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율리 Feb 26. 2023

챗 GPT 세상,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챗 GPT가 난리다. 그게 뭔데?라고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사용자는 1억 명을 넘어섰고, 여기저기 특강, 스터디 정보가 쏟아져 나온다.

 챗 GPT의 기세가 실로 엄청나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기능이 추가되고 이런 것까지 되는 거야? 싶은 것들이 그렇게 되고 있다.


 평소 글을 쓰는 것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챗 GPT는 놀랍고 무섭기만 하다. 무심하게 던진 질문에 몇 분도 안 걸려 2천 자가 넘는 에세이를 완성시키고, 그 어렵던 책도 요약해 달라고 하면 한 두줄로 요약된다. 거기다 딱딱한 어투의 글을 캐주얼하게 바꿔달라 하면 몇 초만에 글의 톤을 바꿔버린다.

  어디 그뿐인가? 브랜드 마케팅을 업으로 하던 내게, 네이밍은 가장 재밌으면서도 어려운 작업이다. 그 고통의 작업으로 가져가던 1안-3안을, 이 녀석은 10 초마에 브랜드의 목적에 따라, 심지어 로고까지 연결될 라임도 맞춰 10개의 네이밍을 쏟아낸다.


 더 이상 이 아이의 신기한 기능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그 영역은 무궁무진할 테고, 계속해서 새로워질 테니 말이다. 이제 내 초점은 하나다.

  이런 놀랍고도 무서운 AI들이 쏟아져 나오는 세상에서 나는 우리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이것이 나의 관심사이다.

평소에도 거창한 교육 철학이 있는 건 아니지만, 자존감을 키우고, 독서를 즐기며, 글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줄 아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는 막연함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세상이 바뀐대도 이거면 충분하리라고 생각했는데, 몇 십 초 만에 책을 요약하고, 글을 써내는 저 고도화된 AI를 내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이 알 수 없는 허무함과 두려움이 미래를 살아갈 아이에게 향한다.

‘이대로, 이 방식대로는 안될 것 같다..’



 혹자들은 수학과 과학을 잘 가르쳐서 이과를 보내고, 이런 AI나, 로봇을 만드는 과학자로 키우면 된다고 하는데, 그건 직업적인 문제이고 내가 결정할 문제는 아닐뿐더러, 그렇게 수학, 과학을 지금처럼 풀리고, 학원을 넣으면 되는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닌 듯하다.


일주일간 내린 결론은 우선 이렇다. 더 챗 GPT를 알고, 더 많은 공부를 해봐야겠지만 우선은 이렇다.


첫째, 토론하는 환경을 만든다.

챗 GPT가 수준 높은 글을 만들어 냄에 따라, 글을 제출하는 것에 대한 신뢰가 낮아질 것 같다. 분명 그걸 트래킹 하는 기술이 나오기야 하겠지만, 글을 쓰는 것으로 무언가를 판단하려면 시험장에서 직접 행해질 테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대면하여 진짜 그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토론방식의 평가 등의 형태가 늘어날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특히나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게 어렵고, 질문이 어색한 우리나라 교육방식은 바뀌어야 한다. 계속해서 질문하고 또 대답하고, 엉뚱한 질문도 존중받으며 토론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말하는 스킬과 진짜 나의 모습을 어필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과정을 소중히 여기는 아이로 만든다.

결과가 바로 나온다. AI는 무심히 결과를 내놓는다. 몇 십 초 만에. 분명 그 뒤에 엄청난 데이터도 있고, 엄청난 개발의 과정이 있지만, 우리는 너무 쉽게 그 모든 결과를 얻는다. 그게 익숙해질 것이다. 너무 쉽게 질문에 답해버리는 것들이, 정답을 찾는 것을 미덕으로 최고로 여기는 우리 아이들에게 온다면, 아이들은 더 이상 탐구하려 하지 않고, 그저 최고의 결과만을 추구하려 할 것이다.

수학 문제 하나의 문제를 풀더라도, 연구하고 탐구하는 시간을 충분히 주고 답을 종용하지 않는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귀하게 여기는 아이로 만들어야 한다. 결국 AI를 지배하는 사람은 그런 사람들이 될 것이다.


셋째, 본질에 대한 탐구를 잃지 않게 한다.

늘 본질은 중요하다. 하지만 세상에 요령들이 넘쳐나지만 결국 우리는 본질에서 답을 얻고, 고전과 인문학에서 답을 얻는다. 챗 GPT 역시 방대한 데이터들로 꽤나 괜찮은 요령들을 끊임없이 제공해 줄 것이다. 현혹되는 사람들이 있을 테고, 다양한 감탄들이 나올 테지만 결국 또 우리는 잊고 있던 본질에서 답을 찾을 테고, 그게 세상을 움직일 것이다. 인문학이 없었다면 스티브잡스도, 애플도 없었을 것처럼. 세상을 움직이는 본질에 대한 탐구를, 호기심을 가질 수 있는 아이로 키워야겠다.


  모르겠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그저 내 머릿속에 나오는 이 교육의 개똥철학을 챗 GPT에게 그럴싸하게 바꿔달라 말해볼까 싶다가도 괜한 인간의 자존심에 멈췄다. 이제는 그마저도 나중에는 알량한 자존심, 혹은 꼰대력, 뒤쳐짐의 산물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지만, 우선 이곳은 날 것의 나에 대한 기록일 테니 애써 가공하려들지 않으리다.


  아직도 생각이 많다. 이 세상의 흐름에 잘 편승하고, 또 내 아이를 단단하고 유연하게 흐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법들과 실천들이 뭐가 있을까?

사회에서, 교육에서, 또 주변에서 좋은 혜안들이 많이 모아지고 토론되길 바라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와 아빠의 일요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