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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 Mar 05. 2023

아이들의 세계, 어른들의 시선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두 번째 새 학기를 맞이했다 딸아이는 이제 2학년 언니가 되었다며 설레고 즐거워했다. 그런 딸이 아직도 아기 같아 보이는 소심한 엄마는 시작이 주는 시간에 두려움을 비롯한 오만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2주간의 봄방학이 시작됨과 함께 반 배정이 되었다. 그때부터 누가 누가 같은 반인지 어떤 아이들이 있는지 엄마들의 크고 작은 인맥이 동원되어 사전 정보가 모였다.

 그 과정에서 작년 쉬쉬하면서도 암암리에 소문이 돌았던 1학년의 최초 학폭위에서 가해 학생으로 지목된 아이가 딸아이와 같은 반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같은 반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때는 그냥 놀라기만 하고 흘려들었던 그 일에 내막이 궁금해졌다. 1학년들에게 학교폭력이란 도대체 어떤 사건이며, 어떤 과정을 거쳐 결국 어떻게 마무리가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가해자라는 말도, 피해라는 말도 마냥 아직은 어리디 어려 보이는 1학년들에게 참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과정과 결과를 떠나 이제 그 일의 가해자라 불리었던 아이가, 딸아이와 같은 반이라니 괜히 여러 생각이 들고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소식을 전해 준 친구 엄마가 말한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 신경 써서 지켜봐”





  초등학생이 된 아이와 1년을 오롯이 보내며, 아이가 친구들과 노는 모습을 지켜볼 기회가 많았다. 어린이들의 사회생활을 드문 드문 목격 하다 보면, 아직 순수하고 맑은 모습과 함께 아직은 철없고, 부족해 보이는 배려심도 많이 목격했다.

  매번 내가 가르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또 무조건 배려만 하고 남에게 착하다는 소리를 듣는 아이로 키우기는 싫었다. 그렇다고 너무 정 없어 보이고, 자기 것만을 챙기는 이기적인 아이로 크는 것도 싫었다. 놀이터에서, 식당에서 친구엄마들과 아이들의 세계를 목격하며 난 늘 그 간격이 혼란스럽기만 했다.


  혼란스러웠던 여러 날을 지나, 터득한 방법은 일단은 봐도 지켜보자였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더 현명하게 해결하기도 했고, 또 도움이 필요하면 손을 내밀기도 했다.

  어설프게 어른들이 개입하기 시작하면 괜히 더 서로가 어색해지고 해결할 수 있는 일들임에도 어른들의 눈치를 먼저 살피기도 한다.


하지만 어른들은 흔히 아이들을 스스로 배우고 생각할 힘이 없는 한없이 여린 존재로 보고 아이가 생각하기도 전에 서둘러 아이의 생각을 대신 생각해 주려고 애쓰기 일쑤다. 생각의 내용을 정해주고 틀을 짜는 것이 어른의 의무, 부모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그래야 일탈도 실수도 하지 않고 곧고 바르게 자랄 수 있다고.

박혜란 <모든 아이는 특별하다> 중에서


  아이들의 세계를 바라보는 어른의 눈은 조심스러워야 한다. 어릴수록 더 그렇다. 세상이 무서워지고 아이들이 더 영악해졌다고 말하지만, 일단 그 세계에서 우리는 온전히 머무를 수가 없다.

무섭다고 규정짓는 어른의 이전에, 아이들을 믿고 지켜봐 주는 것도 분명 필요하다.

어른이 개입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어른들의 등장이 당장의 상황을 감정적으로 해결하는 것보다 조금만 더 아이들의 입장에서 해결하고, 앞으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스스로의 생각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어떤 식으로의 폭력을 옹호하지 않고, 당사자가 내 자식이 되었을 때 나는 이성적일 수 있을까? 이 문제는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아직은 어린 학년이라면 우리가 아이들의 앞으로의 세계가 괜찮아질 수 있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생각이 깊어진다.



  조심하라는 친구엄마의 말은 잠시 접어두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지만, 더 알려고 하지 않을 테고 아이에게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을 테고 나도 선입견을 가지지는 않으려 노력하려 한다.


그저 나는 늘 아이에게 말한다. 네가 소중하듯 남들도 소중하며, 혹여나 네가 잘못을 저지른다면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어떠한 경우라도 말로도, 글로도, 몸으로도 때리는 행위는 옳지 않음을

한번 더 가르친다.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게 다이다. 나는 딸아이의 세계를 그저 조심스럽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 시선에 여러 상념이 스쳐가지만, 조심스럽고 너그럽게 아이들의 세계를 바라보려 노력하고 싶다. 그리고 진짜 도움이 필요할 때 아이들의 객관적이지만 따뜻하게 바라보고 또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을 해결책을 넓은 시야로 바라보는 힘을 키웠으면 한다. 우리 어른들 모두가 그랬으면 좋겠다. 그게 우리의 의무고 역할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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