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리뷰
2017년에는 영화보다 연극을 즐겨 봤다. 국립극단이 운영하는 ‘푸른티켓’ 정책을 알게 되어, 영화보다 연극을 보는 것이 더 저렴했다. 지갑의 무게 만큼이나 가벼운 이유를 가졌던 시기다. 조씨고아를 처음 접한 건 그해 겨울이다. 나는 오래도록 그날의 여운을 잊지 못했다. 문화생활을 적지 않게 즐겼음에도, 기립박수를 처음 본 순간이었다. 좋지 못한 스마트폰 화질로 당시의 순간이 사진으로 여전히 내 클라우드에 담겨 있다. 6년이 지난 지금, 조씨고아를 다시 접했다. 나이는 앞자리 숫자가 달라졌지만 무대에 오르는 배우들은 그대로였다. 연극은 100회째 공연을 맞이했다. 100번의 담금질로 더욱 단단하고 안정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연극은 대서사시를 밀도 높게 압축했다. 많은 이야기를 다루는 만큼 대사량도 상당하다. 이야기 전개를 돕는 설명과 대사는 배우가 빠른 속도로 소화한다. 1.5배속으로 재생하듯 빠르게 읊는 대사를 보고 넷플릭스 등의 OTT 서비스가 떠올랐다. 그럼에도 깊은 감정을 전달하는 장면에서는 긴 시간과 공백을 들여 관객의 집중을 이끌었다.
극은 고선웅 연출이 각색한 장면에서 더욱 빛난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이 서양 고전 <햄릿>과 차별되는 지점도 그가 각색한 영역이다. 정영과 처의 대립, 그리고 복수가 끝난 후의 연출이 그렇다. 연출의 강약 조절이 노련하다. 극은 내내 관객의 마음을 멱살 잡듯 뒤흔든다. 극을 보다 보면 저항없이 눈물이 흐르게 되는데, 이야기는 눈물을 닦을 시간조차 주지 않는다. 깊이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극장의 불이 켜진다.
정영의 사적인 감정이 드러나는 장면, 즉 아내와의 대립과 자식의 죽음 장면에선 눈물이 흐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수가 끝난 결말부가 가장 인상 깊다. 조씨 가문에서 시작해 정영이 벼룬 20년의 복수를 도안고는 비웃는다. 마치 연출도 정영의 복수를 비웃는 듯 도안고와의 전투, 처형은 순식간에 끝난다. 복수에 성공한 조씨고아의 웃음은 정영의 허탈한 표정과 대비된다. 조씨 가문은 진정으로 복수에 성공했나. 정영의 복수는 무엇을 위했나.
극 내내 저승사자를 연상케 하는 ‘묵자’가 등장한다. 그는 공연 끝에서야 대사를 읊는다. 이는 연출자를 대변하는 듯하다. 극은 복수가 의미 없다는 케케묵은 교훈 대신, 그저 무탈하게 살자고 말한다. “금방이구나, 인생은. 그저 좋게만 사시다 가시기를.”
시놉시스
진나라 대장군 도안고는 권력에 눈이 멀어 조씨 가문의 멸족을 자행한다. 조씨 집안의 문객이던 시골의사 정영은 억울하게 멸족당한 조씨 가문의 마지막 핏줄인 조씨고아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자식과 아내의 목숨마저 저세상으로 떠나보낸다. 조씨고아를 아들로 삼아 정발로 키우고 이를 알아채지 못한 도안고는 긴 세월 동안 정영을 자신의 편이라 믿고 정발을 양아들로 삼는다. 그렇게 20년이 지나고 정발이 장성하자 정영은 참혹했던 조씨 가문의 지난날을 고백하며 도안고에 대한 복수를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