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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Nov 30. 2022

흑진주


내 몸에는 향기가 있어. 향이 짙다고 기피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대다수는 나를 선호하는 쪽으로 손을 들지.

옷을 꼭꼭 여미고 어둑한 구석에 숨어있었어. 희한하네, 나를 귀신같이 찾아내는 거야. 내가 필요하다며 몇 겹으로 껴입은 옷을 벗기더군. 옷을 풀어 젖히니 내 속살이 어찌나 하얀지, 통통하다고 더 좋아하는 것 같아.

변신하고 싶었어. 성형 바람이 유행이라잖아. 내게도 그 영향이 미친 것 같아. 뱃살을 줄인다거나, 보톡스를 맞는다거나, 콧대를 높이고 싶지는 않아. 피부 색깔을 바꾸고 싶었어. 영화에 나오는 배우, 흑진주라 일컫는 그런 부류의 피부 말이야. 그렇게 하면 인기 높아지고 몸값이 뛴다고 하더군.

소문에 듣자 하니 하얀 속살을 흑색으로 바꿀 수 있다고 하네. 네트워크 길을 따라 다니며 구석구석 헤매었어. 일광욕만으로는 턱도 없는 소리라고 일축하더군. 하얀 피부를 흑진주 빛깔로 바꾸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어. 저 바닷속 깊은 개펄의 침묵에서 견뎌야 하는, 어두울수록 더 까맣게 익어가는 흑진주의 신음이 들리는 것 같아. 그의 인내와 고통의 대가는 충분한 보상을 받았지. 건강과 부귀와 장수라는.

방법론을 세심하게 들여다보았어. 먼저 옷의 먼지를 잘 털어내라더군. 한 겹의 옷을 벗어 던지고, 몸에 자잘하게 달린 털을 대략 제거했지. 그리곤 따끈한 찜질방으로 들어갔어. 중요한 것은 인내심이라고 미리 일침을 놓더군. 뭐라고, 찜질방에서 보름을 견디어야 한다고? 방문을 절대 열면 안 된다고 하네. 만약 중도에 포기하면 백진주도 아니고, 흑진주도 아닌 무용지물이 된다는만. 주의사항 두 장을 출입문 앞에 붙였지. “절대 문 열지 마시오.”

아따, 역동적이대. 찜질방에 틀어박혀 있는데, 이틀째부터 몸에서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 거야. 향기가 아닌, 역한 냄새가 진동하는 데 머리가 어질어질하더군. 몸마다 독소가 있다더니 그게 이리 치명적일 줄이야. 방문을 완전차단 시켰는데도 어느 틈새로 새어 나가는지, 문밖에서는 비위 약한 사람들이 견디기 힘들다고 난리가 났어.

난들 어쩌라고, 나 역시 힘들어서 뛰쳐나가고 싶었어. 냄새도 그렇거니와 밀폐된 찜질방에 오래 있으니 가슴이 갑갑하고 엉덩이도 거슬려 따끔거리는 거야. 애면글면하며 속에서 올라오는 천불을 누를밖에. 염불만을 주야장천 외고 또 외었지.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내 몸에서 발산하던 체취가 서서히 사그라지더군.

보름이 지나 찜질방 문이 열렸어. 어둠 속에 있다가 밖으로 나오니 환한 햇살에 눈이 부시더군. 내 몸이 어떻게 변했을까, 반쯤 감은 눈을 치켜뜨며 얼른 살펴보았지. 겉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았어. 입은 옷이 그대로인 거야. 중요한 건 내 몸의 색깔인데, 부끄러울 게 뭐 있어. 옷을 훌러덩 벗어젖혔지. 어머나! 내 몸의 색깔이 흑색으로 완전히 변해버렸어. 싱싱하고 하얗던 속살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네.

내 몸이 숙성되었나 봐. 몸에서 단내가 흐르고, 피부가 젤리처럼 쫀득거리는 거야. 꿈꿔왔던 변신, 흑진주가 된 거지. 그동안 고행했으니 이젠 느긋하게 그늘에서 좀 쉬어야겠어. 산들바람을 쐬어가며 피부를 말렸지.


내 이름은 이제부터 ‘흑마늘’이야. 진한 알리신 향 사라지고, 조금 과장하면 만병통치 건강식품으로 주목받는 귀한 몸이 되었어.


세상사도 그런 거 같아. 살다 보면 편안함 속에 나태해지고, 하루하루가 무덤덤한 생활의 연속이 되지. 그럴 때는 변화를 도모해야지 않을까. 지금까지와는 다른 그 무언가를 위해. 물론 마음먹었다고 해서 다 변화하는 것은 아니야, 자신만의 세계에서 빠져나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닐 테니까.

생마늘은 변화를 거부하지 않았어. 보름간의 인내로 잘 숙성되었지. 역경과 시련 속에서 단련되고 건조되어 가치 있는 무언가가 되었지. 흑마늘로, 흑진주로. 중요한 것은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가 아니라 ‘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에 있는 거야. 작심 삼 일이 아니라, 작심 보름이면 못 이룰 게 없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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