물이다"
라는 글귀는 나의 미래를 위한 준비가 바로 오늘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것이다. 사실 아침부터 식구들을 챙겨 보내고 나서 늦을세라 종종걸음 으로 출근하고, 퇴근하고, 누군가에게 연락이 오면 만나고 헤어지는 수동적인 삶, 저녁준비를 위한 초조한 발걸음, 왠지 아무 재미없이 반복되는 일상이 짜증스럽고 권태로울 때 나의 혼을 뒤흔들어 놓은 글이다.
언제부터인지 오늘에 대한 기대도 감사함도 없이, 그저 시간을 가는 대로 흘려보내고, 능동적이기 보다는 누군가에 의해 끌려가는 듯한 생활, 자신감이라곤 하나도 없이 다른 사람들만 쳐다보고 부러워하며 살아온 것 같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오늘은 내일의 두 배의 가치가 있다. 인생을 사랑한다면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왜냐하면 인생이란 시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라고 미국의 물리학자 B 프랭크린이 말한 것은 너무나도 잘 아는 내용이다.
아이들이 자신의 할 일을 미루고 게으름피울 때 잔소리로 늘 하던 말이고,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이 말의 의미가 새삼 나에게 중요하게 다가온다.
오늘을 열심히 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살아있기에 맞이할 수 있는 오늘이다. 내일의 희망을 준비하는 오늘이다. 내 일을 알 수 없기에 더더욱 소중한 오늘이다. 어제는 먹구름을 동반한 비바람이 불어왔지만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가 되어버렸다. 과거에 게으르고 소극적이었던 자신을 모두 잊어버리고,
오늘은 새 날의 새로운 나를 맞이하자. 그래서 내일과 미래의 희망을 준비하자.
꿈 많던 여고시절 즐겨 읽던 작가 도스토예프스키,
그의 인생에 마지막 5분의 기적적인 이야기는
오늘을 사는 나에게 모범이 되 고 있다.
그는 사형직전 자신에게 주어진 5분의 시간을
자신의 오늘이 있게 해준 친구와 이웃, 하나님께 감사하고,
자연과 이 땅에 감사하고,
남은 3분간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 보며 회한의 눈물을 흘릴 때
기적적으로 살아남게 되었다.
그후 그는 사형직전의 5분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순간순간을 마지막처럼 열심히 살아갔으며 불후의 명작
'죄와벌', '카라마죠프의 형제들' 등을 남겼다.
비록 나는 인생 최후의 순간을 맞이해 보지는 않았지만 선인들의 인생을 나의 것으로 하여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그 이후 난 아침에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다. 어제의 기억하기 싫은 이야기는 툴툴 털어버리고, 고약했던 일은 잊어버리고,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이야기 거리만을 가지고 오늘을 출발하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 아침이면 새날을 선물 받았다는 감사함으로 시작하고, 하루를 엮어갈 주제를 선정하고 작품구상을 한다. 아침부터 새날에 대한 기대와 계획이 넘쳐 나게 되었다. 어제의 괴로웠던 일은 오늘 전화위복시켜 버리겠다고 다짐하고, 미완성된 일은 발전시키고, 완성시키며 새 세상을 창조해 갈 생각으로 가슴 벅찬 하루가 시작된다.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신이 오늘의 주인공이 되어 능동적으로 하루의 계획을 세우고, 누군가에 끌려다니기 보다는 이끌어 가는 생활로 전환하여 즐겁게 살아간다. 어제의 나와는 전혀 다른 나를 탄생시킨다.
아직은 어제의 나쁜 기억을 잊어버리는 연습이 되지 않아 서툴지만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 중이다.
오늘의 주제는 배려였다. 치매시어머니를 모시고 계시는 언니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 주고 마음을 풀어주는 날이었다. 그 언니의 시어머니 대한 괴로운 마음은 동병상련으로 내 마음을 치유해 주고 새로운 나를 이끌어 준다.
또한 그 언니도 역시 수다와 함께 시어머니에 대한 새로운 마음가짐을 다지며 마무리된다.
"남을 위 하여 등불을 밝히면 내 앞이 밝아진다"는 성현의 말씀이 너무도 딱 맞는 것 같다.
아직은 건강하셔서 매일 복지관에 나가시고, 조금 늦은 나의 귀가에도 아이들을 챙겨주시는 시어머님이 계셔서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할 줄은 모르지만 묵묵히 가정을 지키며 열심히 살아가는 남편이 있어 감사하고, 솜씨 없는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가족이 감사하고, 오늘을 살아 숨쉬고 있는 나의 존재가 감사하고, 이 세상이 모두 너무나도 감사하다.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 하루는 어제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하루라고 하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