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율리 Apr 16. 2023

인생에 바보 같은 질문은 없다.

하브루타 독서토론을 공부 중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질문하는 것을 싫어하게 되었다. 중학생일 때였던가. 고등학생일 때였던가. 시간의 간극이 꽤 있었을 테지만, 비슷비슷한 교실의 구조 때문일지.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50여 명의 여학생들이 모인 교실에서 나는 철저한 부끄러움을 겪었다.

 무슨 질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건 정말 그게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도 여러 해를 지나오며 답습된 '질문하기 어려운 DNA'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꽤 궁금했던 호기심이 천장을 향해 손을 뻗게 했고, 진지하게 질문을 던졌다.

 대략 '이건 왜 그런 거예요?'의 맥락이었을 테다. 헐렁한 양복에 얇은 금색 안경테를 쓴 남자선생님이 나를 쳐다보았다.(국어시간 혹은 한문시간이었을 테다.)

 대답을 하기에 앞서, 그렇게 큰 한숨은 처음 들었다. 하늘을 향해 번쩍 든 손이 멋쩍을 정도로,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손에 쥐고 있던 책을 교탁에 툭 내려놓았다.


 "야!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

 "......"

 "생각이라는 걸 하지 마! 그냥 내가 말한 걸 외우기만 하면 돼!"

 "네..."


이 날의 3분도 채 안 되는 찰나 동안, 안 그래도 질문이 익숙하지 않은 나는 입을 닫았다. 선생님의 경멸 섞인 눈빛과 나를 안쓰럽게 혹은 분위기를 이렇게 만든 것에 대한 원망 섞인 49여 명의 알 수 없는 눈빛 때문에.


https://www.youtube.com/watch?v=FqDgig8_8ug

mbc 진짜사나이 중 (영상 꼭 보시길..!)

  요즘엔 윌리엄과 밴틀리의 아빠로 잘 알려진 샘 해밍턴. 그가 한국의 힘든(!) 군대를 경험하는 안쓰럽던 모습을 기억하는가. 그중에서 ‘질문’에 대한 그의 고군분투 영상을 보았다. ‘얘기’와 ‘대기’의 비슷한 발음으로 억울해하고, 땀을 뻘뻘 흘려가며 질문한 그의 물음에 싱거운 대답이 돌아오는, 그럼에도 ‘인생엔 바보 같은 질문은 없다’라는 단단한 철학을 가진 그의 모습을 본다.

 예전 나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고, 한국 사회에서 질문하는 자를 바라보는 눈빛들, 아이의 시도 때도 없는 질문에 대처하는 나의 모습들. 그때는 마냥 구멍 같았던 그의 모습이 웃음을 주는 버튼이었다면, 지금은 ‘질문’을 대하는 우리의 모습을 반추해 볼 수 있는 꽤 철학적인 버튼으로 다가왔다.

   요즘 하브루타 독서토론 수업을 일주일에 한 번씩 듣고 있다. 6번의 수업 중 가장 많이 들은 것. 즉 하브루타의 핵심 중 핵심은 바로 ‘질문’이다.

 하나의 책에서, 전래동화에서, 그림에서, 동요에서, 영상에서 여러 각도의 질문을 만들어내는 것을 매번 하고 있다. 이게 질문이 될까 싶다가도 질문의 개수를 채워야 하기에 가끔 내가 싱거운 답변을 듣는 샘해밍턴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모든 질문에 대한 관용적 마인드와 상대방의 질문으로 새로운 시각을 얻어보자는 오픈 마인드를

장착한 하베르 즉, 하브루타 토론 파트너님들 덕분에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용기가 난다.

 예전 같았으면 질문하기 전에 수없이 되뇌었을

‘이 질문을 하면 내가 무식해 보이려나?’ ‘분위기 깨면 어쩌지?’ ‘내가 놓친 건가? 뒷북인가?’

혹은 상대방의 질문에 ‘저걸 질문이라고 해?’ ‘끝내야 되는데 뭔 질문이야!’라고 외쳤던 어리석은 마음 등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 그리고 질문 하나로 말미암아 생겼던 나의 트라우마도 옅어지고 있는 중이다.


  특히나 달라진 것이 있다면, 아이의 질문에 답하는 나의 마음이다. 딸아이는 말이 참 많다. ENFP 키즈답게 호기심이 많고, 대화를 주도하는 것을 즐기고, 궁금증이 생기면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이다.

 사실 그런 아이에게 지금껏 괜찮은 답을 못했던 것 같다. 엉뚱한 질문이라고 핀잔을 주진 않았지만, 나의 주된 대답 중 하나는

“엄마도 잘 모르겠어.”

“그건 그냥 정해진 규칙인 거 같아. 설명하기 어렵네.. “

뭐 이런, 질문하는 자에게 작은 트라우마를 남길 그런 답변들이 가득했다.


  “엄마! 엄마는 왜 엄마라고 불러? “

대뜸 로즈가 묻는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예전부터 정해진 서로의 규칙 같은 거야. 그건 답하기가 어려워 “라고 답했을지 모른다. 물론 이 대답 안에 애정 어린 눈빛과 마음을 담는다면 잘못된 대답은 아니겠지만 기껏 궁금한 마음을 담아 질문한 아이에게 그리 좋은 대답은 아니다. (소위 창의성을 헤치는 말일 것이고.)


나는 아이의 질문을 경청했다. 내가 답을 선뜻 내릴 순 없지만 그 질문에 나 역시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글쎄.. 왜 그랬을까? 언제부턴가 그런 규칙이 생겨서 우리가 그냥 엄마라고 부르고는 있는데, 하필 많고 많은 이름 중에 ‘어머니, 엄마’라는 이름이 붙여졌을까?”

아이가 답한다.

“영어도 마더 mother, 맘 mom, 마미 mommy잖아! 좀 비슷한 거 같지 않아?”

아이가 나의 질문에 이어 또 다른 의문을 품는 순간, 나의 마음속엔 ‘이게 되는구나! 나 진짜 괜찮은 어른이 되어가네!‘라는 희열이 느껴졌다.

“그러네! 중국말로도 마마야! 일본어도 오카상이 있긴 한데 영유아기 때는 마마라고도 부른대! “


그렇게 우리는 인터넷을 뒤져가며 언어학자 예스페르센(Otto Jespesen)은 인간의 공통적인 첫 발음은 조음 하기 쉬운 입술소리 [m]이라고 말한 바 있고, 이 소리는 가장 원초적인 것과 연관되고, 전 세계의 엄마가 비슷한 발음에서 출발한다는 등 나도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딸아이가 던진, 어쩌면 뚱딴지같은, 뭐 그런 질문에 함께 귀 기울여주었기에 알게 된 귀한 지식이었다. 그리고 세상엔 ‘그냥 그런 거야’라고 대답할 인과성이 없는 결과는 없다. 그리고 귀찮겠지만 질문에 대한 관심, 나도 궁금하다는 어른들의 태도, 또 함께 답을 찾고자 하는 위대한 수고로움 더해지면 우리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질문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질문하기 전 걱정되는 오만가지를 생각하며 다시 넣어두는 일은 없을 것이다.

또 질문 있으세요! 하면 숙연해지는, 지나치게 수줍은 지금의 우리도 없어질 것이다.


인생엔 바보 같은 질문이 없다. 설사 바보 같더래도 어떠랴. 바보 같은 질문에서 원석을 찾아내고자 하는 어른, 친구, 메이트들이 분명 어딘가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질문하자! 우리 모두, 뭐든, 언제든.






매거진의 이전글 설득당하기 위한 토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