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88
2015년 여름이 끝나가고 있었다. 어디선가 나는 장작 타는 냄새에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기차가 다니지 않는 기찻길 옆 야외 카페에서 다섯 명의 동네 친구들이 모였다. 이름하여 오불파! 누군가 실수로? 지은 페이스북 그룹 이름이었다. 아이들이 다 같은 학교를 다니면서 친해진 다섯 명의 한국 엄마들은 나이도 들쑥날쑥했지만 좋은 사람들이었고 나는 그들 중 왕 언니로 군림하게 되었다. 내가 왕언니라니...... 왜소하기 그지없는 나였지만 분명 나는 최고령자였다. 1988년엔 고등학교 2학년 생.
카페 서버가 커피와 레모네이드를 들고 올 때였다. 뜬금없는 친정 오빠의 전화벨 소리에 후다닥 핸드폰을 들었다.
"아니 지금 한국이 몇 신데 이 시간에 전화야? 무슨 일 있어?"
"무슨 일 있지."
"그게 뭔데?"
"좋은 일이지."
"아이 거 참...... 뭐냐고오."
"일단 소문내지 말고 너만 들어. 한국에 올 가을 새 드라마가 나오는데."
"오빠 진짜 왜 그러냐. 나 드라마 잘 안 봐."
"아니 그게 아니고 그 드라마에 네 노래가 나올 거래.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야"
"내 노래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네가 옛날에 어렸을 때 작사 했던 노래 말이야. '함께'라는 노래. 오늘 방송국 사람이랑 통화했어. 서류 이메일로 보낼 테니 사인해서 다시 보내줘. 신분증 카피도 필요하고. 그리고 음원을 하나씩 풀 거라서 미리 소문내지 말라고 하더라."
"진짜? 진짜진짜야???? 오 마이 갓! 어머 어머 웬일이니? 그게 언제 적 노랜데..... 세상에나."
내 높아진 톤 때문에 오불파들이 옆에서 쑥덕거렸다. "언니 뭐 좋은 일 있나 보다."
"오빠 내가 집에 가서 다시 콜 할게. 나 여기 밖이야. 일단 끊어."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벌컥벌컥 레모네이드를 마셨다. 초롱초롱한 눈빛의 엄마들이 나를 쳐다봤다.
"아. 얘기하자면 좀 긴데. 일단 좋은 일. 나중에 말해줄게!"
'함께'라는 노래를 잊고 있었다. 나의 20살. 내가 쓴 가사들을 국제 우편으로 한국에 보냈었다. 미국이라는 낯선 땅에 떨어진 나는, 밤만 되면 향수병에 시달리며 하염없이 울곤 했다. '함께'는 그때 썼던 노랫말이었다. 한동안 한국 라디오에 자주 나오기도 했다고 친구에게 전해 듣긴 했었지만. 나는 미국에 있으니까 전혀 알 길이 없었다. 그 당시만 해도 인터넷이 없었으니 당연하지. 그 짜릿한 순간도 즐기지 못한 게 좀 서운했는데 말이다. 그런데 그 옛날 노래가 리메이크된다고? 드라마가 시작되면 빨리 여기저기 자랑해야지! 가슴이 두근두근 뛰는 2015년 가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