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이 가렵다. 뒤늦게 다녀온 휴가에, 늦여름 햇살이 내 뒤에 강하게 내려앉았다. 평생 똑바로 마주할 수 없는 '등'을 보기 위해 있는 힘껏 팔을 꼬아 손거울을 가져다 댄다. 최대한 목을 꺾어 거울에 비친 등을 본다. 빨갛게 익었던 살들은 어느새 까맣게 변하며 살이 벗겨지기 시작했고, 새로운 살들이 요란하게 올라왔다. 덕분에 시도 때도 없이 등이 계속 가려웠다.
등을 긁는다는 건, 좀 처량하다. 무심한 듯 긁기에는 큰 움직임을 필요로 하기에 엄청 편한 자리가 아니고서는 밖에선 등의 간지러움을 참아내야 한다.
혼자 있을 때 등이 가려운 것도 그렇다. 손이 닿으면 다행이지만, 손이 닿기 어려운 곳이면 팔을 요리조리 꺾어야 하고, 그것도 닿지 못하면 뭐든 모서리에 등을 가져다 대고 우스꽝스럽게 움직여야 한다. 누군가 이런 내 모습을 본다면 안쓰러워할 테다.
등을 긁어준다는 건, 친밀하다는 것이다. 등을 긁어달라고 말을 건넬 수 있는 건 정말 친한 사람이 아니면 어렵다. 더 만족스러운 시원함을 원할 때면 옷 안으로, 손톱으로 긁어달라 할 텐데, 이건 진짜 ‘가족’이 아니면 어렵다.
붉게 타들어갔던 등의 새살이 돋아나며, 등이 정말 간지럽던 어느 날, 효자손이 있었다
효자손. 요즘은 등 긁개라고도 부르고, 몇몇 효녀들이 발끈할지도 모르지만, 우리에겐 효자손이라는 이름이 조금 더 친숙하다.
특히나, 90년대 대한민국, K-수학여행을 경주, 용인 민속촌 등과 같은 국내로 다녀왔다면 한 번쯤은 기념품으로 이 효자손을 산 경험이 있을 것이다.(효자손 혹은 주걱!)
가끔 등을 긁어달라는 부모님의 말이 귀찮아진 나이였는지, 긴 막대에 직관적으로 쓰인 ‘효자손’이라는 단어가 좋았던 건지, 가격도, 상징성도, 그만한 여행 기념품이 없었다.
우리 집에도 효자손이 있다. 6년 전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남편이 부모님 집에서 가져왔다. 이 효자손 역시 남편의 고등학교 시절, 아들이 기념품으로 가져온 것이다. 긴 세월을 지나 다시 아들의 손으로 왔다.
남편은 자주, 이 효자손으로 등을 긁는다. 박박 효자손이 내는 소리와 함께 “크..! 시원~~~ 하다”라고 말하는 남편에게,
“어우!! 하지 마! 늙어 보여! 할아버지 같이 왜 저래?
그냥 내가 긁어줄게! 그거 좀 갖다 버려!! “
한껏 미간의 주름을 만들어 핀잔을 날린다.
“크..! 마누라보다 훨씬 낫지 뭐..!!”
저 전형적인 아저씨 말투는 어디서 배웠는지… 남편은 실실 웃으며 더 박박 긁어대고, 내 속도 박박 긁힌다.
수십 번도 가져다 버릴까 싶다가도, 저리 좋아하니 그럴 수도 없다. 저 토속적인 황토색이 하얀 우리 집에 어울리지도 않는 것 같아서 참 싫었다.
등이 유난히 가려웠던 올 가을, 나는 효자손을 하나 샀다. 매번 처량하고, 친숙한 손이 매번 필요했던 나는 내 손으로 그 싫었던 효자손을 샀다. (아무리 남편이지만 뭔가 위생상 같은걸 쓰기는 싫었다.)
내가 산 효자손은 옛날 그 황토색보다는 조금 세련되어 보였고, 결정적으로 큼지막한 궁서체로 적힌 ‘효자손’이라는 글자는 없었다.
그래도 손길이 닿지 않는 곳까지 전해오는 시원함은 변하지 않았다. 남편에게 핀잔을 주던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손에 닿기 가장 쉬운 곳에 효자손을 두고, 박박 긁어댔다.
“크!!! 시원~~~ 하다!! “
남편이 묻는다.
“우리 딸은 여행가도 효자손은 안 사 오겠지? “
“그렇지 않을까? 요즘도 여행지에 이런 거 팔래나? “
“나도 선물로 효자손 받고 싶은데…“
“뭘 우리는 집에 이렇게 2개나 있는데?!”
“그래도! 뭔가 효자손이라고 적힌 거 보면 효자가 될 거 같잖아!”
“으이고..! 오빠는 뭐 효자였니? 그리고 우리 딸은 효녀잖아! 효녀여서 효자손은 더 안 사겠다! 효녀가 효자손 사 오면 웃기잖아! “
서로의 효자손으로 등을 박박 긁으며 실없는 농담으로 낄낄 마주 보며 웃는다.
처량하지 않게, 친숙하게. 나의 새로운 도구, 효자손. 문득 K-도구로 더 오랜 시간을 우리의 문화 속에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3개가 되어도 좋으니, 우리 딸이 이걸 사고, 그 편리함을 알면 좋겠다는, 조금 올드해보일지 모르는 욕심도 조금 더해본다.
<매일매일 도구도구>
세상의 모든 만물에는 각자의 서사가 있다고 믿습니다. 내가 선택해, 나를 이루고 있는 크고 작은 도구들이 가진 본연의 역할, 맥락을 생각해봅니다. 그렇게 그 안에서 이뤄지는 저만의 소소한 이야기를 기록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